시내 순환버스 풍경/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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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순환버스 풍경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석하 이신구
“버스를 타셨으면 차비를 내셔야죠.”
“아니, 이렇게 추운데 30분을 떨게 해놓고 차비만 먼저 내라고요?”
“ 그래도 차를 타셨으니 차비는 내셔야죠!”
“아 글쎄, 차가 늦었으니 돈도 늦게 낼라요.”
요즘 늦추위가 매서운데, 파업으로 시내버스 한 번 타려면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거리며 2,30분은 기다려야 탈 수 있다. 나도 기다리다 못해 방향이 같아 올라탄 것이 이 골목 저 골목 누비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순환버스에 올랐더니, 먼저 승차하신 어느 노인네와 기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운전사 바로 뒷자리엔 어느 아주머니가 어린 아기를 안고 앉아 있었다. 그 꼬마는 한시를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여 애를 먹이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30년 전 일이 생각났다. 큰집에 갔다 올 때였다. 완행버스 제일 앞자리에 아내가 종완이를 안고 앉아있었는데, 이 녀석이 윙-윙 덜커덩, 끽끽, 빵 빵빵 하며 차 소리를 내다가 차모는 소리와 운전하는 몸동작을 흉내 내는 등 몹시 소란스러웠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자, 승객들이 폭소를 자아낸 일이 생각났다.
버스가 중고등학교 앞을 지나자 학생이 몰려들어 자리를 채우니 차속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남학생들은 저희들 일상적인 대화인데도 망설임도 없이 상투적으로 상스런 말을 섞어 가며 조잘대니 듣기가 거북스러웠다. 여학생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큰 소리로 웃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뒷자리 아주머니는 핸드폰으로 손짓 몸짓 다하면서 언성을 높여 대화를 나누었다. 차안은 시끄러워 시장같았다.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하니 차안의 예절은 세월과 더불어 무척이나 퇴색되었구나 싶었다.
시장정류소를 지나자 나이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줌마들이 차속을 채웠다. 다음 승강장에서 젊은 임산부가 아기를 안고 오르자, 중간쯤 경로석에 앉아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아낙네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했다.
“아니, 괜찮아요. 그냥 앉아가셔요.”
“아니, 금방 내립니다.”
그러나 다음 정류장을 지나도 그 노인은 그냥 서 있었다. 그제야 장애인석 임산부석에 앉아서 희희덕대던 장래의 임산부인 여고생들과 경로석, 노약자석을 차지하고 떠들어대던 장래의 경로대상 중고생들이 하나 둘 일어서더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버스가 이리 덜컹 저리 덜컹 한참 달리며 한 바퀴를 돌자 학생들은 거의 다 내리고 빈자리가 생겼다.
대학로를 지나 시내로 돌아서자 아가씨들이 자리를 메우는데, 날씬하고 긴 다리에 쫄 바지, 청바지, 미니스커트, 아니면 롱 스타킹으로 1㎝라도 더 길고 날씬한 아랫도리를 보이려고 아직도 초겨울 날씨인데 맨살을 들어내고 있었다. 요즘 ‘소녀시대’ ‘카 라‘ 등 인기 연예인의 열풍 탓이려니 싶었다.
1990년대 초였던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 운동회 때, 어느 읍장님 아버지께서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애야, 창수가 요즘 아무리 병원이 잘 안 된다해도 그렇게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느냐? 내가 전주 간 길에 맘먹고 바지를 하나 샀다. 맞는지 모르겠다만…….”
서울서 개업한 아들이 시골할아버지를 찾아 뵈려고 며느리를 내려 보냈는데, 갈기갈기 허벅지가 들어난 청바지를 입고 온 손자며느리를 안타깝게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요즘 이런 모습을 보시면 ‘아이고,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나, 천을 아끼려고 추운데도 그렇게 짧게 입고 다닌다.’고 하실 것 같다.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던 노인장이 차비를 내고 내리자, “할아버지, 안녕히 가셔요.”하고 운전기사가 인사를 건넨다. 어느새 마음이 풀렸나 보다.
시내버스 파업도 석 달이나 넘어가니, 서로 양보하여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긴 시내 순환버스 여행을 마친 나도 이제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겠다.
( 2011. 02.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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