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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일화/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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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1회 작성일 11-03-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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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일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석하 이신구 나는 술꾼이다.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주력(酒歷)이 오십여 년은 되었다. 술은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또 그 술을 마시는 것은 무슨 배짱일까? 하기야 대부분의 술꾼은 ‘나는 지금까지 술 마시고 실수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실수한 적 없다는 술꾼의 새빨간 거짓말을 누가 믿을까? 요즘엔 주량이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 젊었을 적 술꾼 친구를 만나 나이는 들었어도 주량은 줄지 않았다고 희희낙락하면서 한 잔 두잔 마신 것이 좀 과했었다. 마실 때는 괜찮은데 술자리가 끝나서 일어설 때쯤이면 어질어질하고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기분만 좋을 따름이지 잘 모른다. 나이가 드니 술을 마시기 전부터 운전 걱정을 한다. 음식점 사장이 무료로 대리운전을 시켜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바람에 마음 먹고 한 잔 했다. 술이 얼큰히 취해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할 때쯤 집으로 오면서 대리운전기사에게 잔소리를 했나보다. “손님, 차 잘 모셔 놓을 테니 걱정 마셔요.” 나는 무슨 말인가 두런거리면서 우리 아파트에 도착했다. “내 차는 이쪽 아래편에 대 주시오.” 그런데 그 기사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차를 그냥 몰고 가는 것이었다. “어어, 기사님, 이리 대라니까요?” 대답도 않고 그냥 나가 버렸다. 소리를 지르며 쫒아가다 보니 영업용 승용차였다. 내 차는 놓아두고 영업용 차를 타고 왔던가? 지난 일요일 사우나를 마치고 막 나오는 데, “어이, 잘 만났네, 한 잔 할 친구를 찾던 판인데……,” 술꾼 선배의 제의였다.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각인데 어디서 무얼 하시기에 이리 늦느냐는 것이었다. "나 지금 오케스트라 앞 퉁친고기에서 한 잔 하고 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 술좌석이 끝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타고서 졸다 보니 내릴 때가 되었다. 기사님은 친절하게도 아파트 문 앞까지 부축해주고 인사를 한 뒤 돌아갔다. "어? 차비도 안 줬는데?" 잠시 호주머니를 뒤적이다 쫓아나가니 아내가 뛰어나와서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 기사님, 참 친절도 하시네. 글쎄 차비도 안 받아간 것 같은데?" 이튿날 아침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속 안 아프셔요? 술 조금만 드시지 그러세요?" “너, 어떻게 알았냐? 어제 그 택시 기사, 참 친절하더라. 그리고 차비는 누가 줬지?” “아빠, 그 기사가 저에요. 제가 모시러 갔었잖아요?” 그땐 퇴근길에 동료들과 어울려 여기 저기 들러 내가 한 잔 네가 한 잔 하다가 집에서 기다리는 식구는 생각도 안 났었다. 어느 날 어울려 마시다 보니 너무 취해서 살짝 꽁무니를 빼야지 생각하고 큰길로 나왔다. 술꾼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한참 가다 보니 익숙한 길이 아니었다. 내가 가려는 방향과는 달랐다. 차도 잡히지 않고, 시간이 꽤 되었는지 지나는 사람도 뜸해 한참을 헤맸다. 지나가는 젊은이를 붙들고 물어 보니 반대 방향으로 한참이나 왔단다. 술이 취해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우리 아파트를 찾아 왔다. 그런데 아파트 출입구를 잘 못 찾아 들어가 103동 603호가 아니라 108동 603호 벨을 누르다가 쫓겨났다. 다시 또 그집 벨을 누르자 103동을 알려줘서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언제인가 고기를 먹기 어려울 때였다. 술꾼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맛있는 소고기 두어 근을 끊어 비닐 봉투에 들고, 차를 탔다. 그런데 자꾸 속이 불편해 구역질을 하니까 기사가 날쌔게 위생봉투를 디밀었다. 다행히 차속에 토하지 않고 봉투를 채운 뒤 훌리지 않도록 꽉 묶은 뒤 집까지 왔다. “그 봉투 아무데나 버리시면 안됩니다. 집까지 잘 들고 가셔요.” 기사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암, 모처럼 고기를 샀는데 버리면 되나?’ 하며 봉투를 들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이, 소고기 사왔네!” 하고 주방에 놓아두었다. 아내는 거실로 나와서 방으로 안내하면서, “아니, 오늘도 웬 술을? 아유 술 냄새!” 너무 늦어서인지 아내는 내가 큰맘 먹고 사온 소고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 이튿날 아침, 그 검은 봉투 속엔 소고기는커녕 구토한 오물만 가득 들어있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소고기는 그 술집에 얌전히 놓고 왔었다. 술꾼은 술자리에서 역사를 만든다. 그 자리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피로를 씻는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노닥거리며 풀고, 미운 사람, 유감 있던 사람은 술안주 삼아 다 삭여 버리고, 털어내고, 잊는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희희덕거리다 헤어진다. 헤어진 뒤 실수만 없으면 그래도 봐 줄만한데……. 아, 그것도 젊은 날의 에피소드고 이젠 건강을 챙겨야할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2011.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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