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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김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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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44회 작성일 11-02-1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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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임경 내가 어릴 적 우리 집 외양간에는 커다란 옴모황소가 있었다. 아침에 어른들이 일어나면 사랑방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는 것이 첫 일과였다. 커다란 솥에 모락모락 김이 오르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면 주걱으로 쇠죽을 뒤적거려 여물통에 부어주면 옴모는 혀를 낼름거리며 맛있게도 먹었다. 옴모라는 이름은 내 막내 동생이 말을 배울 때 소가 '음매'하고 우는 소리를 듣더니 옴모옴모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옴모가 제일 먼저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우리식구들도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족의 하나였던 소 옴모, 이른 봄 일하는 아저씨가 소를 몰고 들로 나가서 논도 갈고 밭도 갈다 잠시 쉴 때에는 풀이 많은 곳에 매어놓으면 편안하게 풀을 뜯어 먹었다. 해가 저물 때 워낭소리가 골목에서 들려오면 우리들은 우리 소 발소리만 들어도 알아들었다. 얼른 달려가서 소고삐를 잡고 집으로 들어오면 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커다란 눈을 깜박거렸다. 외양간에 소를 매어놓고 지푸라기 여물을 조금씩 날라다 주면 긴 혓바닥을 내밀고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도 먹었다. 여름이면 행여 모기에 물릴까봐 아버지는 외양간에 매어놓은 소를 마당에 매어 놓고 모깃불을 피웠다. 그러면 우리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옴모 옆에서 모기를 쫒으며 같이 놀았던 추억이 있다. 소는 우리 재산 1호였다. 소가 없으면 그 많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기에 소는 항상 우리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아니 재산이라기보다는 우리 가족이었다. 가을철 바쁜 추수가 시작되면 덩달아 옴모도 바빠졌다. 달구지를 매달고 논으로 가서 볏단과 수확한 벼도 나르며 하루도 쉴 새 없이 일만 했다. 저녁이면 얼마나 고단한지 금방 잠들어버리는 옴모를 우리들은 불쌍하다며 먹을 것도 더 많이 주고 등도 더 많이 쓰다듬어주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드디어 옴모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제일 먼저 소여물을 챙겨주고 밤새 추울까봐 잠자리에 두툼하게 지푸라기도 깔아주고, 소등에는 짚으로 엮은 옷도 입혀주었다. 옴모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어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옴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외양간은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우리는 옴모가 어디로 갔느냐고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나이를 많이 먹고 일을 하기에는 힘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다. 그날 우리 형제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빨리 옴모를 데려오라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영영 옴모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도 거무스레한 모습의 옴모,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소여물을 먹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는 얼마 후 아버지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셨다. 그 송아지는 저녁이면 잠도 안자고 울기만 했었다, 아무리 먹을 것을 줘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던 송아지는 엄마생각에 울기만 했던 것 같다. 그 엄마인들 자기 자식과의 생이별에 얼마나 울음을 토했을까. 날마다 어린 송아지를 쓰다듬어 주며 우리들이 같이 놀아주니 어느 날부터 울지도 않고 먹이도 잘 먹었다. 소가 아프면 아버지는 따뜻한 물과 약도 먹이며 같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소는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씩씩하게 뛰어다니며 아버지의 손바닥을 혀로 핥으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지금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다. 구제역이 걸린 소를 비롯하여 돼지와 사슴들까지도 반경 3km이내의 가축들이 살 처분된 뒤 매몰되고 있다. 어미소가 갓 나은 새끼소를 두고 구제역 때문에 안락사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새끼소는 엄마소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엄마 젖을 빨고 있기에 엄마소는 이 세상에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젖을 주기 위하여 끝까지 죽음 앞에서 버티다가 새끼소가 젖을 다 먹고 젓꼭지를 떼는 순간 눈을 감았다고 하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나는 감정이 복받쳤다. 그러나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성 앞에 어찌 내가 하찮은 눈물을 흘릴 수가 있을까. 자식을 눈앞에 두고 죽어가야만 하는 어미소의 마음을 과연 우리가 헤아릴 수나 있을까? 아니 우리는 그런 모성애조차도 외면하면서 청정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만을 내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새끼는 무엇을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빌 따름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던 우리 소 옴모의 워낭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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