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아이스 케키/이신구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아이스 케키/이신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4회 작성일 11-01-25 18:55

본문

아이스 케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석하 이 신 구 한여름 대야 장날, 새벽부터 서두시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3㎞정도나 떨어진 시골장까지 엄마를 따라 갔다. 보폭이 짧아 따라가기에도 힘든 터에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왔다갔다 장난까지 하며 따라갔으니 엄마는 나를 부르랴, 빨리 가랴, 얼마나 마음이 바쁘셨을 것인가? 내가 대 여섯 살 무렵까지 꼭 엄마를 졸졸 따라 다녔다. 엄마는 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뽑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서 파셨다. 그래서 적은 돈이라도 쥐어야 학용품도 사주고, 살림에도 보태야 할 판이라 길을 재촉하셨다. ‘집안에서 얌전히 놀 것이지 왜 꼭 붙어 다니느냐고 하셨다. 다리야 고달팠지만 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장에 가면 신기한 것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 주시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또 아이스 케끼가 먹고 싶어 울고불고 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장에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었다. 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마차를 끌면서 헉헉대는 황소, 땀을 줄줄 흘리며 리어커를 끌고 가는 아저씨,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시는 엄마를 따라 가노라니 다리가 아팠다. 이른 아침이 지나자 한여름 햇볕은 점점 따가워지는데 길가에 자리 잡은 엄마의 채소 함지박은 아직도 채소가 줄지 않았다. 값을 묻는 아낙네만 있을 뿐 팔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는 중천을 넘어 오후가 되었다. 겨우 함지박의 채소가 반절쯤 팔렸을까? 더위와 허기에 지치고 주변을 빙빙 돌면서 이리저리 쏘다니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어머니는 제 값도 받지 않고 상점에 넘겨주셨다. 갈증과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내 눈에는 ‘아이스 케끼!’ 만 눈에 들어왔다. 그땐 나무젓가락에 얼음을 얼려서 나무통속에 넣어 메고 다니며 팔았었다. '아이스 케키!'라고 외치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졸졸 따라 다녔다. 시원한 아이스 케키가 간절히 먹고 싶어, 엄마 치마끈을 당겼다. 하나씩 먹고 누나에게도 하나 갖다 주자고 떼를 써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와삭와삭 먹다 보니 얼음이 어찌나 단단한지, 반쯤 먹고는 입속에서 녹여 먹으려다가 나머지는 누나생각에 함지박 밑에 깔린 신문지 조각에 똘똘 말아 살짝 숨겼다. 우리 이웃마을에 사는 윤철이 형은 학교만 끝나면 아이스 케키 통을 메고 “아이스 케키, 아이스 케키, 얼음과자!” 하며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심지어 시장 이웃마을과 우리 마을까지도 돌아다니며 얼음과자를 팔았다. 언제인가 그 윤철이 형에게 아이스 케키 하나를 사서 막 입에 물었는데, 얼음이 부서지며 땅에 떨어져 울상이 된 나를 보고, 녹아 작아진 걸 하나 더 준 그 형을 고맙게 생각했다. 나도 크면 아이스 케키 장사를 하면서 시원한 얼음과자를 실컷 먹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누나를 놀라게 해 줄 일이 몹시 즐거웠다.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누나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이 대해주고, 맛있는 것을 보면 먼저 나부터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보호자였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그 무렵 가위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엿을 사먹진 못해도 가위소리를 따라 졸졸 따라다녔다. 어쩌다 부스러기 엿이라도 주면 아이들이 몰려와 줄을 섰고 입맛을 다셨다. 쭈그러진 양재기와 찢어진 고무신, 고물을 갖다 주고 바꿔 먹던 엿이 어찌나 달고 맛이 있었던지, 어울려 놀다가도 가위 소리만 나면 우루루 집으로 달려가 집안을 다 뒤졌다. 하지만 고물이 될 만한 것은 이미 바닥이 났고, 겨우 녹이 새까맣게 슨 헌 수저와 젓가락을 찾았을 뿐이다. 엿 장수가 멀리 갈세라 정신없이 뛰어가 엿과 바꿨는데, 오늘따라 다른 애들보다 엿을 훨씬 많이 주어 나는 신바람이 났다. 마루에서 맛있게 먹다가 누나에게 들키고 말았다. 누나는 내가 건네주는 엿가락은 본 척도 않고 무엇을 주고 엿을 바꿔 먹느냐고 물었다. 새까맣게 녹슨 수저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 황급히 엿장수를 쫒아가서 헌 수저 한 벌을 다시 찾아 왔다. 알고 보니 결혼 답례품으로 받아, 아끼고 아끼는 은수저였던 것이다. 누나가 재와 볏짚으로 싹싹 닦아 내 놓으니 번쩍 번쩍 빛이나는 새 수저였다. 덕택에 엄마께 꾸지럼을 들을 뻔한 나를 구해 준 누나 생각이 떠올라 누나에게 아이 스케키를 갖다 주고 싶었다. 아마 그날이 작은 누나 생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형편에 생일이라는 말만 했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보릿고개에 생일일랑 잊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한 시절이었다. 아침에 엄마께서 오늘이 영자 생일인데…….(陰’7월11일) 하시던 생각도 났었다. 집에 와서 내려놓는 함지박에서 몰래 꺼낸 신문지 뭉치엔 물에 젖은 종이와 나무젓가락만 남고 아이스케키는 찾을 수가 없었다. 윤철이 형은 어떻게 하나도 안 녹고 우리 동네까지 가져 왔을까? 누나에게 자랑하고 싶고 누나와 나누어 먹으려 했는데 녹아버렸으니 누나의 실망한 얼굴이 겹쳐 괜히 짜증만 났다. 그때 그 심정을 지금까지도 누나에게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소문에 의하면 고학하던 그 윤철이 형은 얼음이 잘 녹지 않는 아이스 케키 통과 둥근 아이스 케키 모양을 네모와 다각형 모양으로, 또 색상을 넣어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여, 군산에서 가장 큰 제빙공장 상무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난번 ‘학교폭력 예방 연수회’에 갔더니 교수가 “나이 드신 분에게 여쭈어 보지요. ‘아이스 케키’가 무엇이죠?” 나는 자신 있게 ‘참 별꼴 다보겠네. 아무리 신세대라도 아이스 케키를 모르다니’ 하며 의기양양하게 “나무젓가락에 얼음을 얼려서 팔았던 거 아녜요?” 했더니 연수생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두리번 거릴 때, "어르신, 죄송하네요, 요즘 여기서 말하는 ‘아이스 케키’란 여학생 치마를 확 들추는 것을 말한답니다." 어?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그런 신조어(新造語)도 있었던가? 그때가 생각난다. 아이스 케키……, 그 말이 여학생 치마를 들추는 장난이라는 용어로 바뀐 것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혹시 종아리를 나무젓가락으로 치마는 아이스 케키로 비유하여 종아리를 보려는 장난을 말한 건 아닐까? 인터넷을 뒤져 보니 ‘아이스 케키’는 ‘여자속옷 쇼핑몰’이란 상호가 얼굴을 디밀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그렇게 먹고 싶던 아이스 케키, 요즈음엔 흔한 그 아이스 케키조차 잇몸이 시려 마음대로 먹지도 못한다. (2011. 01. 2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