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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교실/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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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88회 작성일 09-08-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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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교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오늘은 24계절로 소서다. 아주 옛날 오늘은 단축수업도 해 보았지만 교실로 들어서면 한증막처럼 숨이 콱 막혔다. 교실을 식히는 방법은 오직 창문을 활짝 여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교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해야 했다. 교실이 없어 동각이나 창고 같은 곳에 멍석을 깔고 책상 없이 공부하던 신설학교와 분교장이 허다했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운동장 가 그늘을 찾아 야외수업을 꾀해 보지만 주의산만으로 수업이 여의치 못했었다. 이는 1950년대 여름방학 직전의 시골학교 실정이었다. 오늘날의 냉방시설이란 말 자체가 없었고 연중 가장 힘들고 방학이 몹시 기다려지던 때였다. 조국광복 이후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그러기에 오늘의 한국이 이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는 부모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육에 투자하려는 풍토도 생겼다. 특히 중고등교육은 정규 입학시험에 탈락하면 보결생이라 하여 미등록자 대신 많은 기부금을 부담하면서 입학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래서 농촌에서도 논밭과 소를 팔아 진학시키는 것이 보편화된 사실이었다. 대학교 역시 지금은 한층 더하지만, 오죽하면 상아탑을 우골탑이라 했겠는가? 교육시설은 부족하고 교실마다 수용 인원이 많으니 콩나물교실이란 새로운 낱말도 생긴 것이다. 정부수립 후 교육계는 질보다는 양적으로 팽창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긍정적인 면도 많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았다. 긍정적인 면은 제처 놓고 부정적인 면을 몇 가지 말하자면 교육자치제가 처음 시작된 때라 예산의 뒷받침이 따르지 못했다. 도농 간 지역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재정은 부족한데 초등교육이 의무교육(1948년제1공화국 건국)이 된 뒤 더욱 문제가 많았다. 일단 입학하고 생활고나 여러 사유로 무단 전출하거나 장기결석자가 생겨도 의무교육이란 이유로 퇴학처리를 못하니 출석부 인원이 많았다. 콩나물교실의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취학률 상승에 이어, 둘째 인구증가와 산업화에 따른 빠른 인구의 도시집중, 셋째 출석부상 인원은 많지만 실제 인원이 적어 2학급을 1학급으로 편성 운영한 경우도 생겼다. 더욱 학교운영비 예산배정도 한 몫을 더했다. 학급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법정학급수와 실제학급수가 달랐다. 두 학급을 합반하니 학급을 담임하면 출석부가 두 개인 경우도 생겼다. 학교마다 실제학급수보다 법정학급수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다. 또한 퇴학처리를 안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시대 발전에 따라 병역법상 무 학력자는 징집대상에서 제외된다. 입학은 했으나 졸업을 안했으니 무학증명을 Ep러 왔다가 졸업대장에 등재되어 있으니 민원도 생겼다. 대개 5학년 이상 수학하고 무단 장기결석한 학생들을 선처한 결과다. 초등학력은 모든 기본응시자격이기에 장래 생활을 위해 선처한 것이 병도주고 약도 준 셈이 되었다. 당시 학급을 담임한 경험으로 70명 이상을 한 학급으로 다루기란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다. 콩나물시루는 찬물이라도 자주 뿌려 보지만 콩나물교실은 방법이 없어 제대로 교육활동을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더위에 시달리며 가정통신표(성적표)70~80장을 만들기란 참으로 고역이었다. 당시 선진국은 학급수용인원이 30명 안팎이라니 아득한 꿈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20평 한 교실에 2인용 책걸상 35개조 이상을 들여 놓으면 통로도 없었다. 개별지도는 생각조차 못 하였고 출입도 불편하니 교사는 자연 교단 위의 배우로 연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름철은 더위에 시달려 고역이지만 겨울철은 가끔 환기만 잘 하면 난방효과가 만점이었다. 이제 반세기 만에 그렇게 좋지 않은 환경을 무릅쓰고 가르치고 공부한(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세대들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났다. 경제적 여력은 생활을 향상시켰고 교육환경의 개선에 이어 학급 수용인원도 적정수준으로 조정된 것이다. 이는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산업화와 핵가족화를 내다보지 못한 인구정책으로 해마다 취학아동이 줄어들어 농촌학교는 존폐위기에 빠졌단다. 이미 많은 농어촌학교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초등교육은 1면 1학교 정책을 펴고 있으나 한 학교 유지도 어렵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교육시설은 처음 설립 때의 취지와 열정에 비해 쉽게 전용 처분되고 있고 활용 못해 흉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때의 정성이 참으로 아깝고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이제 옛말이 된 콩나물교실이 새삼 그리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 좋은 교육시설이 계속 활용되고 수용인원을 충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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