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정석곤
페이지 정보

본문
경인년은 나의 진갑(進甲)의 해
-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석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0년, 북한의 잔인한 백령도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펑도 폭발사건은 분단조국 한반도가 휴화산임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하늘이 가슴에 묻어둔 응어리를 되새김질 하며 40여년 만에 연거푸 눈이 내려 산야를 하얗게 덮었다. 2011년 새해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하루하루가 다 뉴스거리지만 그 중에서 열 개를 추려 우리 집 10대 뉴스로 정해 본다.
1. 2급 사회복지사 자격 원격강의 수강
가끔 퇴임 뒤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가끔 생각하였다. 사회복지 분야가 할 일도 많고 보람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큰아들(상훈)의 복지사업을 도와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2급 자격취득을 목표로 세우고 edu평생교육원에 1학기 6과목을 등록하고 5월부터 15주간을 매주 한 강좌씩 들었다. 2학기에는 9월부터 15주간을 현장실습까지 8강좌를 들었다. 각 과목별로 과제와 토론, 중간과 기말평가가 있었다. 평가는 오픈온라인 평가지만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멘토인 큰아들이 1급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수월했다. 20여 년 전 야간에 원광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보다 더 힘들었다. 드디어 모든 과정을 이수하였다. 한 과목은 걱정도 했었는데 다 통과하여 42학점을 취득하였다. 이제는 자격증만 나오길 학수고대하는 즐거움을 안고 있다.
2. 우리지역아동센터 개소
큰아들이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다 재작년 12월 전주 서신동으로 이사를 왔다.
1월에 서신동에다 기쁜 우리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고 지난 3월 20일(토) 개소예배를 드렸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10여 명의 아이들을 방과 후에 보육활동(educare)을 해왔다. 여러 사회단체와 개인별로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간식과 식사를 제공하였다. 아이들은 희망을 안고 힘차게 생활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한 분을 채용하였다. 새해에는 열대여섯 명을 더 늘려 국가의 지원을 받아 안정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곁에서 조금이라도 도울 거리를 찾아 도움을 주고 싶다.
3. 선친(鄭자 吉자 用자) 묘 이장
선친께서는 내 나이 일곱 살 때 음력 스무나흘 해질 무렵에 돌아가셨다. ‘딴들’ 산에 묘를 썼는데 중학교 때 ‘봉숭애골’ 산으로 이장을 하였다. 대학교 2학년 때에 작은 아버님께서 명당을 찾아 고향 앞마을인 가장 뒷산 높은 산허리에다 이장을 하셨다. 벌초와 성묘 길이 너무 힘들어 6, 7년 전부터 ‘신동'앞에 있는 작은집 밭으로 이장한다고 벼르다가 전주 효자동 추모관에다 모시기로 했다.
4월 9일(금) 아침 일찍 서둘러 이장전문업체 사장과 상훈이와 싱진이를 데리고 갔다. 파묘를 해서 유골을 전주 효자동 승화원으로 모시고 와 화장을 하여 유골함에 넣어 추모관 2층에 모셨다.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이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자주 성묘할 것 같았는데 겨우 지난 추석에 어머님을 모시고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성묘를 다녀왔다. 성묘객이 너무 붐볐다. 마치 명절 대목의 재래시장을 방불케 했다.
4. 정이현(鄭二玄) 첫 돌잔치
정이현이는 작은 아들(상진)의 둘째아들이다. 첫 자는 친가의 성으로, 끝 자는 외가의 성으로 하고, 가운데 자는 둘째라 하여 이를 넣어 정이현이라고 지었다고 하였다. 작년 7월 8일(목)오전 7시 30분에 태어났다. 엄마 아빠의 사랑과 지혜로운 양육으로 잘 먹고 잘 놀고 잘 배설하니까 이목구비가 확실하고 키도 컸다. 지혜도 많이 자랐을 것이다. 참으로 고맙다.
태어나서부터 외할머님이 돌봐 주시다, 겨울방학을 시작하면서 엄마 혼자 키웠다. 새 학기에 1년간 휴직을 했다. 맹모보다 더 확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어 기특하고 장하였다. 두 아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엄마의 사랑이 담긴 영․유아 교육을 하겠다는 결심이 굳었다.
이현이의 첫돌은 채운이 보다는 간소하게 잔치를 했다. 며칠 앞당겨 7월 3일(토) 저녁 7시 30분에 전주 송천동 한 뷔페에서 했다. 우리 집과 외가 식구와 아빠, 엄마 친구들이 모였다. 아빠 친구의 사회에 따라 축가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며 박수와 함성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돌 특별프로그램인 몇 가지 물건을 놓고 무엇을 집을 까 모두 기다리며 이현이의 손을 쳐다보는데 연필을 집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 돌잔치에서 축하예배를 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5. 정슬우 초등학교 입학
슬우는 큰아들의 첫아들이며 나의 첫손자다. 우리 집에서 처음 태어난 손자라 사랑을 독차지하고 성장했다. 우리 집에서 첫돌 전 6개월을 돌보며 키웠다. 슬아는 다섯 살 때와 태어날 때도 5개월이나 함께 살았다.
이제 일곱 살이 되어 전주서천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식 때 아내가 가서 축하해주었다. 가까이서 슬우의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옹골진 생각이 들곤 한다. 큰아들의 순탄치 못한 가정환경에서 유아시절을 보내 조금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어 고맙다. 교내학력평가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또, 교내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더 마음이 흐뭇했다. 학습태도나 친구들과의 생활도 향상되고 있다는 담임교사의 칭찬을 받았다며 슬아의 아빠엄마는 좋아했다. 앞으로 바른 인성을 갖추고 교과학력이 더 진보하길 바람이다.
6. 희년교회 담임목사님 청빙
교회가 평안해야 집안이 평안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2002년 12월에 부임하신 김정곤 담임목사님은 목회를 잘 하셔서 교인들이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날벼락이 쳤다. 서울 S교회에서 모셔간다는 소식을 듣고 온 교인들은 슬픔을 새기며 6월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헤어졌다.
온 교우들의 기도와 담임목사청빙위원회의 수고로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한인 한빛장로교회 강순흥 담임목사님을 청빙하기로 결정하였다. 당회와 공동의회에서도 결의를 하고 임시노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허락을 받았다.
추수감사주일(11월 셋째 주일)인 부임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은 진안 갈보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시다 미국 한인목회를 20여년 맡으셨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변치 않기 위해 한국 목회를 결심하고 모험을 하신 것이다. 첫출발부터 목회의 열정이 불타올라 온 교인들이 좋아하였다. 우리 가정도 목사님의 기도와 메시지의 힘을 받아 평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7. 막둥이 사업체 확장
상인이는 서울 역삼동에 'The 참치 횟집'을 운영하면서, 또 '십 원 집'을 둘이 개업하여 사업을 확장하였다. 가게 하나라도 안정된 사업을 하라는 잔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확장에만 혈안이 된 것 같아 걱정도 했었다. 확장된 사업이 잘되어 창업하려는 자들이 벤치마킹을 해 갈 정도라고 한다.
'The 참치 횟집'을 넘겨주고 부채를 완전히 청산했다. 남은 돈으로 두 블록 건너편에 둘이 ‘십 원 집’ 분점을 차렸는데 괜찮게 된 모양이다. 또 양재동에 둘이서 ‘오십 원 집’을 개업했다.
이제 법인체를 등록하여 프렌차이즈(체인점)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현재 체인점이 네댓 개나 된 것 같다. 지난 가을에는 역삼동 역 옆에다 혼자 분점을 차려 확장 하였다. 작년에 구입한 자가용 구입비도 완전히 상환하고 이제는 순수하게 자기 자본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봐도 그 대담성과 자신감 그리고 사업의 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 친구를 사귀라는 내 성화에 틈을 내 초겨울부터 아가씨와 만나다고 하였다. 서로 마음이 합하여 기독교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사업을 하면 좋겠다.
8. 상진이 두 번째 이사
결혼 날( 2005년 10월 1일)을 잡아 놓고, 전셋집을 구하러 둘째와 며느리가 될 아가씨와 충남 서천군 읍내와 군산으로 한나절이나 쏘다녔다. 해질 무렵 한 부동산에 들른 것이 조촌동에 좋은 아파트가 나와 전세계약을 했었다.
1년쯤 살다 둘째 내외가 경기도 평택으로 다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세교동 부영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부족한 전세금 일부를 보태 주었다. 2년 계약기간이 다 되어 주인이 매매한다고 하여 그 근처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채운이와 이현이가 마음대로 놀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둘째가 전세금 부족분을 도와달라고 어렵게 몇 번 이야기했는데 그 청을 들어주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중에 더 늘려 살 때는 꼭 도와주겠다고 나 혼자 다짐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자기 할 일을 계획성 있게 잘 처리해 매듭을 짓고 있어 늘 마음이 든든하다.
9. 아내 김광숙 치아 치료
아가씨 때부터 좋은 치아는 아니었다. 전주 인후동에 살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덕진에 살면서 이가 아플 땐 마을 치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십여 년 전에 살아있는 아랫니를 싸서 보철을 하고 윗니는 부분적인 틀니를 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맞지 않는 틀니를 사용하니까 아래 이빨이 많이 닳아 음식을 먹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작년 12월 끝 무렵 M치과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윗니 오른쪽 2개, 왼쪽 3개 임플란트와 기존 보철 부분을 교체하고, 아랫니는 보철 전체를 교체하는 이빨공사를 하였다. 잇몸치료도 같이 받았다. 이제 겨우 절반쯤 치료를 받아 내년까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비는 처음 진단 때보다 치료할 부분이 더 생겨 2.000만 원이 넘을 것 같다. 그래도 위 틀니의 불편을 해소하고 음식물을 마음대로 섭취할 수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10. 독도․울릉도 탐방
울릉도는 진안군 벽지학교에 근무할 때 2박 3일간 직원여행을 다녀왔었다. 10월 20일(수)부터 청소년연맹 주관으로 22명이 울릉도․독도를 2박 3일간 탐방하였다.
첫날 새벽 4시에 출발하여 포항에서 8시 40분배를 탔다. 앞에서 몰려온 센 파도로 항해 시간이 길어졌다. 거의 다 와서 두 번의 심한 멀미로 기진맥진하여 점심을 먹은 둥 마는 둥 했다. 조금 쉬었다가 독도행 배를 탔다. 뱃머리 의자에 앉아 가다가 바닥에 누웠지만 뱃멀미가 되살아나 몸살을 하며 도착했다.
환호성을 질렀다. 동영상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독도(西島)를 직접 밟고 사방을 둘러보니 감개무량하였다. 공기와 바람, 바다와 하늘은 너무나 신선했다. 사진 촬영을 한 뒤에 아쉬움을 안고 승선하여 동도(東島)를 일주하였다. 올 때는 두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리며 왔다. 둘째, 셋째 날은 독도를 출항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도는 출항하기도 힘들지만 서도에 입안한 것은 1년에 40여회뿐이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연거푸 뱃멀미로 고통을 겪었지만 절호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둘째 날과 셋째 날 오전은 울릉도를 두루 둘러보고 오후 4시 배를 탔다. 전주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되었다.
올해는 손자 손녀들이 쑥쑥 크는 모습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채운이의 초등학교병설유치원 취원과 슬아가 영아원에서 어린이집으로 취원하는 것도 10대 뉴스에 끼지 못해 아쉽다.
한 해가 엄벙덤벙하다 저물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다들 열심히 산 덕이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이라 믿고 감사를 드린다. 밝아오는 새해는 남북관계가 회복되어 평화통일을 앞당겼으면 좋겠다.
교직 42년째로 정년을 1년하고 두 달 앞두고 있다. 2011년 신묘년 새해에는 교직을 마무리하며 퇴임 뒤의 설계도 해야 할 성싶다.
- 이전글28기아동(유아)국악. 실버국악. 난타지도사 자격연수 11.01.16
- 다음글가족에 대한 존칭어 11.01.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