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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고모/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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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65회 작성일 11-01-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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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고모 김 학 나는 오늘 내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 한 개를 지웠다. 올해 들어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수첩에서 지워야 할 전화번호가 늘고 있다. 전화번호를 지울 때마다 내 가슴에는 찬바람이 인다. 요즘엔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더라도 휴대전화 번호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만리타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는 한 수첩에서 전화번호를 지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전화번호를 지운 것이다. 010-4522-9941, 다이얼을 돌리니 발신음은 가는데 받는 이가 없다. 10초, 1분, 2분…….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무심한 신호음만 울릴 뿐 받는 이가 없다. 전에는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언제나 정겨운 막내고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학이냐?" 정이 뚝뚝 묻어나는 맑은 목소리로 반갑게 응답을 해 주셨다. 그런 막내고모님이 전주에 사셔서 나는 좋았다. 고희의 문턱에 다다른 나는 고모님 앞에만 서면 언제나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 된다. 몇 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고모님이 가까이 계셨기에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막내고모님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다니, 나로선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9일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침 7시쯤 나는 막내고모님 큰아들로부터 막내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悲報)를 들었다. "어머님이 어제 저녁에 5시 50분쯤 돌아가셔서 전주 대한장례식장으로 모셨어요."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며칠 전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문병을 갔을 때 고모님은 나와 내 동생을 알아보지도 못하셨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때 나는 이럴 때 약 몇 알을 복용하거나 주사 몇 대를 맞으면 병석에서 훌훌 털고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영약(靈藥)은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막내고모 김동희 권사님이 이렇게 빨리 소천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전화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제상에 모셔놓은 막내고모님의 영정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사한 옥색 한복 차림에 멋진 안경을 낀 막내고모님은 액자 안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계셨다. 어서 오라며 반갑다고 손사래를 치실 것 같았다. 이승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사진이다. 고모부님께서 살아계실 때 미리 준비해놓은 영정사진이라고 내종동생이 들려주었다. 고모부님은 참으로 주도면밀한 분이셨다. 교육행정직에서 평생을 바치신 고모부님은 내외만 사시다가 노후를 대비하여 전주에 사는 둘째아들과 합산하셨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막내고모님의 입원비와 장례비까지 저금통장에 저축해 두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5남매 중 4남매가 서울에 살기 때문에 경기도 안성에 있는 우성공원묘지에 묘지까지 잡아두셨다고 한다. 전주에서는 2시간 반 거리지만 서울에서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후손들의 성묘 편의까지 헤아려 묘지를 그곳에 잡으신 것이다. 이 모든 게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으리라. 고모부님의 선견지명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고모님은 1남 3녀 중 막내이시다. 막내답게 오라버니를 비롯하여 두 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당신마저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신 막내고모님은 고모부님을 만나셨을까? 또 막내고모님은 먼저 하늘나라에 가셔서 자리를 잡으신 4남매도 만나셨을까? 먼저 가신 오라버니와 언니들, 그리고 고모부님은 반갑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영잔치라도 하셨을까? 하늘나라에도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 막내고모님은 슬하에 4남 1녀를 두셨다. 그중 셋째아들은 목사로서 서울에서 시무중이다. 그래서 고모님도 교회에 나가셨고 권사란 직분까지 받으셨다. 막내고모님은 지난해부터 병원 출입이 잦으셨다. 동네 경로당에 다니시다 낙상을 하여 팔목골절로 병원신세를 지셨던 것이다. 또 지난해 겨울에는 전북대학교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으셨다. 그동안 전주에서는 둘째아들내외가 고모님을 모셨으나,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서울에 사는 4남매가 교대로 간병을 하였다. 서울 4남매가 교대로 병상의 고모님을 지켰으니 5남매에게 골고루 효도기회를 주신 셈이다. 남의 입장을 잘 배려하시는 막내고모님이시기에 당신이 돌아가신 뒤 자녀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골고루 효도기회를 주신 것 같다. 서울에 사는 가까운 일가친척들에게도 문병기회를 주어 이승에서의 인연을 정리하는 이별의식을 갖기도 하셨다. 막내고모님은 나와 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셨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어린 친정 조카 형제가 안쓰러워서 더 그러셨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첫 등록금을 도와주셨던 분도 막내고모님이셨고, 나에게 처음 구두를 맞추어주신 분도 막내고모님이셨다. 막내고모님의 유품을 정리한 내종동생이 고모님의 서랍에서 젊은 날의 내 사진이 나왔다며 어머니가 나를 가장 사랑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고모님의 영정사진을 떠올리자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내 수첩에서는 막내고모님의 전화번호가 지워졌지만, 막내고모님은 영원히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실 것이다. 하늘나라와는 언제쯤 통화가 가능할까? (2011. 1. 12.)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수필아, 고맙다》등 수필집 11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전라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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