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주객/김길남
페이지 정보

본문
인생은 주객(酒客)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인생은 주객인 거여”란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무릎을 쳤다. 그렇다. 인생은 주객이다. 주막에 들어가 단술 쓴술로 취하려고 찾아온 주객이다. 주막을 잘 찾아 들어간 사람은 단술을 마시고 즐기다 웃으며 나오고, 잘못 들어간 사람은 쓴술을 마시다 얼굴을 찡그리며 나오는 게다. 그런데 어떤 주막에 단술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어느 주막을 찾아 들어가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
잘 찾아 들어간 사람은 온화하고 화려한 방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따라주는 단술을 마시며 즐긴다. 갯가재 요리와 송이버섯 구이가 상에 가득하다. 가야금과 해금, 피리소리가 울려오고 노랫가락도 흥겹다. 거나하게 취하여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즐긴다. 잘못 찾아간 사람은 목로주점에 앉아 쓴술을 마시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김치 한 종지와 멸치 몇 마리가 부뚜막 위에 놓였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땟국이 흐르는 옷을 걸친 주모가 눈도 주지 않는다.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싫으면 나가라는 눈치다. 한 번 잘못 든 주막을 어찌하랴.
요즘 주막을 몇 군데 살펴보자. 여의도 주막에 들어간 사람은 선택을 잘 한 사람들이다. 그런 주막에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주막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 보고 배운 것이 부유한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서 권세를 부리는 이들의 넉넉한 생활 모습뿐이니 어려운 민초들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하루 세끼 밥을 먹기도 어려운 영세민의 사정을 어떻게 알랴. 좁은 쪽방에서 영하 10여도의 추위에 떠는 가난한 신세를 모른다. 연탄 한 장 들여놓고 땔 수 없는 할머니의 추운 겨울을 알겠는가. 별로 가볼 가치가 없는 외국에 구경을 다니면서 그 비용이면 수 십 명의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할머니를 도울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정부라는 주막에 들어온 사람들은 단술만 먹을 줄 알지 쓴 술을 마시는 서민을 모른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면서도 실속이 하나도 없다. 말만 믿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알맞다. 예산을 세우지도 않고 무엇으로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단 말인가. 잘살고 못사는 것도 팔자요, 저 못나서 못사는데 어쩌란 말이냐 하는 식이다. 우리가 단술을 마시고 즐기면 되었지 어떻게 똑 같이 살란 말인가 하는가 보다.
대기업 주막에 찾아간 주객은 넘쳐나는 재물에 눈이 멀었는가 보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불법 편법 다 저지른다. 어쩌다 선심을 써서 불우이웃 돕기를 할 때는 사진 찍기에 바쁘다. 착한 일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는가. 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단 말인가. 전 재산의 반을 사회에 내어놓자고 제의한 빌 게이츠의 구휼정신을 모르는가 보다.
내가 태어나 자랄 무렵의 주막에는 술잔이 없었다. 누구나 주막에 들어가도 텁텁한 막걸리 한 잔 먹을 수 없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무슨 술잔이란 말인가. 해방 뒤에도 한국전쟁 때도 나에게 돌아온 술잔은 없었다. 있어도 빈 잔뿐이니 언제 술에 취해 볼 수 있었겠는가. 주막을 찾더라도 때를 맞춰 들어가야지 아무 때나 술잔이 있는 게 아니었다.
요즘 주막은 다르다. 어느 주막에 들어가도 술 한 잔 마시고 나오기에는 충분하다. 세상이 변하여 잔 없이 빈손으로 들어가도 취하고 나올 수 있다. 쓴 술도 있고 단술도 있는데 재수에 따라 걸리는 술이 다르다. 그저 쓴술 단술 가리지 말고 먹고 나오려는 마음을 가져야 편하다. 주막도 가지가지고 술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자기의 입맛에 맞는 술을 찾아 들어가야 행복하다.
나는 집에서 담근 포도주가 좋다. 설탕과 포도를 반반 섞어 오랫동안 발효시킨 진한 포도주가 좋다. 그런데 그런 술을 파는 주막은 없다. 그래서 취할 수 없는가 보다. 내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 찾아 들어갈 주막이 없다는 것은 서글프다. 잘 못 들어간 주막에서 냉대를 받고 나오는 신세인가 보다. 입맛에 맞는 술 한 잔도 못 마시고 이 주막 저 주막 떠돌다 때가 되면 빈손으로 떠나는 신세가 될 성싶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입맛에 맞는 포도주를 내어놓는 주막이 있겠지’하며 살아간다.
( 2011. 1. 3. )
- 이전글고장난 손목시계/이의민 11.01.11
- 다음글나무 젓가락은 독약 11.01.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