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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박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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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1회 작성일 11-01-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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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童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박광태 흔히 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얼굴을 동안(童顔)이라고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구글에서 ‘동안’이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대략 5천3백만 개의 사이트가 검색되고 ‘동안비결’의 경우에는 약 백6십만 개가 나타난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건강과 여가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늙지 않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을 것이다. 길을 가는 팔순할머니에게 ‘처녀처럼 젊어 보여요.’라고 칭찬해주면 자다가도 곶감을 얻을 지도 모를 일이다. 동안은 여성에게는 축복일 테지만 남성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달 전, 교사의 2층 출입문 강화유리가 파손된 일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장난을 치다가 유리를 깨자 화가 난 담임선생님은 그 학생들을 꾸짖고는 즉시 변상하도록 지시했다. 돈을 내라는 말에 화가 났는지 이튿날 한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다짜고짜 학교에서 유리를 끼워줘야지 왜 변상시키느냐며 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 현장을 왜 사진촬영하지 않았느냐면서 얼토당토않은 생트집을 잡기도 했다. 그는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으로서 나와 몇 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나보다 서너 살 연상으로 여겼는지 반말질이었다. 군대에서 겪은 일이다. 부대 옆에는 막타워 모형탑과 모형항공기 그리고 공중에서 낙하훈련을 할 수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겨울 어느 날,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미터의 공중에서 낙하산 조작연습을 하던 내게 조교는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힘든 내색 없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내 모습이 얼음장 같은 조교의 마음을 녹일 때도 있구나! 잠시나마 편히 앉아 쉬어 볼까?’ 하며 쾌재를 부르고 내려갔다. 그런데 빨간 모자의 조교 앞에 서기가 무섭게 내 얼굴에 주먹이 날아왔다. 입술은 터져 피가 났고 볼때기는 얼얼했다. ‘다른 피교육생들은 진지하게 훈련을 받고 있는데 어린놈이 뭐가 좋다고 히죽거리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동안의 외모 때문에 예전엔 부모를 오해한 적도 있다. 우리 집 5남매 중 큰 누이와 막내 여동생은 아버지를 닮았고, 작은 누이와 형과 나는 엄마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두 누이와 형과 여동생은 나이가 1~2년 빠르거나 늦은데 유독 내 나이와 생일만은 정확했다. 그런데 수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문갑속의 서류를 훑어보다가 15년 전에 떼어두었던 내 호적등본을 보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혼인신고를 하려고 떼어두었던 것인데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류를 넘기던 중 내가 태어난 해에 부모님의 혼인신고가 되었음을 발견했다. 6․25로 폐허가 된 50~6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호적제도가 제대로 정착될 리 없었고 의료시설도 열악하여 집집마다 아이 한둘 잃는 것은 예사였었다. 자식을 낳으면 이삼 년 지켜 본 뒤에 호적에 올리는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자 당신의 혼인신고를 비롯하여 두 누이와 형의 출생신고를 나의 출생신고기에 맞춰 ‘쌍끌이’식으로 한꺼번에 하였다. 그러니 내 생일이 정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호부호모(呼父呼母)하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려고 내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 한복을 걸치고 거드름을 피우며 양반처럼 걸었더니,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며 아내와 아이들이 웃었다. 순박해 보이는 얼굴을 감추려고 면도를 하지 않은 채 나다녀 보았다. 삐죽삐죽 나온 콧수염이 나를 샌님으로 만들었다. 샤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파마머리를 하고 직장에 출근해 보았다. 어느 민원인이 내 책상에 서류를 내밀고는 말을 하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곱슬머리 동료와 혼동했던 모양이었다. 인터넷상에서 동안비법(童顔秘法)을 보면 ‘세안이나 팩을 많이 해서 얼굴에 수분을 듬뿍 주어라. 콜라겐이 많은 보쌈과 족발을 먹고 사우나와 댄스(운동)를 즐겨라. 매일 제철 과일을 먹어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라…….’ 등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비법들이 있다.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혹 누군가 내게 동안의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머리를 가로저을 것이다. 내게는 전혀 비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남과 경쟁하는 것은 육신과 정신에 부담을 주므로 피할 수 있으면 피했을 뿐이다. 무릇 상대를 이기려면 힘도 길러야 하고 치밀한 전략도 세워야 한다. 몸과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그득하게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조금 손해보고 내가 져주면 평안할 텐데 무엇 하러 고생을 사서 하랴? 이런 무색무취한 삶의 태도가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런 태도와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지 나는 ‘제 나이보다 덜 살고 덜 노력했다.’라는 의미로 동안을 정의했고,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일도 적게 하고 고뇌하지도 않은 ‘나태주의자’라고 간주했다. 얼굴에 삶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냉동인간을 백년 이백년 아니 천년을 두면 무엇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것은 당신 생각’이라며 탁자를 두드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유유서라는 권위적인 유교 문화권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그 속에서 지천명의 세월을 함께해온 내게 동안은 ‘강점이 아니라 숨기고 싶은 상처요 흔적’이었다. 아이는 아이답고 청년은 청년다우며, 노인은 노인다운 삶이 마냥 부러웠다. 지금 이 순간,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더라도 단풍잎인 양 즐겁고 힘차게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1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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