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두 그릇/이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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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두 그릇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자장면은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음식이다. 정작 중국에 가면 자장면이 없단다. 어려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나 집에 행사가 있을 때면 먹을 수 있는 게 자장면이다. 지금도 손자가 우리 집에 오면 전화 한 통화로 자장면을 시켜 먹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장면은 어찌 그리도 맛이 있는지 잊을 수가 없다. 옛날 전주 고사동에 있던 전북일보 사옥에서 경전라사 네거리 사이에 허름한 한옥에 자장면 집이 있었는데 주방이 큰길가 쪽으로 창이 나있어 자장 볶는 냄새가 났었다. 그러면 자장면 먹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그 무렵 충북 청주시내 간판집에서 간판 그리는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었다. 6남매의 장남인 나는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종자돈을 만들려고 독한 마음을 먹고 한 달에 월급 4천환을 받아 한 푼도 안 쓰고 은행에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 3년동안이나 명절 때도 전주에 내려오지 않고, 이발도 하지 않아 장발로 지내며 살았다. 그 때는 장발이 유행이라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판을 그리는 작업에 빠져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찾는다고 하였다. 나가보니 뜻밖에도 어머님께서 다섯 살짜리 막내동생 손을 잡고 명함 한 장을 들고 날 찾아오신 것이었다. 마침 점심때라 이웃 중국집으로 모시고 갔다. 막내는 어리니까 조금 덜어서 먹이면 될 성싶어서 자장면을 두그릇만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멀리서 찾아오신 어머님께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돈을 아낄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세 그릇을 시켰으면 어머님도 막내동생도 배불리 먹었을 것을 왜 두 그릇만 시켰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다.
빈 그릇을 달래서 막내 먹일 걸 덜어주는데 국수가 다 딸려갔다. 어머니는 자장면을 비벼 막내에게 주고 옆에서 조금씩 잡수셨다. 내 것도 덜어 주느라 자장면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삼베 보자기에 꽁보리밥과 하지감자 삶은 걸 싸가지고 오셨는데 그게 쉬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걸 보니 참 옛날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찾아오면서 점심 꺼리를 그것도 도시락에 싼 게 아니라 알 밥으로 싸가지고 오시다니 눈물이 나는 일이였다. 3년이 넘게 집에 오지 않으니 달랑 명함 한 장 가지고 찾아오신 것이다. 그런 분을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켜 제대로 먹지도 못하셨으니 참으로 불효막심한 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장면 두 그릇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니 더욱 그때 자장면 생각을 하면 발등을 찍고 싶고 평생 한이 된다. 그 시절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 지금은 두어 시간이면 왕래할 거리를 하루가 걸리고 열차도 익산에서 갈아타야 다닐 수있었다. 그뒤 1년 만에 5·16혁명이 나고 화폐개혁이 되어 돈을 한 번에 바꾸어 주지 않아 우리 간판집 옆 시장 아주머니들을 시켜 돈을 바꾸어 가지고 전주로 내려왔다. 그 종자돈으로 나는 전주에서 사업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있다.
(20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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