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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 팔찌/하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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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8회 작성일 10-12-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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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 팔찌 하 재 준 오늘도 내 팔목에 있는 연보라색 팔찌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다. 참으로 내겐 귀한 팔찌요, 보배로운 팔찌기에 늘 소중히 여기는 팔찌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재질이 값비싼 보옥(寶玉)이나 황금으로 된 것이 아니다. 값싼 실리콘으로 되어 있어 자유롭게 양팔에 옮겨 찰 수 있도록 신축성이 있는 평범한 팔찌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 있다. 지난 7월 첫째 주 감사주일이다. 예배시간이 다 되어 예배당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안내를 맡은 집사님들이 환한 미소 진 얼굴로 반갑게 맞으며 나에게 연보라색 팔찌를 주기에 받았다. 나만이 주는 팔찌가 아니라 전 교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 팔찌에는 “NO ComPlaint"라고 음각으로 새겨있었다.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걸 나누어주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예배가 시작되었고,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다. 그 설교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의 마음은 늘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불행한 사람의 마음은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 자 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토해내며 살아갑니다. 끝도 없이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불평불만이 습관이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이 생활 화 되어버린 것이 대부분의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쌓여 어둔 그늘이 그의 영혼까지 덮어버립니다. 그런 까닭에 괴로움에 몸부림리치다 못해 암을 유발시켜 생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한다면 누가 잘못된 판단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명령문입니다. 명령은 명령하는 자가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이 말씀의 하반 절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생활을 할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 가를 넉넉히 헤아려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오늘 팔지를 나누어드렸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오실 때 혹 받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계시다면 집에 돌아가시기 전 꼭 받아 가십시오. 그리고 다 같이 나누어드린 팔지를 오른 팔에 끼십시오. 이 순간 이후부터는 의식 중 혹은 무의식중에라도 자기 마음속에 불평불만이 일어나거나 남을 험담하고 싶거나 남을 시기, 질투하고 싶을 때 바로 왼손에 옮겨 차십시오. 그러나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는 계속 차고 계시고요. 이렇게 하루에 몇 번이나 옮겨 차는지. 그리고 일주일에 얼마나 옮겨 찼는지. 자신이 자신을 점검해 보면서 자신의 신앙의 인격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미국 어느 목사님이 21일 동안 실험한 결과 크게 신앙심과 인격이 성장됐다는 말씀을 어느 책에서 읽고, 옳다고 여겨지기에 우리도 실행하려고 팔찌를 나눠드렸습니다." 퍽 감동적인 설교라서 이 말씀을 내 것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믿음은 듣고 실천하는 데서부터 성장한다. 그러기에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팔목에 차고 다니면서 이 팔목에서 저 팔목으로 갈아 끼곤 한다. 그러면서 하루에 몇 번이나 옮겨 찼고 일주일에 몇 번이나 옮겨 찼는가를 따져보면서 나의 신앙심을 점검해보고 신앙의 인격을 성장시켜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자주 들르는 동네병원에 그 팔지를 끼고 갔더니 간호사가 나에게 “언제 피서지에 다녀오셨어요?” 하지 않는가. 무얼 보고 하는 말이냐고 했더니 “지금 차고 계신 팔찌가 곤충방지 팔찌가 아닌가요? 그런 팔찌도 꼭 그렇게 생겼기에 드리는 말씀이에요.”라고 했다. 또 한 번은 문학모임에 갔더니 “그게 무슨 팔찌냐"고 묻기도 하고 신앙인들의 모임에 앉았을 때에도, 박사학위를 받은 분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곳에 참석했을 때에도 다들 팔찌에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치였다. 특히 넉 달간이나 똑 같은 팔지를 차고 다닌 것을 본 한 친구는 무슨 의미의 팔찌이기에 항상 차고 다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허름한 팔찌라서 그리 묻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팔지의 의미를 말해주면 “거참 좋은 팔찌군. 나도 그 팔지를 한 번 차고 싶네. 하며 말하는 자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퍽 다행스럽게 여긴다. 팔지가 아니었던들 요즘처럼 나 스스로 ‘자신을 매일, 매시간 점검해가며 보다 높은 신앙의 인품으로 교육해 가고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심히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넘어지고 깨어져 볼품이 없는 내 인품이 더 망가져 가는데도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소비적인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무슨 일이 부딪히거나 어떤 계기에 이르러야만 정신을 차리는 경향이 있는데 나도 범부(凡夫)라서인지 어찌할 도리가 없나보다. 이렇게라도 애쓰고 힘쓰면 내 힘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절대자인 그분이 내 손을 잡아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더욱 힘써 내 마음을 정돈하고 싶다. 신앙은 내가 절대자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그분이 내 손을 잡아주도록 손을 내미는 것이다.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는 마음이 다급하거나 절실할 때면 자기 손을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심리가 곧 기도요, 더 나가 신앙심에 이른다. 이러한 신앙은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팔찌를 바라본다. 그럴 때면 내 마음에 소망이 넘친다. 어느 땐가는 마음의 흙탕물이 모조리 쏟아지는 날, 맑은 정수(淨水)가 한 줄기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 강으로 바다로 유유히 흐르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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