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이의민
페이지 정보

본문
지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오늘은 아버님께서 지게를 만든다고 하셨다. 마당 한쪽 양지바른 곳에 톱, 망치, 끌, 자귀, 낫 등 연장을 챙겨 놓으시고 나더러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지게를 만들 때 붙잡아 달라며 놀러 나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해동이 되지 않아서인지 바람 끝이 쌀쌀했다.
아버님은 산에만 가시면 소나무밭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으셨다. 아버님의 지게에는 톱과 낫을 꼭 가지고 다니셨다. 나무를 하러 가시건, 화전을 일구러 가시던 숲에 들어서면 소나무를 유심히 살피셨다. 그건 지게 감을 찾느라고 그러신 것이다. 몸통에서 튼튼한 가지가 뻗어 나가 지게 감으로 적당하면 그 나무를 적당히 잘라 챙겨두시고 나무 한 짐을 한 뒤에 거기에 얹어 가지고 오셨다. 우리 집 행랑채 허청 그늘진 곳에 지게 감을 세워 말렸다. 그렇게 준비한 것으로 오늘 지게를 만든다고 하신 것이다.
그 시절 시골생활에 지게는 꼭 필요한 운반수단이었다. 집집마다 지게가 없는 집이 없었고 일할 수있는 남자 숫자대로 지게가 있었다. 지게가 아니면 꼼짝도 못했다. 지게는 들이나 산이나 지고 나가야 일을 할 수있는 필수품이었다. 한때는 서울역이나 전주역에도 지게꾼이 있어 짐을 날라주고 그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전국 각 도시의 역이나 버스 터미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으레 지게꾼이 있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힘 좋기로 이름이 났다. 일제강점시대에 동네 앞산에 발매가 이루어졌는데 큰 통나무관동을 우리 아버지가 지게에 짊어지고 동네로 내려오는걸 보고 '야,우리 아버지 정말 힘이 쎄구나' 할 때도 있었다.
지게는 자연 통나무 몸통과 가지로 이루어졌지만 아무리 무거운 걸 짊어져도 그 가지가 찢겨지는 일 없이 튼튼했다. 쇠로 만든 것보다도 더욱 튼튼한 것 같았다. 그리고 지게는 꼭 소나무로 만들어야 했다. 잡목으로는 만들 수가 없다. 나뭇결이 너무 세고 단단해서 끌로 구멍을 파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 그런 지게를 만든다며 허청에서 반쯤 마른 지게 깜 통나무를 가지고 나오셨다. 자귀로 찍어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데 오른쪽 왼쪽 바르게 깎아 대패질을 하고 끌로 지게 중앙쯤에 직사가형 구멍을 세네 개 뚫어 짝을 맞추었다. 짚으로 엮은 등거리와 새아씨 댕기머리처럼 곱게 땋은 질방끈을 만들어 부착하니 그게 바로 내 지게였다. 그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지게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볏단도 짊어 나르고, 땔나무도 해오기 시작하는 등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지게질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한 2년 지게를 지고 살던 어느 날, 뒷산 깊은 골짜기에서 나무 한 짐을 짊어지고 비탈진 오솔길을 내려오는데 발이 미끄러져 한길이나 되는 밑의 개울로 굴러 떨어졌다. 무릎도 다치고 손등도 벗겨지며 얼굴에도 상처가 났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개울가 한쪽에 앉아 실컷 울었다. 나뭇짐을 챙기며 마음속으로 나는 앞으로 다시는 지게질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뒤 한 달여 만에 집을 나와 객지로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게질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뭇짐을 지고 넘어져 뒹굴게 된 것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지게질보다는 낳을 것 같았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살면서 그 뒤로는 지금까지 다시는 지게를 지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지계는 그 시대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하고 능률적인 생활도구였던 것이다.
(2010.12.5.)
- 이전글희망의 씨앗/이신구 10.12.17
- 다음글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이신구 10.12.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