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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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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0회 작성일 10-12-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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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우리 집 10대뉴스 전주안골노인 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2010년 새 달력을 구하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훌쩍 가고 있다. 오늘은 은행에 들러 2011년 달력을 새로 얻었다. 달력이 없다면 세월도 멈출까? 헌 년(2010年)을 보내고 새 년(2011年)을 맞자니 괜히 쑥스럽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지난해 우리 집에도 다시는 오지 않을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물론 세월도 한 번 흘러가면 다시 오는 법이 없지만……. ① 며느리의 귀향: (2010.02.05) 아내와 며느리의 끈끈한 관계를 이야기했던 '풋고추 절이 김치'의 무대가 바뀌었다. 서울과 전주가 아니라 이제는 전주로 합쳐졌다. 주말부부 노릇을 하던 견우 아들과 직녀 며느리가 꿈에도 그리던 오작교를 건너 전주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며느리는 그동안 홀로 서울에 살면서 집을 털리고, 유산을 하며, 길에다 돈을 깔고 지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정이 될 테고, 서울의 억대 셋방에서 벗어났으니 경제적으로도 나아지려니 싶다. 맞벌이인 며느리가 서울에서 전주로 오는 데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며느리 직장의 최고 인사권자에게 내가 애절한 사연을 편지로 띄웠더니 처음엔 파견근무 형식으로 발령이 났다. 언제 또 환원될지 모르는 불안한 귀환이지만 그래도 좋다고 했다. 살림집도 이웃에 마련하여 살게 되었다. 나는 '풋고추 절이 김치' 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정다운 밀어를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보아야 하니 눈꼴이 시어 힘들다. ② 열세 번째 이사 : (2010. 03. 25) 셋방살이 9번에 아파트 살이 4번 등 모두 13번째 이사를 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자의반 타의반 쫓겨 다녔고, 13평짜리와 임대아파트로 전전하다 그사이 신혼 살림살이는 다 때려 부수고 말았다. 그동안 잃어버리거나, 낡아서 버렸다. 겨우 32평짜리 아파트 대출금을 갚자마자 20년이 지나 또 아파트를 바꾼 것이니 이젠 마지막이려니 싶다. 4천만 원을 더 보태고도 크기가 줄어든 30평짜리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좁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사 올 때 1억 2천만 원을 주었는데 벌써 5천만원이 올랐다지 않던가? ③ 조상을 모시는 영묘원(永墓園) 조성: (2010. 06. 16 음 5/5) 우리 집은 6대를 외아들로, 그리고 5대는 형제로만 이어온 집안이다. 순수혈통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8촌 이내 친척이 다 모여도 몇 명 안 된다. 먼 곳에 흩어져 살지만 다 모여야 겨우 5~6명이다. 애경사 때는 너무 단촐해서 쓸쓸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숭조사상이 투철하신 형님이 종산에 ‘영묘원(永墓園)’을 조성하여 10대조 할아버지부터 모두 쌍분으로 13기를 모셔, 후손들이 숭조 및 성묘를 하는데 편리하도록 큰일을 하셨다. ‘이렇게 한데 모아 놓았으니 잘 되었다고, 서로 미루고 아주 안 오면 어쩌지?’ 그러고도 또 걱정이다. 이제 벌초와 묘지관리는 물론 선영의 뜻을 이어 받아 친족간의 정을 더욱 두텁게 하고, 선조께서 후손에게 바라시던 바를 깨달아 우리의 큰 꿈을 가꾸어야 할 것 같다. ④ 격월간 <수필과 비평> 109호에서 수필가로 등단 : (2010. 08.16) 2009년도부터 屯山 김상권 교장의 권유로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에 입문하여 김 학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제 막 수필다운 글을 쓴다는 말을 듣는 내가 칠순의 문턱에서 ‘등단’의 영광은 안았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격월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에서 ‘깜밥’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게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고희古稀의 해인 올해에 자서전 겸 수필집을 내고 싶어 열심히 써서 60여 편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졸작도 많고, 시간에 쫓겨 내년으로 미루었다. 수필은 자신의 생활이요 화자와 청자가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과 같아 ‘자화상, 자신의 나상’이라고 했기에, 더욱 두렵고 내놓기에 겁이 난다.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생활철학을 남들에게 펼쳐 놓기가 두려운 것이다. 헤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이란 소설을 무려 2백 번이나 퇴고를 했다지 않던가? 나도 앞으로 더 읽고 고치며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⑤ 셋째아들 완(輐) 브라코 코리아에 재취업 : (2010.05.10) 완이는 막 태어나서 간호사에게 오줌벼락을 주고, 귀여움을 받으며고 어리광을 잘 부린 아이다. 꼬맹이라고 얻어터지면서도 형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놀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래도 대학에서 영문과를 나와 제약회사 코디네이터로 들어가 종근당을 거쳐 외국계 회사인 룬드백 코리아(덴마크)에 근무하던 중 스키사고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는 바람에 실직을 하고 말았다. 그 뒤 바이엘(독일)에 들어가더니 무슨 생각인지 때려치우고, 브라코 코리아(이태리)로 옮겼다. 자꾸 직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고 하니, ‘보수와 업무’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항상 귀여운 막둥이는 아니니까 제 앞가림은 잘 하리라 믿는다. ⑥ 古稀를 맞다: (陰 2010. 11월 09일) ‘대통령 이름을 불러도 결례가 되지 않는 나이’가 고희란다. 내 인생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 속에서 태어나, 동족상잔의 시련을 겪고, 지금도 포탄이 펑펑 터지니 편안할 날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보다 모진 경험과 고초를 겪었다. 자랑할 것 하나도 없는 주제에 그래도 자부심에 우쭐(?)대며 살아온 칠순이다. 어렸을 적 내 생일은 말만 생일이지, 따뜻한 밥상과 미역국을 한 번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추운 겨울 날, 빙판에 넘어지면서 인근 교회를 찾아가서 떡과 사탕을 얻어먹은 추억 때문에, 만세력을 찾아보니 내 생일이 양력으로는 1941년 12월 26일이었다. 해마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무렵이었기에 하느님이 떡을 내리셨던가 보다. 어려서는 빨리 세월이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어떻게 고희란 놈이 그걸 알고 쏜살같이 내 곁에 다가와 버렸다. 어인 일인가? 오늘부터 남은 세월을 지난 세월보다 더 가치 있게 보낼 계획을 세워야겠다. ⑦. 교육 컨설팅과 상담사 위촉 지인들은 퇴직 후에도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격려해 주지만, 개인적으로나 가족행사가 있는 날 컨설팅 위촉이 오면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교육청에서 위촉을 받아 7년여를 교사 수업개선 컨설팅, 학교평가, 교수-학습 연수회를 하고 있다. 교직 말년에 대학원에서 공부한 자료와 최신 교수방법을 인터넷에서 찾고, 42년의 교육경험을 살려 지도 자료를 작성하면서 긍지와 자부심으로 임하고 있다. 또 상담실에서 아동상담을 하면서, 심리상담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 퇴직 후에도 학교와 교직원과 그리고 평생 고객이었던 학생과의 인연을 놓지 않고 있으니 흐뭇하다. 언제까지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 ⑧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다 둘째아들 부부가 주선해서 해마다 가족여행을 한다. 금년에는 8월 21일(토)부터 24일(화)까지 3박 4일간 제주도를 다녀왔다. 애들이 어렸을 적 무작정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애들 의사를 무시하고, 부모가 전권을 휘두르며 가족여행이랍시고 몰고 다녔지만, 그 보답을 톡톡히 받는다. 해마다 명승지를 찾아 최신 시설이 갖추어진 콘도나 호텔에서 3박 4일을 쉬고 온다. 해마다 달라지는 관광지, 볼거리가 많은 제주도에서 즐겁게 지냈다. 여행도 나이가 드니 옛날 느낌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만 따라 다니고 젊은애들끼리 가도록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에는 우리끼리 갈까? 그런데 너무 심심할 테니 차라리 친구가족들과 같이 가야겠다. ⑨ 헬스클럽을 옮기다 ( 녹주헬스 → 오케스트라) 전주 인후동 안골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우아동 녹주헬스사우나를 다녔다. 원래 게을러 규칙적인 운동을 못하는 처지라 날마다 헬스 방에 가서 간단한 운동기구 몇 개 이용하고, 녹주 찜질 방에서 땀 좀 내고 사우나로 내려와 따뜻한 물로 씻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다. 그것이 나의 운동이었다. 녹주헬스가 운영에 애로가 있어 9월 1일부터 리모델링을 하여 다시 개업한다기에 나머지 회원권을 반납하고, 환불을 받아 다른 데로 옮겼다. 여러 군데 수소문 했으나 헬스, 찜질, 사우나를 고르게 갖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거리는 멀고 회비도 비싸지만 시설이 좋은 오케스트라로 옮겼다. 날마다 돈을 주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온다고 놀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운동을 좀 열심히 해야겠다. ⑩ 이를 금니로 치장하다 임플란트 가격이 높아 입 속에 글랜저를 넣고 다닌다는 동서의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금니를 새로 하려면 금값이 한 돈에 20만원이 넘는다니 그럴만도 하려니 싶었다. 2003년에 6만 5천 원 했던 금값이 왜 그렇게 많이 올랐을까? 그럴 줄 알았으면 금을 좀 많이 사 놓을걸……. 하필이면 요즘 이가 삭고, 빠지고, 잇몸까지 안 좋아 엉망이다. 치과병원에 갔더니 몇 달을 쑤시고 빼고, 갈더니 (2010.10.29. 10회 진료) 금니를 해 넣어야 한다고 했다. 아프고 시리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백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먹지 않고는 살 수도 없고……, 별 수 없이 없는 돈을 긁어모아 이를 해 넣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미리 이빨에 관심을 갔고 잘 닦던지, 젊었을 때부터 이를 조심했어야겠지만 이제는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나도 지금 입속에 티코쯤 넣고 다닌다. 우리 집 10대 뉴스를 찾자니 그것도 힘들었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모두 그 중요도가 다르겠고 나도 모르는 중요한 뉴스거리가 더 있는지도 모른다. 말들을 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다른 구성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드려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10대 뉴스를 선정하면서 지난 일을 회고하고 앞일을 계획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해마다 10대 뉴스를 쓰면 우리 가족의 역사나 실록이 되겠구나 싶다. (2010.12. 16.) 2010년 우리 집 10대뉴스 전주안골노인 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2010년 새 달력을 구하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훌쩍 가고 있다. 오늘은 은행에 들러 2011년 달력을 새로 얻었다. 달력이 없다면 세월도 멈출까? 헌 년(2010年)을 보내고 새 년(2011年)을 맞자니 괜히 쑥스럽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지난해 우리 집에도 다시는 오지 않을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물론 세월도 한 번 흘러가면 다시 오는 법이 없지만……. ① 며느리의 귀향: (2010.02.05) 아내와 며느리의 끈끈한 관계를 이야기했던 '풋고추 절이 김치'의 무대가 바뀌었다. 서울과 전주가 아니라 이제는 전주로 합쳐졌다. 주말부부 노릇을 하던 견우 아들과 직녀 며느리가 꿈에도 그리던 오작교를 건너 전주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며느리는 그동안 홀로 서울에 살면서 집을 털리고, 유산을 하며, 길에다 돈을 깔고 지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정이 될 테고, 서울의 억대 셋방에서 벗어났으니 경제적으로도 나아지려니 싶다. 맞벌이인 며느리가 서울에서 전주로 오는 데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며느리 직장의 최고 인사권자에게 내가 애절한 사연을 편지로 띄웠더니 처음엔 파견근무 형식으로 발령이 났다. 언제 또 환원될지 모르는 불안한 귀환이지만 그래도 좋다고 했다. 살림집도 이웃에 마련하여 살게 되었다. 나는 '풋고추 절이 김치' 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정다운 밀어를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보아야 하니 눈꼴이 시어 힘들다. ② 열세 번째 이사 : (2010. 03. 25) 셋방살이 9번에 아파트 살이 4번 등 모두 13번째 이사를 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자의반 타의반 쫓겨 다녔고, 13평짜리와 임대아파트로 전전하다 그사이 신혼 살림살이는 다 때려 부수고 말았다. 그동안 잃어버리거나, 낡아서 버렸다. 겨우 32평짜리 아파트 대출금을 갚자마자 20년이 지나 또 아파트를 바꾼 것이니 이젠 마지막이려니 싶다. 4천만 원을 더 보태고도 크기가 줄어든 30평짜리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좁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사 올 때 1억 2천만 원을 주었는데 벌써 5천만원이 올랐다지 않던가? ③ 조상을 모시는 영묘원(永墓園) 조성: (2010. 06. 16 음 5/5) 우리 집은 6대를 외아들로, 그리고 5대는 형제로만 이어온 집안이다. 순수혈통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8촌 이내 친척이 다 모여도 몇 명 안 된다. 먼 곳에 흩어져 살지만 다 모여야 겨우 5~6명이다. 애경사 때는 너무 단촐해서 쓸쓸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숭조사상이 투철하신 형님이 종산에 ‘영묘원(永墓園)’을 조성하여 10대조 할아버지부터 모두 쌍분으로 13기를 모셔, 후손들이 숭조 및 성묘를 하는데 편리하도록 큰일을 하셨다. ‘이렇게 한데 모아 놓았으니 잘 되었다고, 서로 미루고 아주 안 오면 어쩌지?’ 그러고도 또 걱정이다. 이제 벌초와 묘지관리는 물론 선영의 뜻을 이어 받아 친족간의 정을 더욱 두텁게 하고, 선조께서 후손에게 바라시던 바를 깨달아 우리의 큰 꿈을 가꾸어야 할 것 같다. ④ 격월간 <수필과 비평> 109호에서 수필가로 등단 : (2010. 08.16) 2009년도부터 屯山 김상권 교장의 권유로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에 입문하여 김 학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제 막 수필다운 글을 쓴다는 말을 듣는 내가 칠순의 문턱에서 ‘등단’의 영광은 안았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격월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에서 ‘깜밥’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게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고희古稀의 해인 올해에 자서전 겸 수필집을 내고 싶어 열심히 써서 60여 편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졸작도 많고, 시간에 쫓겨 내년으로 미루었다. 수필은 자신의 생활이요 화자와 청자가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과 같아 ‘자화상, 자신의 나상’이라고 했기에, 더욱 두렵고 내놓기에 겁이 난다.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생활철학을 남들에게 펼쳐 놓기가 두려운 것이다. 헤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이란 소설을 무려 2백 번이나 퇴고를 했다지 않던가? 나도 앞으로 더 읽고 고치며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⑤ 셋째아들 완(輐) 브라코 코리아에 재취업 : (2010.05.10) 완이는 막 태어나서 간호사에게 오줌벼락을 주고, 귀여움을 받으며고 어리광을 잘 부린 아이다. 꼬맹이라고 얻어터지면서도 형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놀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래도 대학에서 영문과를 나와 제약회사 코디네이터로 들어가 종근당을 거쳐 외국계 회사인 룬드백 코리아(덴마크)에 근무하던 중 스키사고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는 바람에 실직을 하고 말았다. 그 뒤 바이엘(독일)에 들어가더니 무슨 생각인지 때려치우고, 브라코 코리아(이태리)로 옮겼다. 자꾸 직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고 하니, ‘보수와 업무’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항상 귀여운 막둥이는 아니니까 제 앞가림은 잘 하리라 믿는다. ⑥ 古稀를 맞다: (陰 2010. 11월 09일) ‘대통령 이름을 불러도 결례가 되지 않는 나이’가 고희란다. 내 인생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 속에서 태어나, 동족상잔의 시련을 겪고, 지금도 포탄이 펑펑 터지니 편안할 날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보다 모진 경험과 고초를 겪었다. 자랑할 것 하나도 없는 주제에 그래도 자부심에 우쭐(?)대며 살아온 칠순이다. 어렸을 적 내 생일은 말만 생일이지, 따뜻한 밥상과 미역국을 한 번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추운 겨울 날, 빙판에 넘어지면서 인근 교회를 찾아가서 떡과 사탕을 얻어먹은 추억 때문에, 만세력을 찾아보니 내 생일이 양력으로는 1941년 12월 26일이었다. 해마다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무렵이었기에 하느님이 떡을 내리셨던가 보다. 어려서는 빨리 세월이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어떻게 고희란 놈이 그걸 알고 쏜살같이 내 곁에 다가와 버렸다. 어인 일인가? 오늘부터 남은 세월을 지난 세월보다 더 가치 있게 보낼 계획을 세워야겠다. ⑦. 교육 컨설팅과 상담사 위촉 지인들은 퇴직 후에도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격려해 주지만, 개인적으로나 가족행사가 있는 날 컨설팅 위촉이 오면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교육청에서 위촉을 받아 7년여를 교사 수업개선 컨설팅, 학교평가, 교수-학습 연수회를 하고 있다. 교직 말년에 대학원에서 공부한 자료와 최신 교수방법을 인터넷에서 찾고, 42년의 교육경험을 살려 지도 자료를 작성하면서 긍지와 자부심으로 임하고 있다. 또 상담실에서 아동상담을 하면서, 심리상담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 퇴직 후에도 학교와 교직원과 그리고 평생 고객이었던 학생과의 인연을 놓지 않고 있으니 흐뭇하다. 언제까지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 ⑧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다 둘째아들 부부가 주선해서 해마다 가족여행을 한다. 금년에는 8월 21일(토)부터 24일(화)까지 3박 4일간 제주도를 다녀왔다. 애들이 어렸을 적 무작정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애들 의사를 무시하고, 부모가 전권을 휘두르며 가족여행이랍시고 몰고 다녔지만, 그 보답을 톡톡히 받는다. 해마다 명승지를 찾아 최신 시설이 갖추어진 콘도나 호텔에서 3박 4일을 쉬고 온다. 해마다 달라지는 관광지, 볼거리가 많은 제주도에서 즐겁게 지냈다. 여행도 나이가 드니 옛날 느낌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만 따라 다니고 젊은애들끼리 가도록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에는 우리끼리 갈까? 그런데 너무 심심할 테니 차라리 친구가족들과 같이 가야겠다. ⑨ 헬스클럽을 옮기다 ( 녹주헬스 → 오케스트라) 전주 인후동 안골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우아동 녹주헬스사우나를 다녔다. 원래 게을러 규칙적인 운동을 못하는 처지라 날마다 헬스 방에 가서 간단한 운동기구 몇 개 이용하고, 녹주 찜질 방에서 땀 좀 내고 사우나로 내려와 따뜻한 물로 씻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다. 그것이 나의 운동이었다. 녹주헬스가 운영에 애로가 있어 9월 1일부터 리모델링을 하여 다시 개업한다기에 나머지 회원권을 반납하고, 환불을 받아 다른 데로 옮겼다. 여러 군데 수소문 했으나 헬스, 찜질, 사우나를 고르게 갖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거리는 멀고 회비도 비싸지만 시설이 좋은 오케스트라로 옮겼다. 날마다 돈을 주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온다고 놀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운동을 좀 열심히 해야겠다. ⑩ 이를 금니로 치장하다 임플란트 가격이 높아 입 속에 글랜저를 넣고 다닌다는 동서의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금니를 새로 하려면 금값이 한 돈에 20만원이 넘는다니 그럴만도 하려니 싶었다. 2003년에 6만 5천 원 했던 금값이 왜 그렇게 많이 올랐을까? 그럴 줄 알았으면 금을 좀 많이 사 놓을걸……. 하필이면 요즘 이가 삭고, 빠지고, 잇몸까지 안 좋아 엉망이다. 치과병원에 갔더니 몇 달을 쑤시고 빼고, 갈더니 (2010.10.29. 10회 진료) 금니를 해 넣어야 한다고 했다. 아프고 시리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백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먹지 않고는 살 수도 없고……, 별 수 없이 없는 돈을 긁어모아 이를 해 넣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미리 이빨에 관심을 갔고 잘 닦던지, 젊었을 때부터 이를 조심했어야겠지만 이제는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나도 지금 입속에 티코쯤 넣고 다닌다. 우리 집 10대 뉴스를 찾자니 그것도 힘들었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모두 그 중요도가 다르겠고 나도 모르는 중요한 뉴스거리가 더 있는지도 모른다. 말들을 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다른 구성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드려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10대 뉴스를 선정하면서 지난 일을 회고하고 앞일을 계획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해마다 10대 뉴스를 쓰면 우리 가족의 역사나 실록이 되겠구나 싶다. (2010.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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