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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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실을 거둔 경인년
- 2010년 우리 집 10대 뉴스 -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경인년이 훌쩍 지나갔다. 1년이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국가적으로 사건 사고가 많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었고, 연이어 연평도 피격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북한이 저지른 일이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지속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올 한 해 나는 부상이 많았다. 4월에는 발을 데어 여러 달 고생을 했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아있다. 11월에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큰 탈 없이 작은 결실이나마 거두어들인 1년이었다.
1. 결혼 50주년
결혼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는 음력으로 결혼 날을 받았으므로 음력 12월 17일이었다. 아들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떠들썩하게 잔치를 하거나 대접 받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 둘이 자축하기로 했다. 날씨가 따뜻한 때라면 경주에 가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추운 날씨라 목포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쳤다.
반세기를 살았으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내가 나에게 시집을 와서 3남 2녀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고 성혼시키느라 고생이 많았다. 선물을 사라고 금일봉을 주었다.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으니 그게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2. 아내 노영자 여사 고희 기념의 해
음력 9월 19일은 아내의 고희 날이다. 19살에 결혼하여 50년을 지나고 맞은 기념일이다. 아들딸들이 챙겨주어 전주 금양정에서 조그만 잔치를 했다. 손자손녀들까지 모여 조촐한 자축을 했다. 아들딸들의 선물은 금일봉으로 하여 갖고 싶은 것을 사도록 배려했다. 다음날은 전 가족이 내장산 등산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내의 뜻에 따라 한 일이라 편했다.
3. 제2 수필집 《계영배를 곁에 두고》상재
지난해에 《논두렁 밭두렁》이란 처녀 수필집을 냈는데, 올해에는 《계영배를 곁에 두고》라는 제2 수필집을 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책으로 묶은 것이다. 못난 자식도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엮어 놓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앞으로는 좀더 품격 높은 수필을 써야 부끄럽지 않은 수필집이 될 것 같다.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글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4. 몸에 부상이 잦았던 한 해
4월 3일 장뜰 조상의 묘에 가서 묘역 뒤 언덕의 잡풀을 죽이려고 불을 질러 태웠다. 그런데 갑자기 북풍이 불어와 불이 묘역으로 옮겨 붙었다. 묘를 태우면 안 되므로 발로 밟아 끄다가 발을 뎄다. 헌 등산화를 신어 구멍 뚫린 곳으로 화기가 들어온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3도 화상이라 쉽게 낫지 않아 새살이 돋는데 3개월이 걸렸다. 11월 30일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 접촉사고를 당했다. 바닥으로 굴러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신기독병원에서 3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 나왔다. 경인년엔 부상이 잦은 한 해였다.
5. 외손자 최예찬 수학능력 시험 치르다
안양 양명고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 최예찬이 특수반에 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 올해 3학년이라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공부하느라 고생을 해서 얼굴이 핼쑥하다. 점수가 잘 나오기를 고대하며 기도를 드렸지만 결과는 제 마음 먹은 만큼 못 나왔다고 한다.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6. 손녀 김하늬 미국 어학연수 마쳐
서강대학에 다니는 손녀가 미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왔다. 명덕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하였기에 미국에 갔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다. 3개월 조금 더 있다가 돌아왔다. 1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하므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으면 좋겠다. 전산학과에 다녔으므로 지금도 졸업 뒤에 오라는 곳이 여러 곳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7. 전주사범학교 제9회 동창회장에 피선
5월 16일 동창회장으로 뽑혔다. 동창회장은 봉사하는 자리이고 잘하면 본전이며 잘 못하면 크게 손해를 보는 자리라 서로 하지 않으려 한다. 나도 요청이 있었으나 극구 사양했었다. 화상(火傷)으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친구들이 짜고 총회에서 날치기로 선출하여 별 수 없이 맡게 되었다. 동창회원 중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한 이가 있어서 여러 회원의 협조를 받아 기념품을 증정하고, 상처를 한 친구를 위로하며, 황규상 은사님의 묘소도 참배했다.
8. 전라북도 서예협회 초대작가가 되다
문인화를 배운지가 8년이 되었다. 그동안 구상하고 그리고 버리기를 수천 번하였다. 작품을 각종 전시회에 내어 입선과 특선을 여러 번 하였다. 점수가 다 되어 올해 전라북도 서예협회에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 초대작가가 되었다. 9월 11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증서를 받았다. 초대작가 작품도 내어 전시하였다.
9. 둘째 사위 중국 소주 삼성지사에 파견 근무
삼성전자의 LCD분야에서 과장으로 있는 둘째 사위 노영래가 기술을 인정받아 세계 여러 곳의 지사에 나가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지사에 가서 3년간 살다 돌아오기도 했다. 다음은 중국어를 공부하라 하여 작년에 시험에 합격했었다. 대만에 갔다 오기도 하고 중국에도 나갔었는데 금년에는 중국 소주에서 대부분 있었다. 내년에는 중국 소주지사의 책임을 맡을 차례라 한다. 식구들을 데리고 떠나려 준비를 하고 있다.
10. 중국의 홍콩 마카오 선전에 이어 일본 대마도 여행을 다녀오다
올해는 금혼(金婚)과 아내 고희 기념으로 외국 나들이를 두 번이나 했다.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의 홍콩과 마카오 선전을 다녀왔다. 중국 땅이지만 출입국 관리를 하는 관계라 외국이나 같은 곳이다. 홍콩과 마카오는 국력이 약해진 중국이 옛날 영국과 포르투갈에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땅이다. 외국 냄새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었다. 중국의 한(恨)이려니 싶다.
8월 6일에는 배를 타고 건너가서 일본 대마도의 아리아케산을 등산했다. 편백 같은 쓸모 있는 나무가 많았다. 7일에는 차를 타고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모두 산이고 논밭이 없어 먹을거리가 생산되지 않았다. 옛날에 대마도의 왜구가 우리나라를 노략질했었는데 먹을 게 없으니 그럴만하다고 여겨졌다.
커다란 일은 없었어도 올해는 제법 결실을 거둔 해였다.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했고, 문인화 초대작가증서도 받았다. 또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맞았고 아내의 고희라 작은 축하연도 베풀었다. 그 기념으로 중국과 일본 여행도 하여 뜻이 깊은 한 해였다. 또 동창회장이 되어 회장 소리도 듣게 되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새해다. 2011년 신묘년에는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나라가 평온하여 경제적으로 높은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 서민들이 좀더 나은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일자리가 많아져 모두 먹을 걱정 않고 살았으면 한다. 토끼처럼 재주가 있고 날렵한 사람들이 많아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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