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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문학기행/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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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804회 작성일 10-11-1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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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문학기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창영 독서의 계절 가을에 문향을 따라 옥천으로 문학기행을 나섰다. 오늘은 행촌수필문학회와 안골수필반이 함께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행촌수필 사무국장께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요반, 목요반. 금요반, 안골수필반이 함께 하였으니 각자 자기소개를 하라고 기회를 주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마다 멋지게 자기소개를 한 사람들을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이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랑거리도 없고 해서 문학기행에 처음 참석한다는 것과 앞으로 좋은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무들은 마지막 잎 새를 떨구어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고, 들녘은 가을걷이가 끝나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느낌이었다. 먼저 도착한 곳이 정지용문학관이었다. 영상으로 '현대문학의 재발견'을 보고 전시실에서 지용의 삶과 문학을 살펴 볼 수 있었다. 1902년에 출생하여 1950년까지의 문학 활동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로 <향수>가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향수란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향수에 젖게된다. 월북 작가로 묶였다가 1988년에 해금되어 우리에게 되살아나고 있다. 문학관 앞에는 생가가 있는데 초가집으로 옛 모습 그대로였다. 마당은 좁고 앞에는 광이 한 채 있으며 그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문학관을 나와 옥주사마소(司馬所)로 갔다. 사마소란 조선시대에 고을마다 생원이나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한 곳이다. 육영수 생가지는 육영수 여사가 1925년에 태어나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며 “교동집(校洞宅)” 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문가다. 1600년 대부터 김 정승, 송 정승, 민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지역 상류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후 육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陸鍾寬)씨가 민 정승의 후손으로부터 매입하여 기단을 높이고 개축하였는데 본래의 모습과는 달라 1999년에 철거하고 2002년 4월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어 여러 차례의 발굴과 고증을 통해 2004년 12월에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2005년 5월에 사랑채, 위채, 아래채, 사당 등 13동 부대시설 복원공사를 완공하였다. 생가지 내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저장고와 연자방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상류사회에서도 보리밥을 먹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생가지 부근에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있으며 일반주택도 잘 정돈되어 있어 생활이 궁색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문향헌(聞香軒)에 들렀다. 이 고택은 두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왼쪽 건물은 문향헌으로 애국지사 범재 김규홍 선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으로 1760년에 건립된 것이며, 오른쪽은 애국지사 오상규 선생이 거처한 곳으로 지금은 문화관광부와 옥천군이 춘추민속관이란 이름으로 전통 한옥체험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지용의 시 <할아버지>를 만나니 더 반가웠다. 할아버지가 담배ㅅ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네 이 시는 비가 와 곡식을 자라게 하고, 해가 떠서 곡식을 여물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곳에서 고택의 향기를 맛볼 수 있었다.장계관광지는 책을 쌓은 모양의 큰 조형물이 있어 문학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대청호의 푸른 물과 함께 정지용 시가 바닥에, 벽에, 휴식할 수 있는 의자에 새겨져 있어 어린이들의 소풍장소로도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의병장인 중봉 조헌 선생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표충사와 묘소를 참배했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우리를 위하여 옥천에서 여기까지 동참했으며 조헌 선생의 충정어린 호국정신을 잘 설명해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랑스럽게 살자는 의지를 갖게 해 주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에 갖게 된 이번 옥천 문학기행은 뜻깊고 유익한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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