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의 전설/김병규
페이지 정보

본문
수덕사의 전설
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가을 문을 활짝 연 하늘이 자꾸만 높아간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솟아오르고 허공이라도 훨훨 날고 싶다. 몸은 열 발을 걷기 힘들어도 마음은 천리 길이라도 달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택연금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여행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고대하던 문학기행도, 가을맞이 각종 야외행사에도 참석할 수가 없다. 허리통증으로 활동이 제한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느낄 때가 있으나, 그런 감정은 잠시다. 네 마디의 허리뼈 시술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를 떠올리면, 가까운 이웃이라도 산책할 수 있고 재활의 희망이 있어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행운아라 여긴다.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잔잔한 물결에 파문이 일 듯 가슴을 흔드는 소식이 왔다. 150여 명의 남녀 회원으로 구성된 모세경로대학의 가을소풍이었다. 95살까지 포함된 회원은 3대의 관공버스를 이용하여 수덕사를 거쳐 덕산온천까지 다녀온다는 계획이었다. 행선지가 수덕사라는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95살의 회원도 가는 길에 젊은 도우미도 있으니 나도 참가할 수 있는 여행이라 여겼다.
수덕사는 내가 찾고 싶었던 절이다. 여승들이 많고 나이 어린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이어서 그들의 생활상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싶었다. 김문중이 작사하고 송춘희가 부른 노래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래에는 비구니가 된 어린 낭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곱고 예쁜 낭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수도하는 수덕사, 승적에 오르려[出家得道]는 낭자들의 모습이 애잔하게 떠오른다. 내가 수덕사를 찾고 싶은 내력은 또 있다.
내 동기간처럼 가까운 친척이 남매를 두었다. 훤칠한 몸매에 예쁜 얼굴, 재주도 뛰어난 딸이 서울의 명문대학을 나왔다.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장래가 보장되는 아이였다. 그런데 근무 2년 만인 24살의 꽃처럼 아름다운 나이에 머리를 깎고 출가(出家)를 했다. 예고도 없이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부모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던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예쁘지나 말고 재주라도 없었으면 이렇게 미련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 푸념하는 부모의 마음을 본인이 알기나 할는지…….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딸이 그 수행의 길을 택하기까지는 많은 고뇌를 했을 것이다. 그리움과 미소로 추억된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이 떠올랐을 것이고, 가슴으로 안아준 아버지의 사랑도 생각났을 것이다. 그 딸이 스님이 되어 수덕사에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나는 더 찾고 싶었다.
나이 어린 여승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수덕사에 도착했다. 나이 든 내가 여승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들 허물이 되지 않을 성싶어서였다. 그러나 여승들은 보이지 않고 보살들만 분주한 걸음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비구니 100여 명이 제1선원인 견성암(見性庵)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엄숙하고 혹독한 수행이라 했다. 나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견성암 주위만 서성이다 수도하는 여승의 그림자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면서, 저 안에서 100여 비구니들이 꽃다운 젊음의 정열을 불태우며 수행 정진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는 나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수덕사의 전설이란 전단이었다. 수덕사 인근에 훌륭한 가문의 수덕도령이 살고 있었다. 도령이 사냥을 갔다가 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상사병에 걸린 도령이 낭자를 수소문했더니 낭자는 인근 마을에 홀로 사는 덕숭낭자였다. 도령은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도령이 끈질기게 청혼을 하자 낭자는 입을 열었다.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준다는 조건으로 청혼을 승낙했다. 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도령은 다시 목욕재개하고 재건축을 시작했으나 때때로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나서 완성치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지었다. 그 뒤 낭자와 결혼을 했으나 낭자는 자기 몸에 도령의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이를 참지 못한 도령이 낭자를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로 가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 남아 있었다. 그 자리는 온통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 모양의 하얀 꽃이 피었다. 이 꽃이 버선꽃이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 뒤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했다는 전설이다.
수덕사의 전설 속에는 의미 깊은 사연이 담겨있다. 속세의 갖가지 사연을 버리고 출가한 어린 낭자들, 그들이 수행 정진하는 지침이 되었다. 속세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모두 버리고 오직 수도에 정진할 때 거기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 참된 인생의 가치를 터득할 것이다. 나는 수덕사의 전설 따라 수도 정진하는 어린 낭자들의 애잔한 모습이 떠올라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2010. 11. 15.)
- 이전글나라와 겨레를 지키려고/김길남 10.11.16
- 다음글참깨밭에서/이금영 10.11.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