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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치즈마을/임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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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14회 작성일 10-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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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마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영희 전북 임실군 임실읍 금성리 느티마을. 마을입구에 가면 젖소가 새겨진 이색조형물이 사람보다 먼저 탐방객을 맞이한다. 이곳 느티마을이 치즈체험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부터였다. 처음에는 마을 안쪽 젖소농장에서 치즈와 요구르트 제품을 홍보할 목적으로 소박하게 시작했었다. 그런데 가족단위 투어가 점점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더니,마을 전체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2006년 하반기부터는 한 달에 2,3천 명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예 마을이름도 ‘치즈마을’로 바꿔 버렸다. 전주에서 2,30분거리에 위치한 치즈마을. 전국에서 찾아오는 체험객들 때문에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누구나 자랑스럽게 “우리마을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입니다!”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1위는 단연 피자와 햄버거다. 대체 무슨 맛으로 피자를 먹는 걸까? 피자의 맛은 십중팔구 도우와 치즈의 맛이다. 그중에서도 치즈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치즈는 서양의 발효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60년대 초반부터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치즈의 산 역사를 간직한 곳이 바로 임실 치즈마을이다. 1966년 임실을 찾아온 파란 눈의 서양신부가 있었다. 그 신부의 국적은 벨기에요, 이름은 디디에 세르반테스였다. 그 신부의 한국이름은 ‘지정환’이었다. 임실 치즈마을의 성공은 오로지 이 지정환 신부의 공이다. 지정환 신부의 지도로 1960년대 말부터 이 치즈마을에서는 산양을 길러 우유를 생산하고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59년에 한국으로 파견된 지정환 신부는 부안성당을 거쳐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오게 되었다. 지정환 신부가 보기에 당시 전라북도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소득이 될 만한 작목을 만들어야 했다. 지정환 신부는 그 작목으로 ‘치즈’를 선택했던 것이다. 풀과 젖소만 있으면 얼마든지 치즈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실에 도착한 지정환 신부는 산양 두 마리를 기르면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 농민들에게 치즈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며 전파시켰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임실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치즈공장이 세워졌다. 오늘날 피자상자에서 보이는 지정환 신부의 얼굴사진에는 그런 역사가 숨어있다. 현재 지정환 신부는 완주군 소양면으로 옮겨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살고 있다. 지정환 신부 역시 ‘다발성 신경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2003년과 2004년에는 국제발효식품 엑스포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난한 농부들에게 당장의 밥 한 그릇을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벗어날 근본적인 방법을 가르치고자 했던 지정환 신부, 그 지정환 신부의 꿈은 임실 치즈마을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지정환 신부가 심은 치즈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서 어느새 치즈마을이란 거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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