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날아온 기쁜 소식/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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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날아온 기쁜 소식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에는고개 숙인 벼가 그득하다. 논두렁 밭두렁에도 주렁주렁 매달린 콩들이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는 쳐다만 봐도 새콤하다. 일교차에 시달리며 탐스럽게 매달린 배는 봉지에 싸여 풍성하다. 오곡백과가 만발하고, 들에는 국화꽃과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길손들에게 기쁨과 향기를 선사하고 있다. 이 좋은 계절, 10월 상달 보름날, 우리 큰손자 범석이가 태어났다.
“여보세요! 성준이냐? 오늘이 네 생일이지? 생일 축하한다.”
“할머니! 저 대학1차 수시모집에 합격했어요."
"그래? 잘했다. 축하한다."
가슴에 벅찬 환희가 일렁이며 2년 전 암담했던 일들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어쩌다가 아들네 집에 가보면 범석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무슨 영문인지 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대학입시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해도 모자랄 시간에 컴퓨터만 가지고 놀고 있으니 애가 타고 미웠다. 그 아이 속셈을 알 수 없어 넌지시 물어봤다. 컴퓨터는 잘하면서 왜 공부는 하지 않느냐고. 공부가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럼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요즘아이들은 부모말도 듣지 않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이니 큰 걱정이 되었다.
2학년1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날, 갑자기 큰손자가 전주에 왔다.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인사를 하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고등학교 1학년을 건성으로 다녀 성적은 떨어져 학교 가는 것이 싫어졌단다. 어미가 어르고 달래서 얻어낸 해답이 한국에서는 학교 다니기 싫으니 외국유학을 보내달라고 떼를 쓴 모양이다. 애비에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민 끝에 필리핀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어를 상용어로 쓰는 국가여서 언어연수 보낸 셈치고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몰아치는 폭풍같은 사연에 할 말을 잃었다.허황된 생각으로 집을 나가 못된 길로 빠지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타국에서나마 공부를 하겠다니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찌는 여름과 가을도 훌쩍 지나 어느새 겨울이 돌아왔다. 어느 날 범석이가 방학이 되어 10개월 만에 귀국하여 인사차 왔다. 손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좋은 몸매와 예쁜 얼굴은 흔적도 없고, 앙상하게 마른 허수아비가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가 막혔다. 애비와 손자를 앉혀놓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몰골을 보이려고 많은 돈을 들여 고생을 자처했느냐고 야단을 쳤다. 애비는 고개만 푹 숙이고, 손자 녀석이 말대꾸를 했다. 이곳에서는 공부가 되지 않아 꼴등을 해도 되겠느냐며 울먹였다. 할 말이 없었다. 다시는 필리핀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서울에서 일반계고등학교에 복학을 하던지, 기술계고등학교를 택하든 신중히 생각하되 선택은 너의 몫이라고 강경히 말했다. 돌이켜보니 짠하고 안쓰러웠다. 더위에 시달리고, 입이 짧은 녀석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굶기를 밥 먹듯 했을 것은 뻔했다. 외로움에 지치고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손자가 가여웠다.
얼마가 지난 뒤 어느 날, 멋진 교복을 입은 범석이를 보았다. 고심 끝에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하여 2학년으로 편입했단다. 나는 대학교에 가야한다고 한사코 일반계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 애 생각은 달랐다. 손자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어려운데 왜 힘든 길을 택하느냐고 제법 어른스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존심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은, 뼈아픈 고통을 체험했기 때문에 올바른 길이 보였나 보다. 그 고통이 교훈이 되어 인내를 기르고 미래를 파악할 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며, 마음먹기에 달렸다.
범석이는 사춘기 때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뉘우치고 있을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와 적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 잘 적응하면서 1등을 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에 합격하였으니 기특하고 고맙다. 헛된 망상을 버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성싶다. 아무리 좋은 학교, 훌륭한 직업이라 할지라도 적성에 맞지 않고 하기 싫으면 자기의 길이 아니지 않은가?
순간적인 헛된 생각으로 방탕한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집을 나가 소식조차 알길 없는 부모들은 하소연도 못하고 그 맘은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다. 철부지로 굴던 녀석이 쓰디쓴 대가를 치르고나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어서 대견하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며 가족들에게는 곰살궂은 의젓한 장손이 되었다. 소망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이제부터는 대망을 품고 힘차게 전진하기 바란다. 우물 안 개구리는 큰 뜻을 품지 못한다. 우물밖으로 뛰쳐나와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뛰기를 바란다.
(2010.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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