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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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
김 학
수필에게는 수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시나 소설, 희곡, 평론, 시나리오의 길이 아니라 수필의 길이다. 수필이 그 수필의 길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수필이 아니다. 한 눈 팔지 않고 그 수필의 길을 꾸준히 걷는 수필가야말로 언젠가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수필고지에 올라 만세를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독자들로부터는 칭송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또 수필가에게는 수필가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수필가가 걸어야 할 그 길은 수필의 길 안에 있다. 수필가가 그 길을 벗어난다면 그는 이미 수필가가 아니다. 길에는 매끄럽고 평탄하게 잘 닦여진 길이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 굴곡이 심한 비포장 길도 있을 것이고, 좁고 험한 골짜기 길도 있을 것이다. 어느 길이든 길은 길이다. 비록 걷기 힘든 길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자신이 가야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이 광대의 외줄타기처럼 어려울지라도 반드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수필의 길이나 수필가의 길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필가라면 마땅히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많다. 동네 뒷동산을 비롯하여 기린봉, 모악산, 지리산, 백두산, 에베레스트 등의 산들이 있다. 산을 즐겨 오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등산가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동네 뒷동산을 오르는 이도 등산가요, 지리산을 오르는 이도 등산가이며, 에베레스트 영봉을 오르는 이도 등산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을 모두 한 묶음으로 등산가의 반열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필가들 중에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수필 몇 편 쓰고 나서 등단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글쓰기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가까스로 수필가로 등단한 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슬쩍 수필문단을 떠나버린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런가 하면 끊임없이 꿈 너머 꿈을 키우는 이들도 있다. 하나의 꿈을 이루면 바로 그 다음 꿈을 목표로 정하고 정진하여 마침내 소원을 성취하고, 계속 꿈 너머 꿈을 이루어 나가는 끈질긴 수필가들도 있다. 그런 수필가들이 있기에 우리 수필문단은 늘 풍요롭다. 그런 수필가는 마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영봉을 차례로 정복하는 산사나이들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산악인들은 국민적 영웅 취급을 받고 세계등반사(世界登攀史)에 크게 기록되기도 한다. 산악인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오르고, 그 큰 꿈을 성취하려고 목숨을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쓴 채 산에 오른다. 진정한 산사나이는 산을 향한 도전을 중단하지 않는다. 수필가라면 모름지기 산악인들의 그 도전정신을 본받아야 하리라 믿는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을 걸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고, 중단 없이 수필을 빚어 수필집을 출간하는 끈기를 지녔으면 한다. 그것은 수필가로서의 생산적인 경력관리요 독자에 대한 봉사라고 해도 좋다. 그것이 수필가가 걸어야 할 수필가의 숙명이려니 싶다. 그러려면 일정한 터울로 제1, 제2, 제3의 수필집을 발간하는 뚝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에베레스트 영봉을 차례로 모두 정복한 어느 알피니스트처럼…….
수필을 빚는다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이다. 그러기에 수필은 도(道)다. 심신을 수양하려고 신앙을 갖는 일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음의 모를 깎아내어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행위가 곧 수필쓰기다.
사람은 몸과 마음을 지녔다. 몸과 마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똑 같이 소중하다. 그런데 우리는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몸이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때로는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거나 뜸을 뜨며 한약을 달여 먹기도 한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는다. 그만큼 마음보다 몸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닐까?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것에 비하면 마음을 위한 투자에는 조금 소홀하지 않나 싶다. 물론 마음의 건강을 지키려고 종교를 갖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의 건강관리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몸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병원에 비하여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는 병원의 숫자가 훨씬 적은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수필의 역할과 기능은 더 중요하다. 수필은 이제, 몸의 건강관리문제는 ‘운동’과 ‘의약(醫藥)’에 넘겨주고, 마음의 건강관리에 더 힘써야 할 것 같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마음의 건강관리사로 나서야 하리라 믿는다. 모가 난 마음을 둥글게 깎아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알게 하며,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게 하는 지혜로운 사람, 그런 사람이 수필가이니 말이다.
온 국민이 수필가가 되거나 아니 온 세상 사람들이 수필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온 인류가 수필을 즐겨 읽기라도 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맛나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자가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등 수필집 10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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