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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삼형제/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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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6회 작성일 10-10-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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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삼형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나는 신혼 때 아내와 같이 쇼핑을 나갔다가 소품점에서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샀다. 우리 부부는 인형이 귀엽다거나 꼭 쓸모가 있어서 욕심냈던 것은 아니었다. 세 인형 모두 사내아인데 개구쟁이 같고 얼굴은 깨곰보며, 주먹코여서 우스꽝스런 몰골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셋방에는 그 인형을 진열해 놓을만한 장소도 없었다. 그저 사다가 높은 책장 옆구리에 놓아두었다. 툭하면 인형이 방바닥으로 떨어지니, 좁지만 아내 경대한쪽에 진열해 놓았던 기억이 난다. 직장을 옮겨 다니고, 쫓기듯 셋방살이 이사를 자주 하는 바람에 그 못난이 삼형제는 언제 어디서 없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 집에는 진짜 못난이 삼형제가 태어났다. 옛 속담에 한 뱃속에서 태어났어도 아롱이다롱이라고 했던가? 사내아이들은 나면서부터 말썽꾸러기였다. 겨우 기어 다닐 때부터 틈만 나면 어디로 기어가서 물건을 뒤집어놓고, 때로는 틈새에 끼어 낑낑거리며 울고, 올라갈 곳만 있으면 잡고 올라가다 쿵하고 떨어져서 울었다. 조금 더 자라자, 연년생끼리 꼭 달라붙어서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일을 저지르고는, 혼날까 봐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일렀다. 좀 나이가 들자 꼭 붙어 다니고, 따라다니면서 뚝딱하면 한 쪽을 울렸다. 누가 잘못했는지 그 누가 알랴.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더니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형 말이 부모 말보다 더 위력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천방지축 어질러 놓고 부수고 엎어놓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다 치우고 나면 한나절이 걸렸다. 큰애는 1972년도 11월*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던 날에 난산(難産)으로 태어나 엄마를 근 한 달동안이나 입원하게 했다. 자라면서 말이 늦고 너무 순해서 걱정했더니 말보다 글에 관심이 많아 너댓 살쯤 되어 글자에 관심을 갖더니, 간판 이름도 묻고 책을 보고 읽으려 해서 기특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림책을 읽고 나중에는 어설프지만 독후감도 쓰며, 그림일기도 쓰기 시작하였다. 식구들은 신동 하나 낳았다며 은근히 기뻐했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성적이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더 특기가 생긴 것은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틈만 나면 만화를 그려 만화책도 만들었다. 창의적이거나 줄거리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제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서넛을 선정하여 복사하듯 그려서 서로 대결시키는 내용이었지만, 그림도 잘 그려 교내는 물론 전라북도, 전국대회에 가서도 입상한 적이 있어 담임과 가족을 기쁘게 했다. 자라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최우수상 아니면 우등상을 받아왔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재반에 편성되어 기대가 컸는데, 고등학교 2학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성적이 하향곡선을 그었다. 그 까닭을 알려고 했으나 원래 말 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통 입을 다물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너무 윽박지르면 안 된다기에 우선 적당히 훈계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 뒤 지방 국립대학을 졸업했지만, 전공도 진로개척도 실망적이었다. 학창시절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도, 정체성을 잃은 것도 운명이겠거니 하고 체념했지만 아직도 아쉽다. 둘째아들은 연년생으로 1974년 1월 우리 부부의 *결혼 3주년 기념일에 낳았다. 출생연월일시가 호랑이 3개가 겹쳤다 해서 작명에 어려움이 많아 몇 군데를 돌고 돌아 지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만지고 일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엎어놓은 항아리 속을 들여다 보려고 목을 넣었다가 끼어서 놀라는 등 성깔이 급해 울기도 잘했다. 좀 커서는 의협심이 많아 차를 타려고 열을 지어 서있는 곳에 새치기를 하는 어른을 발견하고, 쫓아가 끌어내다가 나를 망신시킨 적도 있었다. 욕심도 많아 멋있고 눈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달라고 떼를 쓰기 일쑤라 많은 애를 먹였다. 형이 1학년에 입학한 뒤 교실까지 따라다니다가 감기로 결석하자, 몰래 가방을 둘러메고 형 자리에 앉았다가 애들이 놀려대니 교단으로 도망가다가 우당탕 넘어져 웃겼다며 선생님이 내 앞으로 데려오기도 했었다. 1학년에 들어가서는 이름도 거꾸로 쓰고, 받아쓰기에 빵점을 맞고 입을 쩍 벌리며 손가락을 아래에 대고 자랑하는 철부지였다.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먼저 오는 것 같아 좀 불안했지만 활발한 성격, 욕심 많고 의욕이 충만한 점은 맘에 들었다. 초등학교 때 전교 어린이회장후보로 나와 소견발표장에서 슬리퍼를 벗어 쾅! 연단을 때리며 ‘이 신발이 다 닳도록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해서 폭소로 인기를 얻어 당선된 바도 있다. 특출하진 못해도 평범한 둘째는 제 꿈을 이루고 있다. 평소 법관이나 신문 기자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신문 방송학과를 지원하였으나 낙방하고 법대를 나와, 기어코 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는 방송국 기자로 있으니 큰소리 값을 한 편이다. 셋째아들은 1978년 11월 연구학교 *공개발표 날 낳았다. 아내가 산통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날은 전주시내 학교로 와서 모처럼 연구학교 연구주임이 되어 공개보고회를 갖는 날이었다. 준비는 했지만 어떻게 보고회를 가졌는지 정신없이 치르고, 황급히 병원에 갔더니 막 출산한 아기가 울지를 않는다고 하였다. 내가 아기 궁둥이를 딱 때리자 간호사 얼굴에 오줌줄기를 뿜어냈다. 오줌벼락을 맞은 간호사는 기겁을 하고, 의사와 나는 웃음보를 터뜨렸으며 아기는 ‘응애’하고 울었다. 막둥이는 역시 귀여운 것일까? 형제간의 나이차가 있어서인지 커가면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형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나 꼬마 인형같이 예쁘고 귀여웠으나 공부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창시절 형편없는 성적으로 꼬맹이소리를 듣고 울먹이며 걱정스런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그래도 고교시절 선생님들에게 인정을 받아 늦게나마 특기를 찾아 영문학을 전공하더니 전공을 살려 영어 하나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못난이 삼형제’는 나름대로 정말 못난이 삼형제답게 자랄 때부터 천방지축이었다. 개성이나 성격도 다르고 공부하는 것도 판이했다. 삼형제를 키우면서 수월성 발양도 중요하지만, 각자 자아정체성을 찾고 긍정적 자아개념을 길러주어 건전하고 튼튼한 심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글은‘못난이 삼형제 출생과 성장자료’로 남기고 싶어 썼을 뿐이다) (2010. 10. 21.) * 유신헌법 투표하던 날:(壬子年辛亥月丙辰日丁酉時 陰: 1972.10.16. 陽:11.21.) * 우리 결혼 3주기 날:(甲寅年丙寅月丙寅日戊戌時 陰: 1974.01.03 陽:01.25.) * 연구학교 공개발표 날:(戊午年癸亥月壬午日癸酉時 陰:1978.10.28. 陽: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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