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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묘소 참배/임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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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4회 작성일 10-10-1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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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묘소참배 전주안골문화관 수필문학창작반 임종우 오늘은 옛날직장 퇴직자 모임인 진농회에서 가을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어제 비가 와서 날씨가 좋을지 하늘을 몇 번 쳐다 보고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면서 길을 나섰다. 마침 오늘이 564회 한글날이기도 하며 가을을 알리는 한로도 지났다. 목적지는 경기도 가평 남이장군이 묻혀있는 남이섬으로 정하고 차를 달렸다. 차안에서 오늘 일정을 소개하고. 인사말을 통해서 아침 일찍 여행에 참여해 주어서 고맙다는 칭찬을 해주고 아무쪼록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자고 했다. 부부 30여명이 참석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불참한 친구가 있어 섭섭하였다. 이인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아침식사로 가져온 찰밥을 먹고 경기도를 향하여 차를 달렸다. 경기도 구리시를 지나는데 초행이라 산과 물이 낯설었다. 도로 양옆엔 숲이 무성했다. 한참 올라가니 가평이라는 이정표가 있는가 하면 우측으로 청평댐이 물을 가득 품고 있었다. 우리고향 용담댐 같아 댐을 보면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 주위에는 집과 차들이 꽉 차서 들어설 틈도 없었다. 청평댐 좌측 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산 255번지 옆에는 낙원을 꿈꾸는 ‘아침 고요 수목원’이 있었다. 아침고요는 1996년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설립한 원예수목원이라고 하는데 백두산 자생식물 3,000여종과 4,500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20여 개의 주제정원과 2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었다. 나는 어느 곳에 가던 우리 고장 수목원과 조경 상태를 비교하고 우리 고향 수목원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침고요수목원’에는 많은 식물이 가꾸어져 있으나 우리 고향 수목원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 고향 집 정원, 허브정원, 무궁화동산, 분재정원, 천년향, 등으로 25가지 정원이 있으며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다. ‘아침고요수목원’을 둘러보고 버스에 올랐으나 차가 막혀 겨우 왔던 길로 되돌아가 상면초등학교 부근까지 왔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자리가 없어 차 안에서 가져간 밥을 나누어 먹고 남이섬에 갈 배표를 사는데 경로우대 나이가 72세로 상향 조정되었으며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배 한 척에 150여명이 타고 북한강을 건너는데 배 운임이 1인당 8.000원이었다. 겨우 차례를 기다려 한 15분정도 푸른 강물을 건너 남이섬에 도착하였다. 섬이 물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이 13만 7천 평의 넓은 공원이었다. 남이섬 속엔 배용준의 겨울연가 촬영장을 비롯하여 진흙공원, 각종미술품과 세계 여러나라 국기와 대표적인 도시 명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민속촌 초가집 술집 상여 메는 상주와 조문객들이 춤을 추는 장면도 가관이었다.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남이장군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시 배를 타고 오려는데 우측 한쪽 구석에 남이장군 묘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남이장군은 세조 때 18세로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다시 북벌을 마치고 돌아와 의기양양한 나머지 ‘백두산석 마도진 두만강수 음마무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라고 시를 읊었던 것을 남아이십 미득국 으로 읊었다고 모함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 예종 임금 앞에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영의정 강순이 배석한 자리에서 저기 배석한 강순 영의정과 같이 음모했다고 하였다.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적으로 몰려 28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이다. 묘는 크고 웅장하지 않았는데 비석만이 장군비석답게 크게 세워져 있었다. 묘 앞에 가서 남이장군의 업적과 유자광과 간신 한명회의 모사로 이렇게 큰 인재를 죽이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절을 두 번 하고 일행을 따라 타고 온 배를 타고 유유하게 강을 건넜다. 내려오는 길은 조급하여 관광차만 타면 노래가 나오고 춤을 추는데 이번 여행은 뛰는 사람도 없고 법과 질서를 지키며 청평댐과 우거진 숲을 구경하면서 막힌 길을 뚫고 저녁 9시가 다 돼서 정안휴게소에 닿았다. 정안휴게소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다음 고속도로를 달려 저녁 10시 30분쯤 전주역에 닿아 다음에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 여행을 모두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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