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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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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810회 작성일 09-07-05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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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 사리를 친견하고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나무관세음보살” 2009년 6월 27일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가 있었다. 법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다음날 찾아가 친견하였다. 줄을 서서 한 번 보았는데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되돌아가 염치 불구하고 다시 보았다. 진신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골을 말한다. 사리는 육바라밀이나 계(戒) 정(定) 혜(慧)를 닦아 훈수(薰修)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매우 희귀한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8섬 4말이 나왔다 한다. 이 사리를 8곳에 나누어 사리탑을 세웠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종남산 운제사에서 기도하여 전수한 사리를 5곳에 모셨다. 경남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하여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중대의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등이다. 그런데 이번에 익산 금마의 미륵사지석탑에서도 진신사리가 나왔다.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미륵사지 석탑을 복원하려고 해체할 때 1층 제2단 심주석을 들어내면서 사리공을 발견하였다. 사리장엄은 제1단 심주석 상면에 마련된 사리공에 안치되어 있었다. 사리공 유물은 5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금동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금제소형판, 은제관식, 목제 칼, 구슬, 직물, 유리구슬 원형합, 다른 원형합, 유리판 순서로 나왔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금동제사리외호 속에 들어있는 금제사리내호 안에 다시 유리제사리병에 담겨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9년 1월 14일에 외호를 발견하여 열어보지 않고 보존처리와 x선 투시로 조사하고 3월 31일에 외호를 열어 내호를 살피니 그 안에 유리파편과 함께 사리가 들어 있어 사리호는 3층구조로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차례로 들어가니 유물이 나온 순서대로 전시를 하였다. 주위는 어둡고 보는 곳만 밝았다. 강한 빛을 받으면 유물이 변질 될까봐 그럴 것이다. 사진을 일절 찍지 못하게 하였다. 금동제 사리외호는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이고 꼭지가 달린 뚜껑으로 덮였으며 긴 목과 둥근 어깨를 지닌 동체로 매우 당당한 감을 주었다. 연꽃잎, 인동당초, 연화당초문으로 선각하고 여백에는 어자문을 가득 새겼다. 1370년 전에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리호를 만들 수 있었을까 감탄했다.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백미를 본 것이다. 금제사리내호는 높이 5.9cm 어깨 폭 2.6cm로 아주 작지만 외호와 거의 같은 형태로 되었다. 이 내호에서 유리파편과 함께 부처님 진신사리가 나왔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3cm 세로 10.3cm 두께 1.3mm의 크기인데 앞면에 9자씩 11줄로 99자, 뒷면에 94자를 새겨 전체 193자를 각자하였다. 특히 앞면에는 주묵(朱墨)을 사용하여 글자를 더욱 선명히 들어나게 하였다. 이 봉안기에는 사리에 대한 찬탄과 친견하는 공덕, 사리를 모신 경위와 발원이 기록되어 있다. 미륵사의 건립연대(기해년 639년) 시주자 창건목적이 씌어 있어 삼국유사의 기록이 맞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무왕의 왕후가 설화에 나오는 선화공주가 아니고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 하여 연구과제로 남겼다. 동국대학교 김상현 교수가 봉안기를 번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들이)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에 태어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나)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동량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은 수경과 같아서 법계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 칠세의 구원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과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진신 사리는 12과였다. 모양은 둥그스름하지만 크기는 조금씩 달랐다. 주변은 어둡고 사리만 빛을 비춰 돋보기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알맞게 조명이 되어 영롱한 빛을 냈다. 보석 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참 신기하고 황홀하였다. 처음으로 진신사리를 친견하다니 그 느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전북에 태어나 이런 구경도 쉽게 하는구나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한 달간 전시한다니 많은 사람이 찾을 것 같다. 되도록 빨리 박물관을 지어 출토 유물을 전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륵사지 석탑도 속히 복원하였으면 한다. 이밖에 금제소형판 17, 금제족집게 1, 금괴 4, 금제귀걸이 1, 은제관식 2, 은제과대장식 2, 도자(刀子) 7, 원형합 6, 청동고리 1, 유리판 1, 호박 2, 유리구슬 587, 소형구슬 29, 금제소형구슬 19점이 차례로 전시되어 눈이 휘둥그러지게 하였다. 직물류와 각종 실은 부식이 심해 전시되지 않았다. 1370년 전의 유물이 시공을 뛰어 넘어 생생히 살아있어서 백제문화의 우수함을 느끼게 하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요즘도 만들려면 어려울 것 같았다. 망하여 사라진 나라여서 유물이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땅속이나 탑 속에 묻혀 있던 문화재가 가끔 출토되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찬란한 백제문화를 다시 꽃피우게 하려면 우리가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덜 밝혀진 부분과 아쉬운 자료들을 찾고 연구하여 묻힌 백제 역사를 들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희귀한 역사유물을 전시할 박물관 건립이 우선 과제인 것 같다. 역사 속에 묻힌 백제문화가 제대로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진신사리 친견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 꼭 찾아가 볼 일이려니 싶다. ( 2009. 7. 1. ) * 육바라밀 : 선보를 얻어 열반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여섯 가지 일 * 계(戒) : 일체의 죄악을 막는 규정 * 정(정) :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일 * 혜(慧) : 사물의 이치를 뚜렷이 판별하는 정신 * 훈수(薰修) : 덕화를 받아서 수행을 쌓음 * 곡(斛) : 열 말, 즉 한 섬 * 선근(善根) : 좋은 응보를 받을 만한 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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