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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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 (寒苦鳥)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한고조(寒苦鳥)’ 라는 ‘새’가 있다. 온통 얼음과 눈구덩이 설산(雪山)에서 깃털도 없고 집도 없는 한고조는 엄동설한의 밤을 지새며, 아침만 밝아오면 추위를 가릴 집을 짓겠다고 다짐하지만 따뜻한 아침 해가 뜨면 다 잊어버리고 먹을 것을 찾기에 분주하다. 그러다가 또 밤이 되면 떨면서 또 집을 지어야겠다고 반복하여 다짐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나의 처지와 무엇이 다르랴? 등단 초심자인 나에게 ‘한고조’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쉬운 다짐이라 할 수 없다. 더욱이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어찌 마음같이 이뤄지랴.
‘퇴임하고 나자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지난날을 되뇌며 내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회고록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한 지 꽤 오래되어 걱정할 무렵 문우의 권유를 받아 수필창작반에 입문하게 되었다. …(중략)… 이제 겨우 신변잡기에 불과한 글인데 신인상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꾸준한 독서와 사색으로 미숙한 감정을 가다듬고 정진하여 초심을 잃지 않는 수필가가 되고자 노력하겠다.’
(본인의 ‘등단 소감’ 중에서 )
그렇다. 학창시절엔 누구나 잠시 나마 문학에 뜻을 두지만 세파의 흐름은 그 마음을 어디에 감추어두었다가 황혼이 되어서야 되돌아오게 만든다. 나도 고등학교시절 도내 몇 명문고교생끼리 ‘맥랑(麥浪)동인회’를 조직하여 동인지도 몇 번 내고 신문에 작품도 실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 모두 잊어버리고 수십 년을 지난 뒤, 현직에 있을 때 아는 분이 ‘등단’ 했다 하면 먼 하늘의 별같이 바라볼 뿐 깊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칠순의 문턱에서 나에게도 ‘등단’의 영광이 올 줄이야……. 격월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109호: 2010. 09-10월)에 ‘깜밥’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심사위원의 심사기준’을 보고 가슴이 착잡했다.
‘신인상 심사는 작품수준, 신인다운 치열한 작가 정신, 앞으로의 창작활동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라고 심사위원 전원이 연명으로 밝히고 있었다. ‘내가 과연 작품다운 글을 쓸 수 있으며, 치열한 작가 정신을 갖고 문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가?’
등단이란 ‘어떤 사회적 분야에 처음 등장함을 이르며, 작가로서 문단에 처음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일정한 자격을 심사하여 문단에서 활동케 하는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 문예지 신인상 당선, 동인지 추천, 단행본 출간 등이 등단의 길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문우가 한 분이 있다. 그 친구의 글은 위트와 유머가 있어서 나는 그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그 친구의 글을 통 읽을 수 없어 “어이, 자네 글 좀 읽을 수 있게 신작(新作) 좀 보여 주게나!” 했더니 등단하고부터 어인 일인지 수상(隨想)이 떠오르지 않아 통 글을 못 쓰고 있다고 했다.
왜 그럴까? 혹시 나도? 심사기준이 문득 생각나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등단했으면 등단작가다운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부담감 때문이려니 싶다.
수필은 자신의 생활이요, 화자와 청자가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자화상 또는 자신의 나상(裸像)’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내놓기에 겁난다.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생활철학을 남들에게 펼쳐 놓기가 두려운 것이다.
어떤 이는 등단을 꼭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프랑스의 ‘알퐁스 도테’는 등단하지 않고도 세상을 풍미하는 명작을 썼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러나 그 문학의 입문과정에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객관적으로 인증 받는 과정인 등단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거실에 ‘석란유향(石蘭幽香)’이란 글이 걸려있다. 20년 전 어느 어르신이 주신 글을 요즘에 액자로 만들어 걸었다. 모진 풍랑 속에서도 바위틈 한 구석에 나비처럼 붙어 자라는 작고 귀여운 석란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는 글, 갖은 고초와 인내와 노력없이 어찌 석란의 향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요즘 나도 마음의 평정을 잃은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바위틈에서 이슬을 머금고 자라는 석란같이,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그윽한 향기를 풍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액자에 눈길이 자주 간다.
이제는 등단의 기쁨도, 경외감도, 강박감도 훌훌 털어 버리고 ‘한고조(寒苦鳥)’와 ‘석란유향(石蘭幽香)’을 교훈 삼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깊이 있는 글다운 글을 써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 2010. 10. 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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