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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산은 말이 없지만/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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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5회 작성일 10-10-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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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산은 말이 없지만 전주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책여산(柵如山)은 수천 년 우리 고장의 역사를 지켜봐온 산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을 상징하는 명산이다. 일명 채변산(釵笲山), 채계산(釵溪山), 화산(華山: 花山)이라고도 불리지만 높은 산(351m)은 아니다. 먼동이 트면 제일 먼저 선 보이고 노을이 지면 밝은 달이 지켜본다. 평지의 강가에 우뚝 솟은 산이라 높아 보일 뿐이다. 내 고향의 산이라지만 바라볼 뿐, 이 고장사람들 거의 일부러 올라본 분들은 많지 않다. 나 역시 고향의 학교에서 근무할 기회(1959~ 1961)가 있어 학생들과 같이 소풍날 몇 번 오른 적이 있을 뿐이다. 선조께서 이 고장 모산 마을에 정착하신지 어언 4백 십여 년, 대대로 이 산을 바라보며 사시다가 이승을 떠나셨다. 고장을 지켜보며 파수병처럼 지켜온 지라 마치 옛 분들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 더욱 정감이 든다. 말없는 청산이지만 시대는 달라도 오르거나 바라보는 사람들의 오간 말, 기분과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라! 경관도 좋지만 산 앞길은 경상도로 통하는 24번 국도다. 적성강(섬진강 상류)이 유유히 흘러 전남 곳곳을 감돌아 경남 하동을 찾아간다. 산 좋고 물 좋으며, 교통마저 좋으니 순창군 소재 여러 학교들의 하루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고향을 잊지 않게 한 번쯤은 꼭 올라 보아야 한다고 해서 적성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의 봄 소풍지로 정하기도 했었다. 이 산은 속칭 왼(동계면)쪽 산은 남원 책여산, 오른쪽 산은 순창 책여산으로 불린다. 그 연유는 옛날 동계면(영계방, 성남방)이 남원도호부 관할이었다가 순창군으로 변경되었던 까닭이다. 남원 양(楊)씨의 선조 세거지(동계면 구미리: 龜尾里)고 본관을 남원으로 정하게 된 근거이기도 하다. 남원 책여산은 별로 특징이 없는 단순한 바위산이나 순창 책여산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지고 그 모습이 매우 기이(奇異)한 형태로 다시 한 번 처다 보고 싶은 매력적인 산이다. 이 산을 오르다보면 절을 거쳐 화산옹바위를 지나면 이 고을의 외진 마을인 마계동으로 가는 길이 남원군 대강면으로 통하는 지름길이기도하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절[庵子]이 있어 수도자나 독학하는 분이 끊이지 않는다. 한 수도자는 붓을 들고 차력수(借力水)로 먹을 갈아 사주풀이 단자를 써 주며 축지법(縮地法)으로 밤사이 광주를 다녀온다는 소문도 나돌았었다. 왕복 2백리길이니 축지법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속칭 금돼지굴(窟), 제일 높은 장군봉(將軍峰), 화산옹(華山翁) 바위, 등이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을 지켜보며 달맞이를 한다. 금돼지굴은 옛 백제시대 적성 현감 부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 고려 말의 최영 장군이 처음 올랐다는 장군봉, 노인이 서 있는 형상이라 해서 화산옹(翁), 말없는 산으로 하여금 전설적인 설화를 전해주고 있다. 오르다 보면 숨이 가쁘니 잠깐 멈춰 쉬어 가자면 면내 일원과 더불어 주변의 높은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무량산(無量山586m), 용골산(龍骨山645m), 건지산(乾芝山), 가고개(柯峙), 금산(錦山), 임실갈재(蘆嶺峙), 비홍재(飛鴻峙), 문덕봉(文德峰), 멀리 아미산(蛾眉山515m), 강천산(崗泉山581m), 회문산(回文山774m), 아주멀리는 무등산(無等山1187m)이 보일락말락한다. 여러 산들을 살펴보면 시간 가는 줄 잊게 된다. “야-호”하고 소리도 쳐 보았다. "야 - 호!", 메아리 없는 산이랄까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이 산은 앞면과 뒷면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앞쪽은 기암괴벽으로 매우 매력적인 반면 뒷모습은 특징 없는 비탈 산에 불과하다. 한때 규산광산개발로 환경이 매우 파괴된 모습으로 방치되어 오다보니 깊은 상처에 말도 못하고 얼마나 원망했을까? 다행히 사랑하는 주민들의 민원제기로 늦게나마 원상을 회복된 바 있었다. 누구나 고향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향을 떠나 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눈 속에 고향산천을 그리다 보면 선명하게 떠오르고 꿈속에도 종종 떠오른다. 한때 타국, 객지에 살 때 비슷한 환경의 산천을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문득 고향생각에 잠겼었다. 고향에 대한 인상 깊은 잠재의식은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모양이다. 말 없는 산이지만 할 말이 많을 것 같이 느껴진다. 옛날 앞강의 나룻배와 가까이는 한국전쟁 때 적성강다리 폭파, 호주 전투기 추락, UN군 수복 때 등의 이야기다. 그 밖의 오랜 세월의 지나간 갖가지 사연들을 말하고 싶겠지만 오늘도 말이 없다. 오직 이 고장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분들만이 나눌 수 있는 정담이요 속삭임이 아니겠는가? 다시 오를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좋다. 이미 부모님을 이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모셨다. 영원히 바라볼 수 있고 상통할 수 있는 곳에 저승 터를 마련해 놓았으니 행복하다. 먼 훗날에 다음 세대들과도 궁금한 사연들을 나눌 수 있을 테니! 고향이란 무엇인가? 인간도 귀소성(歸巢性)이 있다하지 않았던가? 선조님들께서 이 고장에 좋은 종산(宗山)을 여러 곳 마련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2010. 9. 18.) ※ 면단위 다른 곳의 적성 고을이름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績城),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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