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노옹/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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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노옹(老翁)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오늘이 노인의 날이란다. 그런 날도 있었나 할 정도로 무심하고 생소한 기념일이다.
나는 가끔 가전제품을 수리하러 모래내 길가 5평 남짓한 점포로 간다. 올해만 해도 벌써 다섯 차례나 갔었다. 그곳에 가면 퇴색되어 그런지, 중고라 그런지 먼지를 둘러쓴 가전제품 부품들이 삥 둘러 가득하고, 줄지어 수리할 물건들이 포개어져 있다. 그리고 겨우 사장님(?)과 손님이 앉을 자리만 남겨져 있다. 사장 겸 기사이신 노인이 정밀한 가전제품 수리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서 직업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느꼈다. 그 노 기사님은 올해 여든 둘, 그런데 안경도 쓰지 않고 전자제품 회로를 점검하고 납땜을 하며 수리를 하신다.
“요즘 전자제품을 수리하러 손님들이 자주 오십니까?”
“……”
아무 대답이 없다. 그저 제품 수리에만 열중하셔서 아예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대단하신 분이야, 팔순을 넘기신 분이 정밀기계를 수리하시다니.’ 둘러보니 ‘라디오, 텔레비전, 전축, 오디오, 냉장고, 선풍기, 전열기, 김치냉장고, 전등, 핸드폰, 밥솥, 시계……., 각종 부속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누구 말마따나 없는 것 빼고는 다 수리하는 곳인 듯하다.
10여년이 지난 전자제품은 고장이 나면 수리할 곳도 없다. 유명 메이커도 부속이 단절되었네, 아예 만들지 않고 있네 하니, 이름을 잘 모르는 제품은 아예 고장수리를 할 곳조차 없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그냥 버리고 신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 그 제품이 특별나게 좋다기보다는 몇 가지 편리성만 개선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 값은 옛 제품보다 3,4배나 비싸니 함부로 바꾸기도 겁난다. 더구나 요즘엔 전자제품 수리점을 찾을 길이 없다. 나는 그 무거운 낡은 전자제품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몇 바퀴 돌고나서야 변두리 골목길에서 겨우 수리점을 찾았다. 그런데 수리점의 문이 잠겼거나 복잡한 것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몇 번을 찾아다니다가 여기를 찾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우리아빠, 소원 푸셨네!” 했다.
노옹(老翁)께서는 이 일을 시작한 것이 50세 전후라 하셨다. 어렸을 적 꿈은 훌륭한 과학자요, 기술자요, 발명가가 되고 싶으셨단다. 그런데 세상은 꿈을 이루도록 순탄치 않아 먹고 살기위해서 장사를 시작했고, 나중에 회사원이 되어 황금기를 보냈지만 마음만은 기술자가 꿈이었다고 했다.
어려서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라디오, 시계들을 보면 신기하고 궁금하여 어른이 안 계실 때 분해하여 놓고, 잘 맞추지 못해 고장 내어 크게 혼나고, 언젠가는 종아리에 피가 흐르도록 맞았으며, 그래도 또 일을 저질러서 어느 때는 할아버지 담배통으로 머리를 맞아 박이 터진 채 울면서 고치러 갔던 때도 있었다. 고장난 물건을 가지고 수리하러 시내까지 걸어 간 일이 몇 번인지 모를 정도였단다. 더구나 그 작은 부품을 길가에 흘리고 가서는 찾지도 못할 것 같으면서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때도 있었단다.
고치는 곳에 가서는 기술자의 고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꾸중을 듣기도 하고, 부속품을 잃어버렸다고 덤터기를 쓰기도 했단다. 항상 기술자가 되어 남들이 못고치는 것을 내가 고쳐보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머릿속엔 각종 회로와 기계속이 환희 보이는 것 같았단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옛 꿈을 버리지 못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50세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30대의 기술자 밑에 조수로 들어가 심부름을 하면서 하나하나 보고 배워 3년이 된 뒤에는 스스로 수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모르는 것이 많아 많이도 쫓아 다녔다고 한다. 그 뒤로는 신제품이 많이 나오니 수리할 것이 없어서 겨우 빈손만 털고 있다가, 요즘 나이 드신 분이나 아주머니들이 중고품이 아까워 옛것을 버리지 못하고 수리를 의뢰하여 심심풀이는 면했다고 한다.
중고 살려 쓰기, 물자절약 차원을 벗어나 그것을 재생하여 주시는 노옹(老翁)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팔순이 넘었는데도 전주 호성동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신다는 그 어른의 봉사정신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부러웠다.
젊었을 적 꿈을 접지 않고 팔순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수리비를 받되 그저 시늉만 받는 것 같았다. “수리비가 너무 싼데요?” 하면 말이 없거나 그저 “됐습니다.” 한다.
내가 다섯 번 부탁한 수리비가 모두 합쳐 만원도 안되었다. 간단한 것은 천원, 복잡하고 부속이 들어가는 것은 삼천 원정도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봉사정신, 그리고 나이는 들었어도 늙을 수 없는 그 어른의 정신건강은 아직도 젊은이 같은 안색과 건강을 지탱하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 그분은 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 무엇이고, 보람된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노옹이시다.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오늘부터 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고 싶을 뿐이다.
(2010.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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