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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피리소리/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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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10-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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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피리소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시골에서 살 때 일이다. TV도 없던 때라 라디오만 듣고 살았는데 '공산성의 피리소리'라는 단막극을 방송했었다. 그 주제곡으로 나오는 피리소리가 어찌도 구슬픈지 심금을 울렸다. 하도 심란하여 마당으로 나가니 달은 밝고 고요하여 우울한 마음을 부추겼다. 마당을 서성이며 어릴 때 생각을 떠올리고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떠나버린 옛 임을 그리워했었다. 몇 십 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다. 피리소리를 들으면 어떤 한이 풀리는 것 같다. 그 소리가 어찌나 애절한지 모른다. 가냘프게 울려 퍼지다가 점점 올라가는 가락은 멋의 극치다. 작은 대나무 줄기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고운 소리가 나오는지 모른다. 가늘고 굵고, 강하고 약하고, 길게 늘이기도 하고 딱딱 끊어지기도 하며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국악에는 여러 악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나는 피리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달밤에 듣는 피리소리는 더욱 그렇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피리소리는 밤에 들어야 제격이다. 조선시대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은 피리를 즐겨 불었다. 맹사성 하면 소등에 앉아 피리를 부는 모습을 떠올릴 만큼 늘 가지고 다니며 불었다. 인품이 고결하기도 했지만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아악은 물론 속악에도 밝았다. 맹사성은 음률을 꿰뚫어서 날마다 서너 곡씩 속악(俗樂)을 불었다. 그가 집에 있는가, 없는가를 알려면 피리소리로 짐작했다 한다. 양반들은 듣기만 하고 연주는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즐기는 재상도 있었다니 존경스럽다. 지금도 맹고불이 사신다면 한 곡조 청해서 듣고 싶다. 20여 년 전 충남 옥천에 있는 장룡산에 오른 일이 있었다. 정상에 이르니 중년의 남자가 피리를 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한가락 뽑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도취하여 피곤함도 잊었다. 한 곡이 끝나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대전에서 왔고 배운지가 10년은 되었다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현직에 있을 때라 마음뿐이고 시간을 낼 수 없어 배우지는 못했다. 1990년대에는 교육당국에서 국악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악 바람을 일으켰다. 단소를 사주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나도 따라 배우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서양 관악기들은 불면 저절로 소리가 나는데 국악 관악기는 소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만들지 못하면 그만이다. 그만큼 국악기 불기가 어려웠다. 좋아하는 악기라 불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소리가 나더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리라. 명인들은 한 평생을 갈고 닦아서 그 경지에 이른다하니 어렵고도 먼 길이다. 피리소리는 시끌벅적하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도시에서 듣기에는 알맞지 않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달밤에 들어야 제 맛이 난다. 마음가짐과 분위기가 그 가락에 어울려야 멋을 더할 수 있다. 시원한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찻잔을 기울이며 들어야 멋이 있다. 사위가 고즈넉하고 화평해야 피리소리의 맛이 더해진다. 흥취를 돋우는 곡이 아니고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라 그렇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멋 때문에 여기저기 정자를 짓고 평생 즐기며 살았나 보다. 피리소리는 하늘의 소리다. 천상에서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자연의 깊은 소리를 그 곳에 모았다. 사람의 한을 서리서리 펴내는 소리요, 천년의 고고한 심경을 풀어내는 섬세하고도 깊은 가락이다. 아름다운 시냇가 소나무 아래 조그만 정자를 짓고 마음이 통하는 벗들을 불러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그런 여생을 맞고 싶다. ( 2010. 9.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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