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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정리하면서/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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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3회 작성일 10-09-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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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정리하면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이젠 고희(古稀)가 되었으니 쌓인 추억을 손질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가 없어, 곰곰 생각해 보니 추억이 될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 무렵 이사를 하게 되었다. 살던 아파트가 30년이나 되었으니,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하자는 성화에 못 이겨, 크기는 먼저 살던 집의 ⅔밖에 안 되는데도 분양가는 1⅔ 나 더 주고 이사를 왔다. 이사할 때마다 웬 놈의 짐은 그리 많은지 버리고 또 버려야 했다. 짐을 대충 옮기고 나면 쓰레기를 내 놓아야 하는데도 미련 없이 버리질 못했다. 공직(公職) 40년의 자료들, 참고 도서들, 심지어 젊었을 때 나이 들어 한가하면 읽으려고 들여놓은 고전과 명작, 전집류들이 먼지를 들러쓰고 누렇게 바랜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사할 때 제일 무거운 것이 책과 사진첩이고, 명패와 기념패, 커다란 액자들이다. 이 모두 추억의 산물이요, 귀중한 자료인데, 이제는 쓰레기로 취급되어 기증하거나 없애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아파트 어느 구석에서도 반가와 하지 않고, 쳐 박아둘 곳도 마땅치 않다. 누구든 측은하게 여길 사람도 없다. 이제 이 추억을 하나하나 지워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것 몇 개를 남기고 읽지 않는 책, 자랑스럽지 않은 명패, 걸 데 없는 액자를 버려야했다. 책은 학교 도서실이나 가까운 도서관에 기증하고, 액자들은 내가 근무했던 학교를 찾아가 손 비비며 교무실, 교장실, 연구실에 걸어주고, 1980-90년대에 유행처럼 번져, 자리 옮길 때마다 새로 만들어 증정 받은 패, 그때는 자랑스럽고 영광으로 알던 봉황 무늬의 교감, 교장 명패, 전근 때마다 낮 간지러운 문구로 조각한 대리석, 오석, 향나무, 금동 감사패, 기념패, 공로패……, 취임이나 학위 취득할 때 받은 축하패들을 골라 부수고 쪼개서 내버리는 데, 그 쓰레기만 치우는 데도 한나절을 보냈다. 사진들은 왜 그렇게 많이 찍었던지 사진첩만 30여 권, 보지도 않는 사진들을 분류하여 웃기고 즐거웠던 그림만 추려 10권으로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쓰레기를 정리하다 보면 지금도 남들이 볼까봐 가슴 설레게 하는 꿈 많았던 젊은 날의 수많은 사연과 잊혀져 가는 비밀(?)들이 접힌 채 나오기도 한다. 그런 잡다한 쓰레기들을 골라내어 찢고 태우는 일도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모두 크건 작건 비밀을 간직하고 산다. 어떨 때는 비밀이 내 가슴을 포근히 설레게 해주고, 어떨 때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 준다. 남에게 내놓고 이야기할 일은 비밀이 아니다. 어떤 분은 ‘삶을 마칠 때 빙긋이 웃으며 눈을 감는 것이 가장 행복한 마감’이라면서 그 ‘빙긋함 속에는 혼자만이 알고 있는 아름답던 추억과 비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 엄연한 불법 사실을 숨기려고 컴퓨터 디스크를 지웠다고 난리인데, 그런 분들의 사무실과 서재의 쓰레기통을 뒤지면 무엇인가 단서가 나올 법하다. 원래 조심스러운 사람이 하잘 것 없는 쓰레기 처리에는 소홀히 한다는 말이 있다. 아파트에 이사 오신 분의 신분을 제일 먼저 파악하는 사람이 쓰레기 치우는 분이요, 그 집 속사정을 파악하는 자료가 쓰레기 속에서 나온다고 한다. 쓰레기통이 "우리 주인은 이런 고민과 갈등을 낙서하다가 구겨서 내 버렸고, 약 봉지와 약병 그리고 택배 영수증도 들어 있으니 나는 알아." 한다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술 더 떠 온 식구의 생활상, 습관, 심리적 갈등 고민, 건강상태, 기호식품, 그리고 거래처와 주고받는 선물까지 알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가 일이 생기면 그때서야 놀란다. 인간은 사용하다가 필요 없고 값이 없다고 여겨지거나,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을 쓰레기로 버린다. 용도폐기하거나 보존 기한 또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도 쓰레기로 버린다.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든다. 인간은 더 갖고 싶고, 더 편하고 싶으며, 더 나은 것을 찾아 발버둥치다가 더 많이 먹고, 더 움직이고, 더 많이 만든다. 그 욕심 때문에 쓰레기를 많이 생산한다. 쓰레기를 없앤다는 것은 아름다웠던 비밀과 추억은 남겨두고, 짐스럽거나 욕심이 지나쳤던 추억을 지우는 일이다. 인간도 삶을 다하면 육신은 소각(화장)하거나 페기처분(매장)하고 시신이나 장기를 분리수거(기증)하거나 재활용한 뒤, 영혼은 조물주께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추억을 간직한 이 쓰레기들을 지니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했고, 때로는 우쭐대면서 남의 눈에 건방지게 보이거나 불쾌한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추억을 정리하고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추억을 정리하고 잔재를 없애고 보니 어쩐지 허전하다. 우리 사회도 추억을 정리하듯 해로운 일들을 모두 수거하여 찢고, 태우고, 부수어서 없앨 수만 있다면, 이 사회가 더 밝고 맑아지지 않을까? ( 2010.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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