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녹원 댓잎 소리/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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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竹綠苑 댓잎 소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서상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전북공무원연금공단 사회봉사단 주관으로 문화유적 탐방에 나섰다. 제7호 태풍 콘파스의 영향으로 폭풍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린다는 기상특보에 놀라 희망했던 회원 40명 중 겨우 30명이 관광에 나섰다. 예정시간보다 20여분 늦게 출발하였으나 먼 곳이 아니라서 그다지 초조하지 않았다. 만수가 되어 파란 하늘이 내려앉은 듯한 운암호를 맴돌아 장류문화를 자랑하는 순창을 거쳐 메타세콰이어 터널을 뚫고 전라남도 담양 대나무골을 방문하였다.
먼저 한국대나무박물관에 들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첫째 가는 대나무박물관이라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6개의 전시실이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현재 고죽제품, 신제품, 외국제품 등 3,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제2전시실에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부채를 비롯해서 유형문화재(채상장, 참빗장, 죽렴장) 등을 볼 수 있어 감명 깊었다. 이밖에 대나무 테마공원과 70여 종의 죽종장, 대나무공예체험실, 죽제품 전문 판매장도 갖추어져 있었다.
일정에 따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의 원림건축의 하나인 소쇄원瀟灑園을 찾아갔다. 소쇄원은 이상주의를 주장하던 조광조가 기묘사화己卯士禍(중종14년,1519)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자 그의 제자인 양산보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자연과 함께 살기위해 지은 아름다운 녹지공원이다. ‘비가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담은 제월당霽月堂과 ‘비갠 뒤 해가 뜨면 청량한 바람이 분다’는 의미를 지닌 광풍각光風閣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라니 당시 청빈한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었다.
이어서 무등산 자락 광주호반에 자리한 한국가사문학관에 들렀다. 가사문학의 산실인 이곳에는 유물전시관과 시청각실이 있고 주변에 산재한 문화 유적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유달리 정철이 송강정松江亭에서 임금을 연모하여 지었다는 사미인곡思美人曲이 입구에 걸쳐 있어 당시를 말하는 듯 가슴이 저려 왔다.
우리 일행은 푸른 댓잎이 하늘을 덮어 구름처럼 일렁이는 죽녹원竹綠苑을 찾았다. 입구 돌계단을 오를 때부터 서늘바람이 댓잎 향으로 맞아주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四時)예 푸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 한 수가 떠올랐다. 예부터 송죽의 변함없는 지조와 청빈함을 노래한 시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중기의 시인이며 문신이다. 시조문학을 마지막으로 장식한 대가다. 학문과 철학, 예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었다. 남인의 거두로 전란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조가 있는 선비로 손꼽혔다.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오직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이를 잘 형상화한 국문학의 비조로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의 시조는 송강 정철의 가사와 함께 조선 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뛰어난다. 오우가는 고산이 고향땅 금쇄동에 은거할 때 지은 시조로 산중신곡(山中新曲)에 실려 있는 시다. 자신의 자연애와 관조를 표백한 대표작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시조다.
죽녹원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대통 맞은 벙어리처럼 그저 야!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푸른 구름이 넓은 해원을 넘실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서 오라는 대나무 사잇길을 걸으며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에 취했다. 이 청량함을 무엇에 비기랴! 운수대통길을 따라 올라 가노라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신선했다. 푸른 대숲에서 품어 나오는 음이온이 사람의 머리를 맑게 해주고 산소량이 높아 청량감을 높여 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나무 숲이다. 가는 곳마다 의미 있는 안내판이 길손들을 반겨준다.
예향정에 앉아 잠간 숨을 고르고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에 귀를 모았다. 마치 속세를 떠나 만사를 잊은 듯 대나무 속처럼 하얗게 비어 있는 마음이 된다. 생태연못을 끼고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을 거닐다보면 사랑이 꽃피는 쉼터가 유혹한다. 잠시 머물며 추억의 샛길을 더듬어 보았다. 아름다운 추억은 언제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푸르른 댓잎 소리가 사랑가로 들려오는 성싶다. 사갈사갈 속살거리며 들려오는 싱그러운 소리를 그냥 스쳐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워 한 편의 시를 읊고 싶었다.
댓잎이 사각댄다
푸른 잎새 하얀 마음
하늘만 그리는 소망
우정과 사랑이
숨 쉬는 오솔길
추억이 서려온다
터엉 빈 대통에
선비들 마음 새겨
성인의 곧은 꿈을
죽림에 펴 본다.
송강정에 올라 옛 선비들의 지조와 올곧은 정신을 추앙해본다. 돌아오는 길에 철학자의 동상을 바라보며 잠시 묵상에 잠겼다. 마지막 죽마고우 길에 내려 왔을 때 어린 시절 옛 동무 얼굴이 떠올라 사우(思友)라는 노래를 콧소리로 흥얼거렸다.
담양潭陽은 죽향竹香과 문향文鄕, 사림士林의 고장이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속이 하얗게 비어 있는 대나무에 선비들의 대쪽 같은 지조가 깃들어 있고 학문과 철학, 문학예술이 꽃피워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고장이다.
(20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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