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새긴 그림/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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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새긴 그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건너편 가게에 인티어리어(Interior)를 하고 있다. 한동안 비어있던 곳이라 더 관심이 쏠렸다. 며칠 동안 뜯어내고 붙이고 칠하느라 드릴소리 등 소음도 요란스러웠다. 나무판자를 붙이는 것이 유행인지 나무로 장식을 한다. 도대체 어떤 업종이 들어오기에 실내장식을 값지게 하는 걸까. 차츰차츰 꾸며진 모습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사방 벽에는 크고 작은 액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걸려있었다. 아담한 화방을 꾸며 학생들의 쉼터가 되는 걸까? 어느 날, 젊은 새댁이 수틀에 수를 놓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궁금증을 풀고자 가게로 들어갔다. 예쁜 그림으로 보였던 작품들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십자수였다. 요즘엔 유럽자수라고 부른단다.
순간, 푸른 꿈에 부풀던 단발머리 여중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가사시간과 수예시간이 있었다. 가사시간에는 분단별로 나누어 직접 음식을 만드는 요리실습을 했었고, 수예는 도안과 색실을 단체로 구입하면 싸게 살 수 있어서 선생님께서 주선하셨다. 하교시간이 되면 학교에서 가까운 수예점문화양행은 여학생들로 붐볐다. 조잘대는 학생들의 요구를 느긋하게 들어주시던 부잣집 마님 같은 수예점 주인아주머니의 미모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시절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놓기를 배웠다. 수틀에 본(도안)을 끼우고 색실을 뀐 바늘로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리듯 수를 놓을 때는 모든 잡념은 다 사라지고 차분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되었다. 조금만 허튼 생각을 하면 금세 엉뚱한 모양으로 작품을 망쳐 헛수고가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정서교육이 어디에 있겠는가. 수예시간이 없는 요즘 학생들은 서정적인 인성교육을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다. IT산업시대답게 빠르게 성장하는 경쟁 속에서 수틀을 안고 있을 틈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과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세대차이가 나는 성싶다. 예전에 우리들은 수틀을 옆에 끼고 여학생들의 특권인 양 자부심을 가지고 등하교를 했었다.
처녀시절 동네친구들과 모여 오순도순 장래를 꿈꾸며 수틀에 꿈을 심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봉숭아꽃처럼 부푼 꿈을 안고 앞날을 설계하듯 한 바늘 또 한 바늘, 바늘로 미래를 새겼다. 천진난만했던 그때는 세상도 아름다웠고 마음도 행복하여 부러울 것이 없었다. 십자수는 섬세한 옥양목에 씨줄 날줄 올을 세어 열십(+)자 모양의 바늘로 엮어 구색을 맞추는 작업이다. 도안대로 숫자를 세며 색의 조화로움을 연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며 지구력이 필요했다. 우리들은 지루함을 달래려고 “이 방석에 앉을 내 님은 누구일까? 또한 내 님은 어디에 있을까?” 하며 깔깔거렸던 그때가 아련히 떠오른다. 지금쯤 그 친구들도 할머니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딸아이는 십자수방석이 예쁘다면서 공들인 솜씨가 아까워 엄마의 유산으로 여기겠다며 챙겨갔다.
십자수는 터키에서 시작되어 유럽을 통해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말쯤 전해졌다고 한다. 초기에는 민간인들이 접할 수 있는 공예는 아니었다. 부의 상징으로 양반가의 옷과 이불, 방석, 쿠션 등 가재도구에 장식하고 꾸미려고 수를 놓았다. 그 뒤 자수문화가 점차 확산되어 실용적인 용도로 대중화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 전 만해도 전성기여서 여학교에서는 수예시간이 있었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요즘은 자수교육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가게를 예쁘게 꾸며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젊은 엄마는 소박한 꿈에 부풀어 있다. 한수 또 한 수 정성을 심고 인내를 키우며 수예점이 북적거리기를 고대하리라.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한다고 했다. 결혼선물이나 집들이선물 용으로 손색없는 예쁘게 수놓인 액자들이 눈길을 끈다. 액자 속에서 해바라기 꽃이 화사하게 웃으며 기쁨으로 다가왔다. 해바라기는 부를 상징한다니 주방에 걸면 부자가 될 것 같다. 여가선용으로 십자수를 놓아 집안도 환하게 꾸미고, 손가락운동을 많이 하면 치매도 예방된다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꿈을 가꾸는 엄마들은 시들어가는 자수문화를 다시 일으켜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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