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노송의 숲속/김명희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노송의 숲속/김명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9회 작성일 10-09-05 09:32

본문

노송의 숲속 전주 안골 복지관 수필, 창작반 김 명 희 전주안골노인복지관은 노인들의 쉼터이자 항상 행복의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젊은이들의 패기처럼 노인들의 활력이 넘쳐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곳 수필창작반에 가면, 먼저 남을 칭찬하는 자세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업을 시작한다. 교수님의 열정도 대단하시지만 노령의 학생 또한 열의(熱意)가 뜨겁다. 새내기 몇 분만 빼고 모두 등단을 하신 수필가들이다. 마치 노송의 숲속 같은 분위기다.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우뚝 솟아 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언제나 위풍당당한 위력을 발산하는 토론의 광장은 그 열기 또한 대단하다. 원래 노송이 울창하여 숲을 이룬 곳에서는 어린 묘목이 생존하지 못한다. 겁 없이 그곳에서 새싹을 틔우려고 도전하는 것은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를 때가 가장 용감하다고 했던가. 배움터에 나와 늦깎이학생으로서 공부를 시작하니 뭔가 가슴이 뿌듯한 기쁨으로 가득 차고, 저절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어제야 그 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게 되었다. 강의실 안에서는 작품비평이 날카로워 분위기는 사뭇 엄숙해지고 긴장감마저 고조된다. 반면에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수필의 의미를 부각시켜야 제대로 된 글을 빚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 우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올바른 길을 걷고자 무던히도 노력해 왔다. 자기 자녀들도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이다. 나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자손녀들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안골노인복지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작년 5월 20일 한글 서예반에 등록하였다. 서예가 너무 어려워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벽에 부딪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뭔가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희열을 맛보게 한다. 좀더 즐겁고 유연하게 살 수는 없을까? 그런 까닭으로 수필창작반에도 등록을 했다. 구수한 교수님의 강의와 문우님들의 고매하신 작품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게 행복감에 빠지고 있다.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글속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감에 도취되었던 나는. 어차피 가야할 내 여생은 행복을 나누는 샘물이 되게 살고 싶다. 남들과 잔잔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글은 자신의 삶에도 기쁨을 가져다준다. 예전엔 좀 바보스럽게 보이면 모자란다고 비난을 했는데, 그건 내 생각이 짧았던 탓이다. 천진난만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단순하면 그만큼 고민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누구나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오며 겪었던 고달픔을 잠시 잊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인생은 때로 휴식도 필요한 법이다. 4살짜리 손녀 주연이와 손을 잡고 천변의 산책로를 걸을 때도 마냥 즐겁다. 내 생애 이렇게 행복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엊그제 '글샘'이라는 아호(雅號)를 한글 서예 교수님으로 부터 받았다. 이름이 몹시 예쁘다. 그런데 이름처럼 잘 할 수 있을까? 서예공부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1년이 조금 넘었다. 열심히 한 번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제2의 인생을 열어보겠다고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농촌으로 낙향했을 때엿다. 농사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농사에 대한 전문서적과 농민신문, 새농민을 구독하고, 농촌지도소교육도 받았다. 또 매일아침 5~6시 KBS1라디오 농어민방송을 들었다. 틈만 나면 동네사람들에게도 여쭙고, 주부대학, 심지어 농약방까지도 찾아가 견문을 넓히며 살았다. 몇 년 뒤에는 역전이 되어 농민들이 나를 찾아와서 묻는 게 아닌가. 새마을 자도자란 명예도 얻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런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서예 교수님께서 하사하신 항상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 행복을 나르는‘글샘'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울창한 노송의 숲 속에서도 늦깎이 어린 묘목이 새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도전해 보리라. (2010 . 8 . 17.)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