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패/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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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패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문간에는 정확히 40여년이나 된 내 이름의 한자문패가 붙어있다. 이 문패도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 집 마련은 소망의 하나고 자기 집 대문에 문패를 붙이는 것 역시 관행이다. 처음 문패를 만들 때 앞으로 이사할 것을 고려해서 주소를 쓰지 않았다. 처음 시골에서 초라한 초가삼간을 마련하여 셋방살이를 겨우 면할 때엔 기쁨과 희망으로 문패를 달았다. 두 번째는 해마다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기가 매우 힘들어 기와집을 샀다. 같은 문패지만 제법 품위가 있어 보였고 잘 어울렸다. 세 번째는 30여 년 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요즘 사람들은 이사를 가도 문패를 챙기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대개 아파트로 옮기기 때문이 다. 또 개인주택도 문패를 단 집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가뭄에 콩 나듯 눈에 띌 뿐이다. 왜 그럴까? 이것도 개인정보 누설이라고 그럴까? 왜 당당히 나 여기 산다고 하지 못할까? 찾아오는 손님이 귀찮아서? 절대 모르는 이는 안 돼! 이 근처에 산다는 것쯤으로는 절대로 집을 찾지 못한다. 그러니 꼭 찾아와야 할 사람도 전화를 받고 마중을 나가야 한다. 찾는 이에게 편의를 주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파격적으로 부부 또는 가족이름을 나란히 쓴 문패도 있다. 집들의 지번마저 쓰지 않아 택배와 우편배달에 어려움이 많다. 복잡한 지번과 전화번호로만 찾아야 하니까. '새 거리주소' 표찰이 붙여졌으니 다행이다. 여전히 이름으로 집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같은 이름 몇 자를 집에 붙이면 문패, 사람 옷에 붙이거나 계시하면 명패 혹은 명찰이라 한다. 근래 관공서나 공공기관, 은행 등 여러 사업소 할 것 없이 친절하게도 책상 위에는 명패나 명찰을 놓고 또 신분증을 목에 걸고 근무를 한다. 또 각종 모임에서도 내가 누구란 것을 알리기 위해 친절하게도 명찰을 단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매우 적절한 초치다.
그러나 명찰(이름표)은 시비도 많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어려서 그런지 말없이 잘 따른다. 중고등학교 학생은 이름표 달기에 예민해서 시비가 따르게 마련이다. 긍정하는 쪽이나 부정하는 쪽의 까닭을 들어보면 모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웃옷에 아주 고착시키거나 편리하게 이름표를 따로 만들어 패용하거나 목에 거는 학교 등등 다양해졌다. 인권을 고려했다고나 할까? 현대를 살아가는데 성인들은 주민등록증을 항시 휴대하니 미등록자인 학생들은 이름표를 달거나 학생증을 지니는 게 필수다. 목숨을 국가에 담보중인 군인들은 항시 군번을 목에 걸고 산다. 이런 것이 현대인들의 삶이다.
내가 교직에 근무할 때는 학생들에게 소유물에 꼭 이름을 쓰도록 했다.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는 분실물이 별로 없었다. 산업화 세상이 되어 경제적으로 좀 넉넉하게 살게 되니 유실물이 자주 생겼다. 그런데 이름이 없어도 스스로 잘들 찾아갔다. 하지만 요즘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분실물이 많이 생겨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소유물에 애착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잃어버렸다면 부모들이 다시 마련해 주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은 교육상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살다보면 처음 찾아가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 찾는 곳이나 공공기관, 상점, 빌딩, 사업장, 건축물들에 지명, 기관명, 상호 명, 문패 등의 안내표지가 눈에 띈다면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가? 마치 “어서 오십시오! 기다렸습니다!”하고 반기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로우면 잘 따르고 별 보람이 없다면 외면하기 마련이다. 보편적으로 안내표지나 문패, 이름표 달기가 이 부류에 드는 것 같다. 직접적인 이득은 없지만 여러 사람들을 위한 안내요 봉사다. 하나의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명패를 달고 살던 지난 세월이 무척이나 그립다.
(2010.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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