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사무소 앞의 麵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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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面)사무소 앞의 면(麵)사무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승수
전북 김제군 ‘금구면사무소’ 앞에 ‘면(麵)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 대문 앞에 면사무소라! 호기심이 일어 들어가 보았다. 고풍스런 연한 밤색 집기류에 서화도 걸려있어 미니화랑을 방불케 했다. 꽤 아기자기한 식당이라 생각하며 메뉴판을 들춰보니 돼지고기와 해물파전에 동동주를 곁들여 파는 곳이었다. 탕 종류도 있었다. 밀가루 면(麵)자를 쓰는 것으로 보아 국수를 팔아야 마땅할 집인데 실제 취급하는 메뉴는 생각과 달랐다.
이곳 ‘면(麵)사무소’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메뉴 때문이 아니라 이름에 해학과 기지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작달막한 키에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애매한 길이의 콧수염을 흘리는 주인의 차림새는 영락없는 청지기 풍이었다.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왜 ‘면(麵)사무소’에서 면(麵)을 팔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장 답변이 가관이었다.
“중국집에서는 ‘만리장성’을 팝니까? 양식(洋式)집에서는 ‘피렌체’를 파느냐고요?”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주인장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앞집 면(面)사무소를 팔면 사실겁니까?”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나저나 무언가 좀 따져봐야겠다 싶어 앉았더니
"뭘 드실 랍니까?“
하며 장삿속으로 태도가 돌변했다.
“재무계만 얼마유? 세금 걷는 재무계만 따로 떼어서 사면 좋겠는데…….”
눈이 휘둥그래지는 주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면서 맥주를 한 병 주문하는 사이 옆 탁자에서는 언쟁이 벌어졌다. 인감증명을 인테넷 으로 뗄 수 있다는 측과 안 된다는 측이 다투고 있었다. 면(面)사무소에 물어보면 될 것을 왜 저리 다투고 있을까? 하기야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슬그머니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답을 알고는, 계속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디지털 시대에 그까짓 도장 한 방이 대수냐?”
“개인의 재산권을 지켜야 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이상 인터넷 발급은 곤란 하다.”
양측의 입장이 이제는 기본권 논리로까지 비화되어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었다. 저런 실속 없는 논쟁을 왜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여기가 ‘면사무소’란 사실 앞에서 수긍해야 했다.
문득 내 어렸을 적 시골 면사무소가 떠올랐다. 오각형 양철지붕으로 된 우리 고향의 면사무소는 건물에는 유리가 많이 끼워져 있었다. 사고를 친다는 이유로 우리 또래의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사실인즉 면사무소 ‘돌 방위’라 불리는 단기사병들이 공을 차다 유리를 깨 고는 어린 초등학교 애들 핑계를 대며 덤터기를 씌우는 바람에 우리는 도맷값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어쩌다 유리창 깨진 날, 영문도 모르고 면사무소 담장 밑 텃밭 길을 지나다 보면 총무계장님의 눈총을 맞아야만 했다. 학교 개구멍이 면사무소로 통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눈치를 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잘못도 없이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파워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나의 사람 눈치 보는 버릇이 그때 생기지 않았나 싶다. 조금만 더 돌아서 가면 될 것을 굳이 그 길을 고집했던 내 고집도 이해가 안 되었다.
면사무소 정문을 지나 10여 미터 진행하면 정미소와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포플러 나무 늘어진 신작로가 시작되는 그 버스정류장 옆에는 막걸리 집이 있었다. 영화배우 허장강이 나오는 찢어진 영화포스터로 창을 대충 막아놓은 막걸리 집, 문짝은 비 오는 날 달라붙은 흙으로 인해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다.
우리 동네 이장님은 거의 매일 동네 신고사항이나 서류신청 건을 취합하는 편이었으나 증명서를 발급받아서 나눠주는 법은 없었다. 내일 면사무소에 간다는 말이 항상 입에 붙어 있었지만, 다음날 면사무소에서 그 양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이 뻘겋게 달구어진 상태로 이 막걸리 집과 뒷골목 변소 가는 길 둘 중 한 군데서 목격되었다는 소문만 전해질 뿐 이었다. 막걸리 집 앞에서는 나도 가끔 이장님을 만나곤 했었다.
“성수 학교 갔다 오냐?”
하면서 오징어 다리 하나를 집어 줄 때면 세상에서 최고로 인정정 많고 따뜻한 아저씨였다. 이장이 막걸리 잘 마시는 것은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난 사실이다. 그런데 마을 아주머니들의 궁금증은 누구랑 먹었는가에 모아졌다.
이유인즉 이런 이장님의 막걸리 기운은 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 생년월일이 바뀌는 일이 없어야 하고, 더욱이 산 사람이 호적에서 지워지거나 형과 동생의 입적순서가 바뀌는 기상천외한 재주를 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누구랑 막걸리를 마셨는가 하는 것은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엊그제 승철 형이 자기 친형인 승근 형보다 먼저 군대에 갔다고 동네가 벌컥 뒤집힌 일이 있었다. 얼마 지나 승철 형이 군에 감으로써 봉합되긴 했지만 상당히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이장이 한 짓은 아니지만 그런 사건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현재의 이장에게까지 전가되어 막걸리 집까지만이라도 이장의 행적을 캐내야만 조금이라도 안도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장헐 놈이 있어야지!”
마을 어르신들의 장탄식은 마을회관이나, 두엄자리 근방에서 곧잘 메아리 되곤 했었다.그러나 그 소리는 마른기침과도 같이 반복되다가 허공으로 사라질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더욱이 공론화되는 법도 없었다.
면사무소 유리창 깨지는 사건과 이장 호적계 방문 기피증은 나에게 묘한 여운으로 남아 지금은 최신식 건물에 자동문이 달린 고향면사무소 민원실을 볼 때마다 아련한 추억이 되어 고소를 짓게 한다. 지금의 공익요원들은 공을 안 차는지 모르겠다. 막걸리 집은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청주만 먹어요. 찌꺼기도 따를까요?”
파전 한 접시 주문하고는 막걸리를 많이 팔 요량으로 청주를 권하는 주인의 상술에 탄복 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옛날에는 주린 배를 채우려고 막걸리를 마셨는데, 지금은 안주로 돌았구나 싶다.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었으니 지금은 면(面)사무소에 갈 일이 별로 없다. 바쁜 민원실 앞에서 대기하는 긴 시간을 때우려고 이곳 ‘면(麵)사무소’에 들러 국수 한 그릇에 멸치육수를 가득 부어 배부터 채우던 그 시절이 이젠 다시 돌아 올 리 없다. 세월의 변화를 알면서도 왜 국수를 팔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나를 보면서 주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면(面)사무소’ 앞 ‘면(麵)사무소’는 추억의 상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볼 때 회화적인 느낌은 들지만, 우리사회 젊은이들은 거기 담긴 의미를 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면사무소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우르르 몰려왔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면사무소를 먹으러 오네?’ 엉거주춤 일어서려니 뭔가를 흘린 것 같아 허전하였다.
‘아! 인감증명을 인터넷으로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까? 아니, 답을 찾았겠지!’
앞서 다투던 그분들 앞을 조심스럽게 지나 출입문을 나서며 다시금 간판을 둘러보았다.
‘면(麵)사무소!’
(200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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