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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전거/권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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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4회 작성일 10-08-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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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전거 행촌수필문학회 권 철 주 새집으로 이사 와서 만족하며 동네를 둘러보니 자전거 길도 좋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 큰 ‘삼천’이 흐르고 둔치가 조성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이사 온 뒤 뒷산이며 개발된 지 꽤 오래된 지역의 깨끗한 아파트촌이 너무 아름다웠다. 두어 달 지나서 새집 가꾸기가 웬만큼 마무리 되었을 때 막둥이가 타던 낡은 자전거를 끌어냈다. 막둥이는 이사를 오자마자 중등학교 초임발령을 기다리며 바빴다. 위로 누나와 형도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며 산다. 자전거점에서 점검해보니 아직 쓸 만했다. 몇 차례 자전거도로와 천변 둔치에서 주행을 했다. 아내도 뒤에 타거나 따라다니며 길옆에 있는 공원에서 쉬었다. 그러다가 늦었지만 이번에는 자전거를 꼭 배우겠다며 가르쳐 달라고 했다. 젊어서 한두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맨 처음 가까운 공원에서 아내를 태우고 뒤에서 잡았다. 역시 옛날처럼 핸들이 비틀려 풀밭 나무쪽으로 나뒹굴었다. 아내는 몸이 허약한 것 같다. 몇 번 넘어지며 애쓰더니 실망하면서도 시작에 만족하고 며칠 쉬었다. 다시 시도할 때부터는 나도 각오를 분명히 하고 아내도 힘을 냈다. 한두 번 오래 연습을 하면서 아내도 손과 몸의 감각이 살아나 자신감이 생겼다. 천변의 둔치로 장소를 옮겨 하루 이틀 뒤에서 잡아주던 나는 슬며시 안장을 놓기 시작했다. 59세의 아내는 3일 만에 드디어 홀로 달렸다. 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둔치 길을 아내는 열심히 달렸고, 나는 뒤에서 가까이 붙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왜냐하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걷기 운동을 하므로 부딪치는 불상사를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이는 다리까지 가면 둘 다 녹초가 되어 쉬고 다시 똑같이 달려서 돌아오면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둔치에서 올라와 15분쯤 걸어 집으로 오는데 근처의 콩나물 전문식당에 들러 저녁밥을 먹었다. 그때의 밥맛이야말로 최선의 운동과 땀에 대한 꿀맛 같은 선물이었다. 아내가 대견스러웠고 본인도 감동했다. 그렇게 매일 되풀이해서 일주일 뒤에는 자전거에 숙달했고 나는 아내에게 1주일 만에 자전거를 배웠다고 칭찬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아버지의 고물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배웠다. 처음에는 키가 작아서 살살 뛰어 먼저 한 발을 폐달 위 돌림쇠에 얹고 다른 발을 위로 쳐들어 잽싸게 안장에 앉아야 했다. 넘어져 피부가 벗겨지는 것쯤은 자전거를 탈 수 있고 달린다는 스릴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배운 자전거는 이 동네의 고갯길 비포장 국도에서 마주 오는 버스와 아슬아슬하게 비켜 달렸던 어느 저녁때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오뉴월 어느 무더운 날, 친구의 권유에 따라 자전거 한 대를 빌려서 멀리 남쪽으로 국도 자갈길을 한 없이 달렸다. 10km 이상 달렸을까, 땡볕 아래 목이 타 사이다 한 병을 사 마시고 다시 가는데 유난히 돌이 많이 깔린 길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충돌하고 말았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가서 뇌수술을 받고 1주일동안 입원을 했다. 그 덕에 학교를 쉬고 사고충격 때문인지 사이다를 못 먹게 되었다. 뒤늦게 배운 아내의 자전거가 교통사고와 연계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아내도 배우면서 자주 넘어졌고 또 몸을 소중히 아끼는지라 내 말에 수긍을 했다. 꽃피는 4월이 시작되었다. 냇물 따라 넓은 초원이 싱그러운데 잘 조성된 둔치 길은 끝없이 뻗어있었다. 막 배운 아내의 자전거는 연습코스였던 다리를 지나 다음 다리까지 이어졌다. 나는 뛰다가 지쳐서 혼자 달리라고 맡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막둥이가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나에게 비싼 자전거를 선물했다. 가볍고 튼튼해서 흡족했으나 헌 자전거를 타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두 대의 자전거를 타는데 이번에는 자녀들이 공동으로 엄마의 자전거 타기를 축하한다며 고급자전거를 사왔다. 이로써 부부의 전용 자전거가 마련된 셈이었고 각자 헬멧을 쓰고 동네의 호젓한 자전거 길을 여유롭게 돌아서 천변 둔치로 나간다. 우리는 옆으로 또는 앞뒤로 나란히 달렸다. 나는 달리면서도 좌우풍경을 감상하지만 아내는 운전에만 집중하며 긴장한다. 도청 옆 널따란 둔치 공터에는 축구장이 둘이나 있어 대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여기를 지날 때는 부부가 부끄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그들 중에는 아내가 자전거를 배우려고 애쓴 것을 보았으리라. 갈대와 억새풀이 무성한 곳을 지날 때는 아내가 내려서 구별을 해 준다. 이제는 목표지점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 둔치를 계속 달린다. 다리와 다리 사이에 납작한 바위 징검다리들이 있는데 철썩이는 물결에 손발을 담그며 피곤을 푼다. 어려서 개구쟁이 시절에 여름마다 멀리까지 걸어가서 농수로 수문 앞의 냇물에서 다이빙을 하며 실컷 물장난을 쳤던 장소에 이르면 우리는 잠시 멈추어서 노부부의 평온한 여생을 그리기도 했다. 둔치를 끝까지 달리다 보니 마지막 다리에 이르고 다리 건너편으로 또다시 제방에 자전거길이 조성되었다. 수원지로 이용하는 맑은 시냇물을 따라서 둑길을 시원하게 달리면 또 하나의 다리가 나오면서 끝난다. 10km쯤 왔을까, ‘모악산’ 바로 밑이며 산수가 뛰어난 평화로운 시골풍경이다. 이렇게 뒤늦게 배운 아내와 함께 두세 달 거의 매일 자전거타기를 즐겼다. 집 뒤에는 ‘황방산’이 있고 삥 도는 길이 있는데 아내와 함께 탈 때는 두 시간가까이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여서 몇 차례 즐겼는데 산 뒤로는 시골 길이어서 아내는 힘들었을 것이다. 공원묘지에 이르러서 입구 양 편으로 늘어 선 오래된 벚나무 꽃길 터널을 빠질 때는 부부가 좋아서 만감에 젖어들었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아내가 아프다고 자전거를 놓기 시작했다. 충분히 탔기 때문에 쉬는 것은 상관없으나 몸이 허약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자전거를 잊을 만큼 지내다가 막둥이가 여름방학 시작하는 날 피서지로 떠나면서 엄마를 병원까지 태워다 드렸다. 나는 ‘모악산’을 다녀와서 점심을 먹는데 병원에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라기에 갔더니 아내가 각종 검사를 받으며 폐에 엄청난 물이 찼다고 뽑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응급실과 입원실에서 일주일 이상 지내면서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폐암 말기였다. 일산 ‘암센터’로 옮겼으나 수술도 불가능해서 3주에 한 번씩 ‘전주’에서 올라가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신기하게도 반 년 정도는 항암주사 때문이었는지 일본 온천여행도 갔고 얼마간은 자전거도 탔다. 희망적이어서 자전거 운동을 시켰고 아내도 기분전환으로 이따금 받아들였다. 이듬해 2월인가, 모처럼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아내의 자전거를 2층에서 내려주고 내 것을 들고 내려 왔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길로 갔는지 몰라서 아내의 몸도 걱정되어 짜증이 폭발된 채로 둔치로 가니 다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마음대로 타느냐’고 소리치자 ‘만났으면 된 게 아니냐’고 받아치자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혼자 오며 담배를 사서 몇 대 연속 피웠다. ‘폐암’ 때문에 끊었다가 100일 만이었다. 그 뒤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자전거를 탔던 게 기억된다. 반대편 방향으로 둔치를 얼마간 달리다가 아내가 힘이 없어 돌아오는데 갑자기 중심이 흔들리더니 자전거가 넘어질 듯했다. 그 뒤 아내는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서 ‘암센터’에서 50일 투병을 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내 자전거는 도둑을 맞았고 아내의 자전거는 오랫동안 현관에 방치해 두다가 최근에야 다시 타게 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탔던 그 ‘길’을 달리면서 아내의 영혼과 속삭일 뿐이다. “당신은 자전거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201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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