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5주년을 맞아/임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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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5주년을 맞아
전주안골 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임종우
오늘은 광복을 맞은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고 야단이다. 나는 광복되던 그해를 상기해 보았다.
학교에 늦게 들어가서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전날 어머님과 함께 무주군 안성면 외가댁에서 60리길을 걸어 돌아오는 중에 일본사람 한두 명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해에는 무척 가물어서 모를 제대로 심지도 못하고 못자리에서 벼가 출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논이 뽀얗게 말라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밭곡식도 배배 꼬여 아사직전이었다. 오다가 개울가에서 졸졸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퍼서 입을 축이며 하늘을 원망하였다. 외갓집에서 쌀을 줘서 어머님께서는 머리에 이고 오는 길이었다. 나는 해방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그저 좋다고 만했다.
학교에 늦게 들어갔으나 학교 밑이 우리 집이어서, 학교생활에 바로 적응하였고, 일본말도 쉽게 익혀 배워 웬만한 욕은 일본말로 다 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정천공립국민학교로 교장 선생님은 일본인이었는데 1학년 담님을 맡아서 가르쳤다. 교장 선생님은 일본군인처럼 긴 칼을 차고 다니는가 하면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서와 면사무소를 자주 다니셨다. 생활은 학교 숙직실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석양에 남산쏘라는 목욕터에서 다슬기 잡기를 좋아 하였다. 눈에 개 눈을 박았다고 하여 안경을 쓰고 다녔다. 수업시간이면 어찌나 사납게 어린 학생을 때리던지 무서워서 학생들이 벌벌 떠는 선생님이었다.
여름방학 과제로 건초 15관과 쑥을 뜯어서 말려오도록 하였다. 건초는 학교에서 말도 기르고 소와 염소도 길렀으니까 말먹이로 활용하고자 했었다. 쑥을 뜯어오라고 한 것은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였는데 쌀보다 쑥밥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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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는 가뭄으로 보리농사가 흉작이어서 식량사정이 말이 아니 었다. 일본사람들의 착취로 농사를 지은 것은 다 빼앗기고 굶기를 밥 먹 듯했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하지감자가 잘되어서 헛간을 가득 채워 놓고 감자밥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게 되었다. 지금도 간혹 그때 감자농사로 살았던 이야기를 형님과 하면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을 하였다. 식생활이 변하여 감자를 찬으로 먹지만 그때는 주식인 쌀과 보리 대용으로 먹고 살았었다. 광복의 기쁨은 삼천리 방방곳곳에 널리 퍼졌다. 광복 후에는 우리한테 착취해 간 벼를 미쳐 싣고 가지 못하고 면내 창고에 보관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찾아다가 나누어서 쌀밥을 먹게 되었다.
우리는 무턱대고 학교에 가서 신궁 가메사마를 꺼내서 불에 태우고 일본책들도 전부 꺼내다가 불태워 버렸다. 그처럼 무섭게 다루었던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언제 도망갔는지도 모르게 야간도주를 하였다.
오늘 광복절기념식에는 참석치 못하고 TV로 기념식 장면과 경복궁 복원장면을 보면서 다시는 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은 치욕일 뿐 아니라 고통이었다. 얼마 전 강원도 속초를 다녀오면서 백담사에 들러 김광식 씨가 쓴 만해 한용운 평전을 샀었다. 나는 오늘 그 책을 찾아 다시 읽었다.
만해스님께서는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1903년 불가에 입문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으로 독립선언기념연설을 하고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하였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서훈되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불교대전 정선강의》, 《채근담》,《십현담주해》 등 많은 저술을 남기신 분이다. 나는 광복 65주년을 맞아 만해 한용운 스님의 애국혼을 다시 조명해 보았다.
(20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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