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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쥐 엄마/최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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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6회 작성일 10-08-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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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쥐 엄마 미국 샌디에고 최미자 3년 만에 고국을 찾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겨우 볼일만 보고 돌아왔다. 대학원의 연구원에 근무하고 있는 딸의 작은 방 한쪽이 나의 숙소였다.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이불을 빌려놓고 기다리는 딸의 정성에 감사하며 재미있었다. 만나면 말다툼도 생기는 모녀지간이지만 어느 교수님이 달아준 별명처럼 우린 시스터 같다. 허약체질인지라 시차로 빌빌거리다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두 번째 수필집 《샌디에고 암탉》 출판기념음악회 행사준비를 하려고 출국했기에 할 일은 산더미였다. 20년 넘게 미국에 살며 출판행사를 한답시고 종이 초청장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성의가 없게 느껴져 미국에서 친지와 친구들에게 전화로 일일이 행사를 알렸다. 아름다운 오월의 마지막 토요일을 붙잡았지만 결혼식 날이 겹쳐 못 온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80여분이 유쾌한 답을 보내왔지만 교통도 불편한 분당의 외곽동네로 그날 별 탈 없이 오실 것인지. 우리의 삶은 그렇게 늘 호사다마였다. 사회를 맡은 제자는 갑자기 장모 상을 당했다며 친구에게 부탁을 하는 등. 날씨는 후텁지근한 여름이 가까워졌고. 세 해 전부터 대전에 사는 조카가 색소폰을 연주하겠다던 말이 씨앗이 되어 작은 축하음악회가 뜻밖에 하나둘씩 엮어졌다. 출연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려고 나는 멋있는 책갈피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쇄를 맡겼다. 거의 준비가 되어가니 이제 내가 입을 한복을 맞추는 일만 남았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넓은 미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나는 그리운 모국 땅에 오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한다. 방향감각도 전혀 없지만 만나는 것들마다 생소하기에 서러운 이방인이 된다. 가까운 성남시장에 가서 주문을 해놓았는데 다음날 안 된다는 전갈이 왔다. 남편이 시의원에 출마하여 정신이 없다던 주인아주머니의 태도와 천의 샘플마저 가게에 없어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나 그랬다. 전화를 받던 날은 마침 나의 여고총동문회가 강남 고속터미널 근처 호텔에서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근처 지하상가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복잡하고 텁텁한 서울 공기는 모처럼 나들이 간 나의 머리를 핑핑 돌게 했다. 행사 후 선배인 친척 올케랑 터미널 상가 2층으로 갔다. 다행이 첫 번째 가게에서 원하는 색상을 찾아 생각대로 한복을 맞출 수 있었다. 나흘 후, 퇴근한 딸의 손을 잡고 빨간 좌석버스를 탔다. 요금 카드를 기계에 갖다 대는 일도 서툴러 나는 매번 헤맸다. 직장일로 지친 딸은 버스에 올라타면 눈을 감는다. 그리곤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우리 시골 쥐 엄마’ 라며 킥킥거린다. 도심의 빌딩 숲은 언제나 담배연기로 가득하지만 버스안의 공기는 비교적 신선했다. 시부모님을 못 찾아오게 하려는 기발한 젊은이들이 만들었다는 소문처럼 요상한 아파트의 이름들이 창밖을 스쳐갔다. 상가의 명칭들을 읽어보면 외국에 온 기분이다. 화려한 빌딩의 외곽이며 구두굽이 미끄러질까봐 겁이 나는 건물 안의 번들거리는 대리석 바닥들도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얀 살을 거침없이 자랑하는 짧은 반바지 차림의 아가씨들. 개성 있는 가지가지 남녀의 옷차림들이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 강남 고속터미널 상가에 도착하니 새벽부터 문을 연 가게들은 벌써 문을 닫았다. 내 주문대로 잘 만들어준 한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뜰한 구매를 위한 적립 포인트를 받느라고 딸은 카드로 값을 지불했다. 근처식당에서 순두부를 사먹고 잠시 지하철을 탔다. 자살방지 유리문이 이채롭다. 밤이 깊어가니 시청근처의 지하철역 광장에 모여들던 중년남자 노숙자들의 쓸쓸한 얼굴들. 우리들 어린 시절 한국전쟁 후에도 이런 신사거지아저씨들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밤 11시경인데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던 서울. 종점이 가까워지니 우리가 탄 버스는 밤 12시가 조금 지났다. 약 7년 전 연구원 근처의 정겨운 논두렁 밭두렁 땅들이 지금은 빌라 동네로 변해버렸다. 길가의 정원석 사이사이에 핀 분홍색 철쭉꽃들이 즐비한 서판교의 새 동네. 앞으로도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 집을 지으며 살아갈 것인지. 가끔은 우리 전통의 한옥기와집도 군데군데 세워두면 좋으련만, 모든 게 서양풍이다. 유아원부터 영어를 배워야하는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고 얼마나 자긍심을 느끼며 자랄까. 한국문화와 우리 것을 사랑하는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꿈이 있다는 커다란 땅, 미국에서 온 나는 고국에 가면 주변의 생소한 것들로 시골 쥐가 될 수밖에. 점심때면, 소문난 식당마다 몰려든다는 아줌마부대들. 요리학교 출신 요리사들이 개발하여 코스로 나오는 퓨전한식은 위생적이어서 좋았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들은 이 시골 쥐 엄마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백화점마다 세계에서 진귀한 것들은 다 모여 있어 호기심을 부르며 유혹했다. 고국에 오자마자 발이 편하다는 이태리제 구두를 사주던 딸의 청에 나도 넘어가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웃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자기분수에 넘치지 않는 삶을 절제하기가 퍽 힘들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도 상가에서 스타킹 두 묶음을 사고 떡도 샀다. 계단에 앉아 더덕을 벗겨놓고 파는 할머니의 야채꺼리를 사들고 오며 부엌도 없는 딸의 방에서 어떻게 해먹을 것인지 궁리하니 참 우스웠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면 기둥을 꼭 붙잡아야 넘어지지 않는다며 딸이 나에게 일러주었다. 안전을 위해 노인들은 가능하면 지하철을 타야 한단다. 한 시간 반 걸려 서울을 빠져나왔다. 경기도 청계산 자락의 신선한 밤공기와 희미하게 떠있는 별들이 반가웠다. 어려운 여건을 견디면서 한국을 배우고 있는 딸이 대견하여 가냘픈 손을 꼭 쥐어보았다. (2010년 8월 2일 미주중앙일보 문예마당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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