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제비가족/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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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제비 가족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명희
음력 3월 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다. 이날을 전후로 해서,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제비는 참으로 반갑고 친근한 철새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목청을 돋우어 '지지배배 지지배배'노래를 부르고, 멋진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창공을 가르며 봄소식을 전해주곤 했었다. 시골집 처마마다 제비집이 있었다. 제비는 돌아오자마자 터를 잡고 건축설계대로 바쁘게 집을 지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곧바로 알을 낳고 부화하여 새끼들이 탄생하면 귀여운 새끼들을 먹여 살리느라 제비부부는 교대로 쉴 새 없이 먹이를 날랐다. 제비집이 산뜻하면서도 뒷마무리가 깔끔하면 그해는 비가 적게 오고 너절하고 지저분한 모양의 집을 지으면 그해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제비를 구경할 수가 없다. 각종 병충해 방제로 인하여, 농약을 살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도심 속 우리 집에선 귀여운 제비새끼 세 마리가 자라고 있다. 8살 하연, 6살 세연, 4살 주연이 그들이다. 예쁘고도 무척 귀엽다. 날마다 일터로 나갔다가 퇴근길에 아이들의 먹을 것을 물어오는 엄마와 주말을 기다리는 세 자매는 예쁜 제비새끼와 매우 흡사하다. 매주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아빠가 보고 싶다며 한껏 마음이 설레며 부풀어 있다.
우리 집은 항상 조잘대며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투정과 응석을 부릴 때도 많다. 그런데도 화목하고 평화스러운 제비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3남2녀 중 우리 부부와 셋째 딸 내외, 아이들 셋 등 일곱 명이다. 어쩌다 그만 엉겁결에 아이들 셋을 다 기르게 되었다. 때론 귀찮은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쓸쓸함을 느낄 틈이 없어 좋다. 남편이 아침 7시에 출근시키는 딸, 그리고 되짚어 남편이 7시45분에 하연이를 초등학교로 등교시킨다. 나는 9시에 세연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주연이와 함께 생활한다. 주연이는 온갖 재롱을 부린다. 하루가 다르게 말솜씨가 는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컴퓨터로 재미있는 야후 꾸러기의 전래동화와 동요를 많이 보여줬는데 언제부턴가 주연이가 마우스를 잡더니만 즐겨찾기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아주 능숙한 솜씨로 찾는다. 저 혼자 컴퓨터를 켜고 끄며 아주 잘 활용한다. 아이들도 시대에 따라 성장과정이 다른 것 같다.
하연이는 할아버지할머니랑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한다. 동생들도 제가 모범을 보여서 버릇을 잘 고치겠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지가 얼마 안 되는데 훌쩍 어른스러워진 하연이가 사랑스럽다. 잠자리에 들면서 할머니 어디 아픈데 없느냐며 안부를 묻곤 한다. 다음에 커서 의사가 되어 할아버지할머니의 병을 다 치료해주겠다며 지금부터 미래의 꿈을 제시해준다.
그런가 하면 세연이는 항상 낭랑한 목소리로 재잘거리며 화가와 요리사가 되어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이른 봄에는 경청을 배운다며 제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되게 안 듣던 세연이가 갑자기 어른들의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무르며 상냥하게 심부름 시킬 일이 있으면 자기를 시켜달라고 했다. 잘하겠단다. 웬일일까 의아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말을 다시 안 들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내게 “이젠 유치원에서 '순종'이 끝났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배려'를 배워요. 할머니, 제가 기침을 하니까 마스크를 쓰고 가야겠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배운 대로 본 대로 따라 한다. 주연이는 동화 속에서 자기의 환상적인 꿈을 찾는다. 백설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등이 왕자와 결혼하듯 공주와 같은 꿈을 갖고 있다. 동화 속에서 살아가는 그 모습이 천사와 같다. 그 많은 꽃이 아름답다고 하나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싱싱한 인간의 꽃을 그 무엇에 비교하리요?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어린 손녀들과 생활하다 보니 나도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 눈높이가 동심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부르는 노래도 동요뿐이다.
4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동물원에 가려고 이침부터 서두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등산을 가고 나머지 우리 식구 6명만 출발했다. 전주동물원은 1978년 6월 10일 개원하였으니 지방 동물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오래되었다. 총면적이11만 8,800평방킬로미터라고한다. 1,000여 종 654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으며, 휴식공간이 넓다. 한편 동물원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바람이 심술을 부렸다. 벚꽃 꽃잎이 꽃눈처럼 하늘에서 춤을 추며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은 나비 같아 보였다. 때론 세찬 바람결에 마구 흩어져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꽃 이파리는 가엾은 집시들의 삶처럼 느껴졌다. 옷깃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은 우리를 잔뜩 움츠리게 하였다. 동물원 입구에서부터 길 양쪽으로 놓인 큰 화분에는 여러 색깔로 피어난 팬지꽃들이 우리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분홍, 노랑, 흰색, 보라, 빨강 등의 조화를 이루고, 저절로 봄의 희열을 느낄 만큼 눈이 부셨다.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인사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지난해 몹시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금은 화창한 봄이네요. 우리 꽃 대궐에 오셨으니 마음껏 즐기고 가세요. 참으로 찬란한,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팬지꽃들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저 꽃들은 알몸으로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저 멀리서 개나리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우린 항상 어렵고 힘들 때를 대비해서 영양분을 충분히 비축해 놓는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지요."
개나리꽃의 설명이 장황했다.
나는 꽃의 향기를 맡으며 두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예쁜 꽃들아, 안녕? 너희들 때문에 오늘 하루가 몹시 행복하구나. 눈물겹도록 고달픈 너희의 삶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황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마다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 봄의 향기를 한 아름씩 가슴에 담고 간단다. 예쁜 너희들이 있기에 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거야. 고마워!" 나는 꽃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겨우내 움츠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온 동물원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젊은 부부들의 가족나들이로 붐볐다. 화창한 봄날,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얼굴 표정, 옷차림, 머리모양이나 신발 등을 보노라면 참으로 다양했다. 어디 그뿐이랴? 크고, 작고, 뚱뚱하고, 홀쭉한 사람,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소리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니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호랑이, 코끼리. 기린, 낙타, 염소 등 아이들과 동물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놀이기구를 태워주려고 입장권을 한 묶음 사서 오리 배, 말, 공중기차 등 두루두루 돌려가며 어른들과 같이 탔는데, 갑자기 하연이가 ‘귀신의 집’에 가자고 졸랐다. 엄마는 무섭다며 싫다고 했다. 하연과 세연이는 아빠가 데리고 들어가고, 주연이는 내가 데리고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캄캄하고 칠흑 같은 동굴 속은 들어서자마자 머리가 꼿꼿이 서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했다. 으~~~흑 으~~~흑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굉음을 내는가 하면, 으~하 하! 으~~흐 흐 도깨비가 방망이를 들고 서서 위협을 했다. 순간 네 살짜리 주연이가 놀랄까봐 업고 캄캄한 길을 더듬거리며 마구 뛰어 나오는데 이번엔 바닥에서 꽝꽝 폭탄이 터졌다. 주연이가 놀라서 울 것만 같았다. 미로를 찾느라 한참 헤매다 나와서 주연이의 얼굴을 살피니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주연아! 주연아!"
허둥대며 애기 이름을 불러 보았다.
"할머니, 나 괜찮은데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아이들을 바라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젓한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늘밤 밤 벚꽃을 구경하러 나오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동물원 안으로 들어오는 인파에 밀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늦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 주차장에 차가 많이 밀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집에다 전화를 해도 안 받았다. 주차장에서 빠져 나오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내 엄마를 올려다보며 주연이가 물었다.
"엄마! 누가 나를 귀신의 집에 데리고 갔어요?"
똑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엄마얼굴을 올려다보며 끈질기게 물었다.
"할머니께 물어보렴."
"음, 주연이가 용기를 내라구. 담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였지. 주연아, 힘내. 알았지? 용감하게 사는 거야. 응?"
"네, 할머니!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도장 찍고, 코팅하고, 복사도 해요."
주연이는 또다시 말을 이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우리 다음에 또 와요. 알았죠?"
(201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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