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 꽃의 진실/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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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꽃의 진실
전주안골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이금영
언제나 5월이 오면 흐드러진 아카시 꽃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산길을 걸을 때도,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도 창틈으로 향기가 밀려들어 눈을 떠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아카시 꽃이 만발해 있다. 아카시 꽃은 눈을 풍요롭게 하고, 향기는 코를 자극하며, 꿀벌들이 꽃방을 제집 드나들 듯 비상하면서 윙윙거리며 귀를 깨어있게 해준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온갖 영양소가 듬뿍 함유된 꿀을 제공해 주는 일이다.
아카시 꿀은 향기롭고 달콤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꿀에는 여름에 갈증과 더위를 식혀주는 비릿한 밤꽃 꿀이 있고,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메밀 꿀이 있는가 하면, 여름과 가을철에 여러 풀꽃에서 나오는 잡 꿀도 있다. 또 1년에 한 번만 따는 한봉 꿀이 있다. 그중에서 5월에 채취하는 아카시 꿀은 향기로 보나 맛으로 보나 꿀 중에서 일품이다. 꿀은 용도에 따라 선호하는 취향과 쓰임이 다르고 개인적인 체질에 따라 그 맛을 달리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아카시 꿀로 편도선염을 다스려 왔다. 편도가 따끔거리고 부어있을 때 꿀을 아픈 부위에 여러 차례 발라주면 부기가 내리고 통증이 완화된다. 20년 동안 꿀벌을 치면서 내가 개발하고 터득한 비상처방전이다.
나는 아카시 꽃만 보면 아련히 향수에 젖곤 한다. 우리가 벌들과 인연을 맺은 지는 쾌 오래 전 일이다. 아카시가 하얀 꽃망울을 살포시 드러낼 무렵 벌 두 통을 들여 놓았었다. 꿀벌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얼굴에는 망을 쓰고 고무장갑을 끼어도 툭하면 벌에 쏘여 얼굴이며 손등이 부어올라 내 상상대로라면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를 연상케 하였다. 저팔계가 된 내 모습은 보지 못하고 상대의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진짜 꿀’ 그것이 문제였다.
항간에 ‘꿀’하면 부자지간에도 그 진실성을 말하지 못한다고 익히 들어왔던 터라 우리가 직접 벌을 쳐서 꿀맛을 보기로 하였다. 벌통을 구입하여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으로 양육한 덕분에 진짜 꿀을 따 먹을 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노력한 결과로 꿀벌 가족 2통이 10통으로 불어났다. 어느 때는 10통이 또 다시 20통으로 불어나기도 했는데, 숙련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많은 벌을 관리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퇴근 후 여가시간을 고스란히 벌 관리에 바쳐야했고 주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아이들과 야외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벌 관리에 매달리는 남편을 볼 때면 나는 애꿎은 벌통만 발로 툭툭 차곤 하였다. 꿀벌을 기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기를 키울 때 조금만 방심하면 젖은 기저귀가 아기 볼기를 짓무르게 한다. 때에 맞춰 예방접종을 하듯이 벌들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진드기가 생겨 날개가 부실한 일벌들이 나온다. 진드기가 벌의 몸에 붙어서 진을 빨아 먹으니 벌이 죽는다. 벌의 군세는 점점 약해져 일벌의 수가 부족하여 꿀을 채취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채밀할 시기에는 벌들이 약해질까 봐 소독도 미리미리 해줘야 한다.
아카시 꿀 한 번 따려면 월동기를 제외하고 1년 동안 가족을 부양하듯 벌들을 먹여 살리는 일, 바로 그때 설탕물을 먹여서 새끼를 많이 치게 하여 벌의 군사를 충분히 늘려 놓아야 아카시 꽃이 만개하였을 때 많은 꿀을 채취 할 수 있다. 그러려면 2월 초순부터는 밥(벌의 식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 벌은 식량이 부족하면 여왕벌이 알을 낳지 않고, 일벌들은 자라는 애벌레를 물어다 버린다.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합리적인 가족계획을 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도 자녀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 아래 가족계획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도 딸과 아들 둘만 낳았는데 돌이켜 보면 셋을 낳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 점은 사람 사는 세상이나 자연계나 상통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벌통에는 한 마리의 여왕벌이 4~6만 마리의 일벌과 놀고먹는 수펄들을 거느린다. 수펄은 단 한 마리가 공중에서 거행되는 여왕벌과의 결혼식을 위해서 일벌들이 많은 수펄을 먹여 살린다. 거느린 식구가 너무 많아지면 자연스레 한 마리의 새 여왕벌을 탄생시켜 집을 나눈다. 벌통 속은 새 여왕벌에게 넘겨주고, 기존의 여왕벌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다. 수만 마리의 일벌과 수펄들은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이 옛 여왕벌을 중심으로 주변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분봉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다행히 이런 장면이 벌주인 눈에 띄어 빈 벌통을 제공하면 그 곳에 새 보금자리를 튼다. 꿀벌들의 평화로운 공동체에서 지혜로운 삶을 엿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벌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농약 등 자연재해 때문이기도 하고 주로 무선통신에서 내뿜는 전자파가 꿀벌의 행동 정보를 교란시켜 벌들의 꿀 사냥을 방해 받는다고 한다. 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단순히 꿀을 먹지 못 하는 게 아니라 벌이 행하는 식물의 수분(受粉), 수정을 할 수 없게 되어 식량 부족으로 인류가 버틸 수 있는 기한이 고작 4~5년이라 한다. 인류 과학의 발달로 사람이 편리하여 지지만 자연생태계는 파괴되어 결국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일을 어찌 할 것인가?
다른 이들이 우리 부부를 믿고 꿀을 먹었듯이 이젠 나도 지인의 인격을 믿고 꿀을 구입하여 먹는다. 며칠 전 어느 방송의 ‘벌꿀의 진실’이란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현장을 보았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외딴 곳에 꿀 공장을 차려놓고 버젓이 자연 꿀, 진짜 아카시 꿀이란 상표로 꿀을 대량생산하는 현장이었다.
가짜를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하게 만드는 세상인데 누구를 탓할 것인가. 과학의 발달이 숭고한 자연을 점령하고 있다. 벌들은 꽃에서 꿀을 빨아 불룩한 배로 쏜살같이 벌통으로 돌아와 육각형의 벌집에 저장해 놓고 영양소를 고이 간직한 채 쉼 없는 날갯짓으로 수분을 제거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하여도 이는 인간이 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벌 꿀 속에서는 박테리아균도 사멸한다는데, 어찌 인간의 잔꾀로 그 농도와 성분을 고스란히 지킬 것인가. 꿀벌들은 꿀이 있는 곳이면 4km, 밀원이 적을 때는 8km까지 날아가며, 벌 한 마리가 꿀주머니에 꿀을 가득 채우려면 보통 수백 번의 꽃을 찾아 꿀을 모은다고 한다.
곤충과 더불어 상생한 세월이 ‘십년법칙’을 고수했다. 경험과 노하우로 실패하지 않고 결실이 좋아 가계에도 보탬이 되었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진실성과 참된 가치관은 소통이 되었나 보다. 아카시 꿀의 풍년이 드는 데는, 필요조건인 햇볕과 적당량의 비가 내려 수분이 결합됨과 동시에, 후텁지근한 초여름의 온도가 충분조건이고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아카시 꽃이 필 시기에 장마가 겹치면 꿀 농사는 흉년이 든다. 그동안 저장해놓은 꿀은 벌들이 장마기간에 왕성한 식욕으로 먹어치운다. 진짜 꿀을 따내기는커녕 너무 허망해 흰 구름 흘러가는 빈 하늘만 바라보아야 했다.
벌을 기르던 초보 시절, 어떤 해는 꿀이 어찌 많이 들어오던지 3~5일에 한 번씩 꿀을 채취하여 담을 그릇이 부족하였다. 집안에 있는 양푼까지 동원하여 꿀을 담았는데 꿀이 묽어서 실패작이 된 때도 있었다.
100% 진짜 꿀을 따고자 언제나 내 두 눈은 감시카메라가 되어 작동 중이었다. 누가 뭐라 해서도 아니고, 시켜서도 아니다. 그가 가짜 꿀을 만들 것이라는 상상을 떠나서 나는 내 나름대로 그렇게 몰래 카메라가 되고 싶었다. 우리 결혼생활 삼십여 년 동안 매니저로서 역할을 똑똑히 해낸 시기는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누가 나한테 던져준 충격적인 한마디!
“꿀은 부자지간에도 못 믿는 다지?”
그분은 나를 잘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내 인간성이나 사람 됨됨이를 잘 아는 분이다. 내가 의지하고 따르는 분인데 나한테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는 충격이었다. 아무리 교사 봉급이 쥐꼬리라고들 하지만 그 쥐꼬리를 양봉으로 소꼬리 만들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다. 순수한 노력의 대가로 살림에 약간의 도움이 되어 보람도 있었다.
모처럼 꿀 풍년이 들어 많은 양을 채취한다 해도 1년 동안 꿀을 팔아서 모은 돈이 교사의 한 달 봉급도 못된다. 그런데 그 돈을 얻고자 양심을 헌 신짝 버리듯 하고 얄팍한 상술로 지인들을 속여 삶을 지탱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본 일이다. 나는 그러한 내용들을 지인한데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우리의 입장과 참된 마음을 알려 주었다. 그분은 “그러면 그렇지!”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람을 믿고 못 믿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그러나 십년이란 세월을 바보스럽게 살지언정 양심을 지키는 일은 굽히지 않았다. 진실한 긍정은 통한다고 했던가? 이십년 경험으로 하여 상표가 없는 우리 집 그 ‘진짜 꿀’을 적은 양이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거둘 수 있었다.
그분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꿀”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살면서 인정받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진실성을 인정받을 때는 참 흐뭇하고 행복했었다. 또한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사는 삶은 정말 슬픈 일이다. 나는 우리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여 값 비싼 옷이나 메이커 제품을 선호하지 않지만 불만스럽게 내 삶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며 세상을 살고 싶진 않다.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사랑스런 내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어찌 거짓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꿀은 이른 아침에 따는데 채밀기를 돌리는 일은 내 영역이다. 너무 세게 돌리면 애벌레들이 모두 빠져나와 큰 손실이고 따르고, 약하게 돌리면 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하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채밀기를 돌릴 때 처음에는 묵직한 느낌으로 사알 살 돌리면 꿀이 원심력에 의해서 후드득 후드득 하고 빠져 나온다. 채밀기 아래로 맑고 투명한 아이보리색의 꿀이 주전자에서 물 나오 듯 쏟아질 때면 가뭄에 단비가 내릴 때처럼 흐뭇함과 희열이 느껴진다.
“아카시 꽃, 너는 알겠니?”
내 진실한 삶 한 부분이 너와 같이 했다는 것을, 결코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그런 일은 하늘이 알고, 아카시 꽃이 알고, 우리가 기르던 벌들이 알고 있었음을, 그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순백의 아카시 꽃은 피었다. 우리를 진실한 마음으로 믿어주던 지인들의 얼굴이 아카시 꽃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나 한없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200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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