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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상봉/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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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96회 작성일 09-06-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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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상봉 전주안골노인 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야, 너 그쪽으로 가면 안돼! 이리 와.” 호루라기를 불면서 손짓 몸짓 다하며 쫒아가면 갈수록 이리저리 도망가고 잡힐 듯하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하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겨우 잡았다. “너, 이 녀석 몇 반이야?” 그래도 대답도 하지 않고 도망치려는 아이를 성질 급한 박 선생님이 붙잡아 뺨을 찰싹 갈겼다. 꼬마는 울음을 터트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건장한 젊은 분이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박 선생의 멱살을 움켜쥐고 막 주먹이 올라가려는 찰나였다. 동행했던 선생님들이 쫒아가서 뜯어 말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사죄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1969년 10월 1일, 정읍동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서 인산인해였던 여의도 광장에서 펼쳐진 국군의 날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학생을 인솔하려고 학생 수를 헤아려보니 551명중 13명의 학생이 모자랏다. 놀라서 모두 찾아 나섰는데 학생들에게 노랑 모자를 씌운 덕택에 11명은 쉽게 찾았는데 두 명을 찾아 헤매다가 노랑모자를 쓴 어린이를 발견했으나, 그 아이들이 도망을 다녀서 생긴 사연이었다. 찾아 나선 선생님이나 길을 잃은 학생이나 가슴을 졸이고, 겁도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같으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던지 공중전화라도 이용하련만,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틈에서 어린이를 찾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학생을 미아로 만들어 놓으면 고향 집과 학교에도 비상이 걸린다. 찾다 찾다 못 찾으면 혹시 집으로 전화라도 했나, 학교로 연락이라도 했나하고 연락하면 그 곳에서도 애가 탄다. 한 번은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고자 밤 열차를 전세 내어 서울 고궁과 창경원을 갔는데, 떠나기 전부터 들 떠있던 아이들은 인솔교사의 호령도 잠깐, 밤새워 떠들고 노래하고 춤까지 추며 흥겹게 놀다가 새벽에야 끝냈다. 서울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대절 시내버스에 타자마자 졸기시작 하거나, 기대고 눕고 하다가 졸지에는 코고는 애들도 있어 운전기사 보기에도 민망했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자 졸음에 취한 학생들을 업거나 부축해서 내리니, 이를 본 사람들은 무슨 사고가 났느냐고 몰려들어 구경꾼이 몰려드니 어이하랴. 시내 명승지를 걸어서 구경하다 보면 여행이 처음인 시골학생들은 모처럼의 긴 여행이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 모든 것이 신기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보면, 인솔교사가 잠깐 방심한 틈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글쎄 어쨌다고 첨성대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느냐?” 경주에 수학여행 갔을 때 학생 2명을 미아로 만들어 곤혹을 치렀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학생들은 여관으로 보내고 선생님 몇 분이 남아서 찾다가, 혹시나 해서 첨성대 속을 보니 그 속에서 쪼그리고 잠든 학생을 찾을 수 있었다. 밤새 잠을 안자고 떠들더니, 하필이면 그 첨성대 속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알고 보니 쉬는 시간에 숨바꼭질을 하다가 그 첨성대 속에 숨은 줄 모르고 찾지 않은 채 집합 소리에 모였던 것이란다. 당시에는 첨성대 석굴암 다보탑 등 문화재 관리가 엉망이라 여행객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리고 심지어 낙서도 하며,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던 시대였다. 한 학생은 재래식 변소에서 고무신을 빠트려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것을 찾아 데리고 왔다. 그 귀한 검정 고무신을 끄집어내어 깨끗이 씻고 씻어, 물속에 담가 놓았다가 말려서 신겨준 일도 있었다. 선생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하태평으로 국보 첨성대 속에서 꿈을 꾸던 그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깝다고는 해도 일본 땅에서도 미아가 있었다. 전주남초등학교 졸업생 중 일본방송국의 전속 연예인으로 활동 중인 K양이 모교를 방문하고, 일본방송국의 배려로 학생 학부모 교원 100명을 초청하여 견학과 게임, 관광을 주선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사연 많은 소변 때문에 수많은 인파 속 ‘나리따’ 국제공항에서 일행을 잃고 미아가 된 문영민, 그 애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당황하고 놀라고 두렵고 30초 간의 화장실 행이 이럴 줄이야……, 3-4시간을 찾아다니고 공항방송으로 수소문해보니, 숙박할 호텔에 먼저 가 있지 무언가?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를 미리 알려줘 놓고도 왜 그 생각은 못하고 찾기만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는 애가 탔지만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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