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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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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7회 작성일 10-06-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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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명 희 우리 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중천 천변산책로에 이른다. 나는 걷기 운동을 하느라 이곳을 자주 지나간다. 오른쪽에는 우아동 성당이 있고 왼쪽엔 노인요양병원이 있는데 두 곳을 경계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병원 정원에 놓여있는 여러 개의 벤치에는 이른 봄부터 한두 명의 노인이 나오더니 요즘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여러분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 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내가 오가며 인사를 하면 활짝 웃으며 반가워하신다. 그런데 가끔 홀로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본다. 머지않아 내 앞에 다가올 나의 자화상이다. 줄기차게 내뿜는 담배 연기는 안개처럼 금방 형상을 나타내다가 이내 사라지곤 한다. 무엇을 생각하느라 저렇게 골똘히 애꿎은 담배만 피우실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에서 지난날의 수많은 사연들과 마음속 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의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것일까? 어려서 부모 밑에서 꽁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던 가난했던 그 시절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일까? 아니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한 포화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일까? 아버지의 권유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람과 천생배필로 만나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뤘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오로지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의 꿈조차 자식들을 위한 희망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노인의 머릿속에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했어도 옹기종기 밥상머리에 앉아서 재롱을 피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역력하다. 그때 그 시절, 두 어깨에 무거운 짊을 지고 쉼 없이 달려와야만 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어느새 일그러진 형상의 얼굴과 이마에는 골이 깊게 패어 훈장처럼 보인다. 노인은 인생의 긴 여로를 지나다가 문득 거울 앞에서 백발이 성성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고 밤잠을 못 이루며 그 시절을 필름처럼 스쳐갈 상상을 해본다. 유일하게 청춘남녀가 사귈 수 있는 흥미로운 만남의 가교역할을 해준 펜팔, 그것은 그 시대의 독특한 문화였다. 젊음의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오묘하고, 낭만이 흐르는 시대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섹스폰소리가 은은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어가며 애수에 젖어 뜻 모를 그리움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었다. 부모님 몰래 이불속에서 들었었다. 밤마다 뒤척이며 좋은 책을 다 뒤져 아름다운 글귀만 찾아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예쁜 편지지에 듬뿍 사랑의 밀어만을 담아냈었다. 친구의 편지를 열심히 대필해줬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친구를 만났더니 펜팔로 인하여 그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즐겁고 아를다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 아, 청춘은 아름다워라! 상상 속에서 어느새 노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훌쩍 어른이 되어 힘들고 험난한 생활전선에 나섰으리라. '일장춘몽(一場春夢)' 실로 인생은 한바탕 봄꿈과 같이 헛된 일이다. 그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인생은 말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그 노인은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찾아보고자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에서 희미한 옛 생각에 젖어 빛바랜 추억의 산책로를 걷고 있을 것이다. 잠결에 스쳐가는 꿈처럼 수많은 날들이, 세월의 긴 갈피 사이로 ‘희, 로, 애, 락’의 터널을 지나며 천천히 달려온 인생의 종착역, 석양의 강가에서 서성이며 강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종교를 하나쯤 갖는 게 좋다고 한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믿음생활은 노년에 꼭 필요하다. 아마 그분들도 성당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지 않을까? 파란만장한 인생의 뒤안길에서 홀로 가야하는 그 길이 몹시 초조하고 불안할 것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한 번은 거쳐 가는 길이기에, '죽음을 맞이해서'란 학교가 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나의 유언장을 미리 미리 써본다고도 한다. 그리고 사전 의료지침서를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 놓는다고도 한다. 사진도 본인 스스로 없애라고 한다. 한 번쯤 고민해 볼 일이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하루에도 몇 번씩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고통을 보면서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고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일이다. 나도 조금씩 마음의 짐, 주변의 짐을 줄여 나가야 할 것 같다. 역발상으로 생각해 보자.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 부터”로 생각을 바꿔 보면 회색빛이 청명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리라. (2010 . 6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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