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3꿍 정신/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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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3꿍 정신
-베트남 견문기(1)-
김 학
호치민을 나라의 아버지로 여기는 베트남을 찾았다.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서 5시간 반쯤 날아가니 베트남의 호치민공항에 닿았다. 호치민은 통일 전 월남 수도 사이공의 새 이름이다. 베트남이 통일되자 국부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호치민시로 개명한 것이고, 지금은 베트남의 경제수도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2시간이라기에 우선 손목시계부터 조정한 뒤 출국신고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서니 후텁지근하고 눅눅하여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베트남! 나로서는 처음 밟아본 땅이다. 그러나 40여 년 전 내 동생이 월남전에 참전하였기에 이 나라에 관심을 가졌다. 분단 베트남이 통일되고 우리나라와 국교가 트인 뒤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드나들었지만 나는 이 나라를 찾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베트남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눈여겨보았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주석이 생전에 우리나라 조선의 정조 때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늘 머리맡에 두고 탐독했고, 피신할 때도 몸에 지니고 다녔으며, 죽은 뒤 관속에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저 반신반의했었다. 호치민 주석이 다산 정약용을 가장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긴가민가했었다. 호치민 주석이 다산의 기일(忌日)에 꼭 제사를 모실만큼 다산을 평생의 사표(師表)로 삼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절로 어깨가 으쓱거려지면서도 한자로 쓴 《牧民心書》를 호치민이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나 베트남은 같은 한자문화권이 아니던가? 호치민 주석 역시 어려서부터 한자를 배웠을 테니 능히 《목민심서》를 읽을 수 있었으려니 싶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13세기 초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고려 고종 때 베트남에 쩐 왕조가 들어서자 멸망한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고려에 귀화하여 화산군이라는 봉작을 받고, 화산 이 씨로 살았다지 않던가? 화산 이 씨 외에도 리즈엉꼰(이양혼)을 시조로 하는 강원도 정선 이 씨 역시 베트남 귀화인이라고 한다.
또 13~14세기경에 고려시대 추적이 편찬한 《명심보감(明心寶鑑)》이 베트남에 전해져 《밍떰바오지암》이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베트남의 유학자들에게 읽혀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196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 교수가 사이공을 방문했을 때 현대 베트남어판 《명심보감》을 발견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베트남 학자들의 교류는 13세기보다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두 나라 학자들은 중국에서 만나 필담(筆談)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두 나라 모두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했으니 대화는 나눌 수 없어도 필담으로 의사전달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게 아닌가?
15세기에는 조선의 사신이었던 조신과 후기 레(Le)왕조(1428~1524)의 사신이었던 레티꺼(Le Thi Cu)가 만나기도 했었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는 조신이 연경에서 베트남 사신 레티꺼와 한문으로 된 시를 주고받으며 필담을 나누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598년 조선 실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이수광과 후기 레 왕조의 사신 풍칵콴이 연경에서 만나 필담을 주고받았는데 이 때 이수광은 풍칵콴이 명나라 신종(神宗)에게 바치는 《만수경하시집(萬壽慶賀詩集)》의 서문도 써주었다고 전한다. 얼마나 정겨운 인간관계인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약 800여 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함께 산다 (꿍아)
함께 먹는다(꿍안)
함께 일한다(꿍땀)
이 세 가지 정신이 이른바 호치민 주석의 '3꿍 정신'이다. 호치민은 비록 주석이란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혼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언제나 국민과 더불어 살고, 함께 먹으며, 같이 일한다는 3꿍 정신을 가지고 청빈한 삶을 살며 민본주의를 몸소 실천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호치민 주석의 이 3꿍 정신은 바로 벼슬아치는 애민정신에 입각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목민심서》의 민본주의 정신과 통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학자이면서 뛰어난 문장가인 다산 정약용의 정신이 바다 건너 베트남까지 전파된 것을 보니 흐뭇하기 짝이 없다. 사회주의공화국인 베트남이 오히려 가까운 핏줄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불과 162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단신인 그는 1969년에 눈을 감았지만 지금도 관공서는 물론 식당이나 상가마다 그의 사진을 붙여놓고 경배를 한다. 오뚝한 코, 긴 턱수염, 가냘픈 몸매의 호치민은 죽어서도 베트남 국민을 보살피고 있는 듯하다.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죽은 뒤에도 온 국민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호치민, 그는 베트남 사람들에겐 분명 분단 베트남을 통일시킨 구국의 영웅이요 불멸의 민족지도자다. 우리에게도 이런 선각자가 있었던가, 아니면 앞으로 곧 나타날 것인가?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등 수필집 10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멋 수필의 맛/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전북문화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게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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