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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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
한일신
산에는 서로 다른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루고, 그 숲에서 새들은 노래하며 바람도 쉬어간다. 나 또한 초록의 물결 속에 한 마리 싱싱한 갯붕어처럼 마음껏 헤엄치며 그들과 하나 되어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연다.
6월 첫날, 5월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아침 일찍 감잎을 따서 감잎차를 만들려고 완주군 죽림으로 향했다. 감잎 채취시간은 태양광선이 가장 강한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가 좋다기에 그 시간을 맞추었다. 밭에 들어서자마자 매화나무에 다닥다닥 붙은 매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곳에 매화나무를 심은 지는 지금부터 7~8년 전이다. 애초 100주를 심었는데 그동안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인지 지금은 20여 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재래종이라 알맹이가 너무 작아서 한 일주일쯤 지나서 따기로 하고 감잎만 따가지고 왔다.
달력을 보니 매실을 보고 온 지가 열흘이 넘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서 부랴부랴 죽림으로 갔다. 밭이 가까워지자 웬 승용차 한 대가 우리 밭 옆에 주차되어 있는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밭에 들어가 둘러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매실이 통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허탈하고 속이 상해서 감나무 밑에 풀썩 주저앉아 있는데 밭 저쪽에서 어떤 남자 한 분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분을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여 “내가 땅주인인데 오늘 매실을 따러 왔더니 매실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차된 차를 가리키며 “저 차 주인이 혹시 선생님이 아니세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더니, 낮은 목소리로 “그렇다.”라고 하면서 매실은 이틀 전에 따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술을 담갔으니 반을 주겠다고 했다. 이를 어쩌랴! 처음엔 부글부글 속이 끓어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해마다 없어진 감과 매실 값을 몽땅 다 물리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그분을 대하고 나니 금세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그분이 따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내 마음 앓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 그분이 직접 따갔다며 사과를 하니까 오히려 내 마음이 홀가분하고 개운해졌다. 잠깐 사이지만 서로가 마음을 트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무언가 지저분한 찌꺼기 같은 것이 맑게 정화된 것 같았다. 그분은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칠순이 넘은 백 선생님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우리 밭 관리인한테 밭 한쪽을 얻어 올해 처음으로 강냉이며 수박 등을 심어놓고 취미 삼아 가꾼다는 것이었다. 나는 백 선생님께 수고가 많으시겠다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면서 인적사항을 주고받았다.
밭을 한 바퀴 돌며 매화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칡넝쿨과 박넝쿨 등을 낫과 톱으로 잘라내고 잡초도 제거했더니 땀방울이 등을 타고 내려와 옷을 흥건히 적셨다. 밭 경계 부근에 다다르자 이게 웬일인가. 전혀 손을 타지 않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탱탱한 청 매실을 주렁주렁 달고서 나를 반기지 않는가. 고마웠다. 이 얼마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는 마치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듯 매실을 정신없이 따서 배낭에 담았다. 차츰 배낭의 몸통이 부풀어 오를수록 땀 흘린 보람과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산에 서 있는 나무도 서로가 모여 끌어안고 숲을 이룰 때 폭풍을 막으며 쉼터를 만들어주지 않던가. 음악도 낮은음과 높은음이 잘 어울려야 아름다운 화음이 되고, 그림도 색깔이나 모양이 서로서로 잘 어울려야 그림을 살리듯, 우리 사회도 함께 나누고 서로 어우러질 때 더 밝고 건강한 세상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 밭에서 매실을 따간 백 선생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매실을 따갔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더 미안해하던 모습이 멋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인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모두가 서로서로 엉키고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것. 앞으로도 백 선생님이 우리 밭을 다니며 오래오래 건강을 지켜서 더 많은 매실을 따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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