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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바친 처칠의 피와 땀과 눈물/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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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1회 작성일 10-05-31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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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바친 처칠의 피와 땀과 눈물 -영국 견문기(3)-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명 수상 윈스턴 처칠(Churchill Winston)은 영국이 나은 위대한 정치가요, 문학가이며 화가였다.처칠은 1874년 11월 30일 옥스퍼드셔 우두스톡 블레넘궁에서 태어났다. 샌드러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스물여섯 살 때 하원의원이 되어 육군장관과 해군장관, 식민장관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수상으로 재임하면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합의하여 대서양헌장을 발표하였다. 또한 카이로회담과 포츠담회담을 열어 힘을 모으고 미국, 소련과 연합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세계평화에 이바지했다. 그는 1940년 5월 13일 신임 수상으로서 의회에 나가 최초로 행한 연설 가운데 “나는 영국 국민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다.”는 명연설로 전원일치의 신임투표를 얻었다. 여러분이 저에게 정책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저는 신이 베풀어 준 모든 힘을 모아 평화를 파괴하는 적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제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승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쳐 얻는 승리 없이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항상 시가를 물고 얼굴 가득히 밝은 미소를 띠고 두 손가락으로 승리를 다짐하는 브이(V)자를 그리며 대중 앞에 섰던 처칠은 인생 전체를 승리로 이끌어온 위인이다. 그가 옥스퍼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는 많은 청중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연단에 올라가 힘 있는 목소리로 “포기하지 말라.” 처칠은 다시 한 번 짧고 굵게 강조 하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이것이 그날의 축사 전문이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수상이요, 문학가로서의 철학적인 연설이었다. 어느 날 의회시간에 왜 자주 지참하느냐고 묻는 의원에게 "당신도 나처럼 미인과 살면 그렇게 될 거야!"라고 호탕스럽게 웃어넘기면서 일사천리로 회의를 잘 마쳤다고 한다. 처칠은 이와 같이 많은 일화와 명언을 남긴 정치가였으며 1953년에발간한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장가였다. 처칠의 자택인 블레넘궁(Blenheim palacic)은 말버러 공작의 저택이다. 300여 년 전 제1대 말버러 공작에게 많은 전공을 기리기 위해 당시 앤 여왕이 큰 저택을 지어 하사하였단다. 블레넘은 말버러 공작이 승리를 거둔 전쟁터의 이름이다. 그 뒤 처칠 가문의 맏아들들은 대를 이어 공작의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살아왔다. 바로크 양식의 석조 건물로서 존 베브루가 설계한 건축물로 유럽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1987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여 개에 달하하는 주랑식 현관을 가진 이 건물은 실로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화롭다. 건축물이나 정원의 규모가 워낙 큰 궁전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탄복케 한다. 지금11대 말버러 공작인 “죤 스팬서 처칠”공이 살고 있는데 세계 부자 순위가 224위라고 한다.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멋지고 아름다운 성이다.성안 1층에는 처칠 박물관이 있는데 그가 유년시절에 친필로 쓴 편지와 즐겨 읽던 책, 사진,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에는 처칠이 태어난 방인데 침대와 함께 처칠이 입었던 베냇저고리까지 전시되어 실감이 났다. 말버러 가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에는 이 궁전이 지어진 이래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는 시계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미인들만 그렸다는 여러 초상화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방에 전시된 유품으로 시계나 가구, 촛대, 그림 등이 너무나도 잘 보존 되어 있었다. 아주 값진 보물이라고 한다. 1층 끝에는 또 어마어마한 도서관이 있고 천장에 닿을 것 같은 오르간도 전시되어 있다. 성 안에는 조그마한 교회와 극장이 있어 그 안에서 사회생활을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현관을 나와 다시 2층에 오르면 말버러 가문의 역사를 관찰할 수 있는 방이 연이어 있다. 방마다 단계별로 설명해주는 영상과 어깨를 들먹이며 손발을 움직이는 커다란 인형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의미가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정원을 거닐면서 계절의 향기를 맛보았다. 호수와 분수대가 있고 멀리 평화로운 낚시터도 보였다. 아름다운 조각상과 수선화, 튤립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들이 마냥 향기로웠다. 궁전 앞에 있는 호수와 다리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윈스턴 처칠은 뛰어난 천재가 아니었다. 사관학교 입학시험에도 두 번이나 떨어지고 세 번째에야 겨우 합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타고난 추진력과 끈기가 있었다. 투철한 정치신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처칠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 준다. 윌슨 수상이 말한 것처럼 그는 자기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간 위대한 인물이었다. (20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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