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는 아직도 숨쉬고 있다/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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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는(Pompeii) 아직도 숨쉬고 있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폼페이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했었다. 지금은 내륙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베수비오화산의 남동쪽, 사루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한 도시였으며, 제정 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들어선 화려한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멸망했던 폼페이의 유적들이 19세기에 발굴되었다. 드러난 유적들은 고대 그리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2.500여 년 전의 역사가 화산분화로 낙진개스와 용암에 묻혀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 화려한 발자취와 환상적인 환락의 거리가 신의 노여움으로 화염 속에서 멸망해 버린 것이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발견한 폼페이는 현재 5분의 2정도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폼페이의 유적을 스카비(Scavi)라고 부른다. 유적지의 입구는 마리나 문(Porta Marina)으로, 당시 마을에서 항구로 통하던 길의 성문이다. 이 부근에는 폼페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바실리카, 아폴로신전, 주피터신전 등이 있다. 중앙광장인 포로(Foro)에는 도리아식 원주가 서 있고, 포로 왼쪽으로 돌아나가서 마첼룸을 지나면 주요 건물 유적들이 있다. 파우니의 집, 큐피드의 집 등 당시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 조각 등은 나폴리 북쪽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성문 입구에 있는 우람한 기둥과 미라로 굳어진 다양한 화석 그리고 생활 용품으로 사용했던 토기 등은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유적들이다. 직선으로 난 도로나 계단식 도시계획이 현대의 도시를 무색케 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일된 144.5sm의 철도 넓이가 그 당시 이 곳에 쌍두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노폭을 만든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과연 폼페이 문화는 지금도 살아 철길 네루 위를 달리고 있는 성싶다. 인도와 차도가 바르게 정돈되었으며 상하수도까지 설비되어 있다. 공중목욕탕에는 남녀 냉 온탕이 구분되어 있고 탈의실은 물론 천정에 김이 서려도 직접 사람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를 했다고 한다.
식빵을 제조하던 시설과 홍등가를 찾아 술잔을 기울이던 상가와 사창가를 상상할 수 있는 상징물과 충동적인 벽화가 사방에 걸려 있다. 역시 인생의 최고 유토피아는 성이 아닌가 싶다.
그 거대한 출입문 기둥과 담장 벽이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역사의 무덤이 재생되었다는데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술미를 갖춘 술병이나 항아리를 비롯한 생활 도구와 함께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미라가 화석이 되어 지금도 무엇인가 깊은 잠 속에 숨어있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미라, 팔을 베고 옆으로 잠을 자는 여인의 모습으로 굳어진 화석이 우리와 역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다.
‘로마는 세계로 세계는 로마로!’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 문화를 이어받아 6.000여 년의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던 큰 정원이다. 그렇게 화려하던 오랜 무덤을 헤치고 다시금 부활의 꿈을 재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만방의 모든 인류가 이 폐허가 된 무덤을 파헤쳐 무궁한 로마의 역사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 옛날 로마의 중심지요, 상업도시로서 귀족들의 휴양지였던 이 땅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관광객들이 이 무덤의 도시를 황금 밭으로 되살려주고 있지 않은가? 폼페이는 멸망했다 해도 결코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20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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