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속삭이는 보리밭/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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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속삭이는 보리밭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넓은 청보리밭이 한 눈에 들어왔다. 30만 평의 청보리밭이 초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싱그러움과 풋풋함이 맑은 하늘과 더불어 잘 어울렸다. 보리목이 쫑긋쫑긋 동양란 꽃대처럼 올라왔다. 스치는 바람에 소곤소곤 속삭이며 보리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솔솔 부는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보리 안 팬 3월이 없다’는 옛말처럼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때를 어김없이 맞춰 잘 자랐다. 광활한 보리밭을 보니 배가 부르다. 보릿고개 시절엔 우리를 연명케 해 준 생명의 보리다. 보리밭이 곱디고운 잔디밭처럼 가꿔져 눈길을 끄는 멋진 관광단지로 변신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초록빛 보리밭 사이 길로 조잘대며 걷는 모습이 귀여웠다. 청보리밭축제라 하여 보리개떡 만들기, 재래식 보리된장 만들기 등 농촌체험이벤트를 꾸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고, 보리밭 사이 길을 따라 자연과 함께하는 인파들이 많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보리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자라는가를 직접 눈으로 보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넓은 보리밭을 바라보니 옛날이 떠올랐다. 고향친구 복순이네 집은 가난하게 살았었다. 홀어머니와 언니, 오빠 6식구의 보릿고개는 언제나 넘기 힘든 고개였다. 미처 보리가 익기도 전에 양식이 떨어져 풋보리를 베어다가 삶아서 비벼말려 보리죽을 끓여 먹었다.
겨울 양식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을 눈앞에 둔 초여름을 나기가 어려워 보릿고개라 했다. 일제 강점기 때 힘들게 농사를 지은 벼는 왜놈들이 강압적인 공출로 다 빼앗아 갔다. 피와 땀으로 가꾼 쌀을 빼앗기고 한숨으로 낙담하시던 부모님이 어렴풋이 기억된다. 왜놈 탓에 보리밥을 먹고 살았다. 보리는 쌀이나 현미보다 섬유질이 많고 소화가 잘 되는 저칼로리 다이어트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보리밥을 많이 먹던 그때는 지금처럼 뚱뚱하여 비만인 사람도 없었다.
보리는 병충해에 강하여 벼처럼 농약을 하지 않는다.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우내 강추위를 이기고 파릇파릇 돋아나면 뿌리가 뜨지 않고 웃자라지 않게 공무원들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자근자근 밟아주었다. 해충들이 잠자는 겨울에 자란 탓으로 무 농약, 무공해 식품인가 보다. 종류도 다양하여 쌀보리, 청보리, 찰보리, 겉보리 등이 있다. 옛날에는 찰 보리가 없었다. 찰 보리밥은 찰지고 맛이 있어 쌀밥 못지않았다. 떡, 빵, 고추장, 된장 등 다양하게 쓰이는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겉보리는 엿기름을 길러 우리가 즐겨먹는 식혜와 엿을 만드는 주재료이다. 광활한 농지에 심은 청보리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용도로 활용하여 부가 가치를 높이는지 궁금하다.
우리 식생활의 애환을 함께한 보리를 잊을 수가 없다. 보리밥에 물려 보기도 싫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웰빙식품이라 하여 선호하는 이도 많다. 잡곡이 건강식품이라 하여 흰쌀밥의 우대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요즘은 부자들이 잡곡밥을 먹는다. 양지가 음지로 바뀐 세상이 되었다. 보리밥전문식당이 생겨났고, 된장과 보리밥을 찾는 어른들은 향수에 젖어 먹는다. 넓은 보리밭을 보니 배고팠던 시절이 떠올라 많은 수확을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엔 식품이기 전에 즐기는 관광이벤트로 홍보효과를 노리는 시대가 아닌가. 음식문화가 발달하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식품으로 가공되어 좋은 음식으로 식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넓게 펼쳐진 청보리 밭이, 맘과 몸과 눈으로 즐기는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사랑받는 보리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속삭이듯 한들거리고 있다.
(2010.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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