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감기, 그 불청객/장지연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감기, 그 불청객/장지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1회 작성일 10-04-21 14:00

본문

감기, 그 불청객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섣달 스무날 철통같은 수비를 뚫고 바람처럼 숨어들었다. 잠복 삼일 후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리게, 차츰 속도를 내며 거대한 육신을 야금야금 파고들었다. 설날이 코앞인데 눈치코치도 없는 불청객 때문에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콧물은 방바닥을 뒹굴고 천정엔 재채기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얼른 털어버리려고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확 풀어 훌쩍 마셨지만, 기척도 안하는 것이 단단히 둥지를 튼 모양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감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리는데, 어쩌다 또 발목이 잡혀버렸는지 모르겠다. 두통에 고열까지 동반하여 입맛을 뚝 끊어 보급로를 차단하더니, 밤이면 더욱 강도를 높여 삭신을 허물어뜨리려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린다. 이불속에서 끙끙 앓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올겨울 잘 넘기나 했더니 쯪쯪, 그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한 판 붙어봐! 검도 검정띠가 감기한테도 못 이겨? 한 번 후려치면 도망갈 텐데” 하며 일으키려 했지만, 한 방 두들겨 맞은 것마냥 전신이 아프고 후들거렸다. 온 세계가 신종플루 확산으로 아우성이고, 우리나라도 비상이 걸렸다.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에서 '경계단계'로 선포되고, 학생들의 집단감염이 우려되어 조기 방학을 하였다. 하필이면 이럴 적에,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았더니 다행히 감기라고 하였다. 노인은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라며 만성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편히 쉬라며 링거를 팔뚝에 꽂았다. 구원병과 독감바이러스의 싸움이 시작되었을까? 천정을 바라보니 형광등이 빙글빙글 스키를 타고 있어 눈을 꼬옥 감았다. 아직은 그린 홀인 줄 알았는데, 서리 맞은 가랑잎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겨루어 이길 장사 없다고 했던가. 울컥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구름 사이로 눈썹달이 살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밥이 보약이야, 감기에는 많이 먹어야 이기는것이여, 어서 먹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엄마!” 눈을 치켜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든 먹고 정신을 차려야지, 오랜만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과 함께 식당에 들러 생태탕을 시켰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땀을 흘리며 먹고 나니, 축 처진 눈꼬리가 반달이 되었다. “이제 고놈의 감기 도망갔겠지!” 그러나 자고나니 침이 넘어가지 않았다. 목이 아프고 머리는 불덩이 같아 병원을 찾았더니 편도선이 부었다고 하였다. 따뜻한 음식보다 찬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팥빙수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설을 지나도 꿈쩍하지 않는 녀석을 안고 다니다, 아래층 할머니를 만났다. “새댁 감기 들었구먼? 올 감기 지독혀어, 나 한 달이나 고생했어, 피 쪽 빨아먹고도 붙어있는 거머리같이 징하당깨.” 거머리같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까마득한 세월 저쪽의 모내기 들녘이 떠올랐다. 모심기철이면 불청객인 빨간 실거머리와 시커먼 왕거머리, 그리고 물뱀이 논마다 둥둥 헤엄쳐 다녔다. 동생들과 나는 모를 심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모를 날랐다. 쉴 새 없이 다녔는데도 어느새 다리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이 거머리ㅘ 피를 나눈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쩐디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드나무에서는 매미들이 축가를 부르고 있는데, 떨어질 줄 모르는 거머리는 통실통실 배가 부풀어 올랐다. 한참 째려보다 손바닥을 하늘높이 쳐들었다가 ‘탁’ 치면 주둥이는 그대로 처박고 몸만 약간 오므린다. 이때 잽싸게 손톱을 세워 사정없이 낚아채면 떨어진다. 그놈이 떨어진 자리는 피가 펑펑 흘러내렸다. 괘씸한 놈! 실버들가지를 꺾어다 헤엄쳐 다니는 거머리 앞에다 대니 넙죽 올라탔다. 한 놈 두 놈 막걸리 주전자에 담았다가 얼큰하게 술에 취하면 신작로에 일렬로 뉘여 한여름 땡볕에 일광욕을 시켰다. 밟아도 밟아도 발끝을 간질이지 않을 때까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 논에서도 거머리는 사라져 버리고, 이제 귀하신 몸이 되어 의료용으로 수입해 온다고 한다. 거머리 침 속에는 마취성분과 굳은 피를 용해시키며 피를 굳지 않게 하는 ‘히루딘’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고혈압과 뇌졸중, 관절염, 어혈제거에 활용한다.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빨게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거머리는 이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예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감기야! 너도 거머리처럼 네 이미지를 좀 바꿔보면 어떻겠니? 이왕에 오려거든 면역력을 길러주는 바이러스로 오면 얼마나 환영 받겠니? 그럼 너에게 항생제를 투입하지도 않고 편히 머물다 가게 해 줄 텐데. 감기야, 너도 이제 불청객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다가오도록 노력하렴. “응?” (2010.4.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