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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꺾이/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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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8회 작성일 10-04-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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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꺾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유기농 친환경농산품이 빛을 보기 시작한지는 꽤나 오래 되었다. 산업의 발전으로 공기, 토양, 각종 곡류, 식품첨가물 등의 오염과 공해 때문이다. 자연그대로의 환경에서 금비와 농약 없이 가꾼 농작물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주로 주문생산으로 판매하니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서만 이 농산품을 소비하기 마련이다. 일반서민들은 감히 손도 못 댈 정도로 높은 가격에 팔리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농산품은 오염된 토양에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반면에 일반 농작물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농업도 차츰 옛날 농법으로 되돌아가야할 것 같다. 오직 생산고를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를 쓰고, 병충해방제에는 각종 농약을 살포한 결과 토양은 산성화되고 오염돼 흔했던 메뚜기와 개구리, 미꾸라지 등이 사라질 정도로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생태계가 파괴되니 병충해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그만큼 농약 사용량도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메뚜기를 구워먹고 논고랑 봇도랑을 막아 잡은 추어탕 생각이 간절하나 이는 옛일이 되어버렸다. 농경시대를 거처 산업화시대에 접어들자 값비싼 노동력을 피해 편리한 금비에 의존하여 편하게 농사를 짓다보니 생긴 병폐다. 한국전쟁 이전만 해도 화학비료는 값이 비싸고 희귀하니 주로 유기질 거름(퇴비, 녹비, 농작 부산물, 가축분뇨, 인분 등)으로 농사를 지어야 했고, 틈틈이 녹비와 퇴비증산에 힘을 기울였었다. 돌이켜보면 보통학교(1939)때 비록 1학년이었지만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고 풀을 꼴망태에 가득 채워서 메고 등교를 해야만 했었다. 식민지시대라 근로, 단련, 정신을 기르기 위해 마을 통학단별로 퇴비증산경쟁을 붙였었다. 착취를 위해서는 새로운 논밭을 개간하고, 공한지가 없이 농작을 권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토가 비옥해야하기 때문에 강제로 자운영(녹비재료)재배를 강요하기도 했었다. 농민들은 마당 한 번 쓸면 거름이 한 소쿠리라 했다. 심지어 대소변마저 남의 집에서 함부로 보지 않았다. 골목안의 개똥이나 소똥, 말똥은 물론 길가의 짚 부스러기 하나까지 모두 주워갔었다. 제 배설물(똥)을 삼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도 있었다. 내 어릴 적 이웃에 넉넉했던 부자 노인께서는 출입 때면 꼭 지푸라기든, 새끼토막이든 빈손으로 귀가하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거름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연중 농가의 모든 가족들이 거름재료를 마련해도 그것만으로 농사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철이 되면 녹비와 퇴비를 찾아 풀베기에 나섰다. 광복 후 한때 고향에서 산 적이 있었다. 봄이 되어 처음 시작한 것이 못자리용 풀꺾이다. 지금과 같은 비료가 없으니 퇴비를 한다지만 보리를 간 논밭의 풀을 매거나 아주 연한 풀을 베어 썩혀서 거름으로 사용했었다. 모판이 설치되고 본답 논갈이가 끝나면 논고랑에 인분을 뿌리거나 녹비를 사용했다. 나도 마을 풀꾼들과 같이 날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전 오후 한 짐씩 먼 산골 풀을 뜯어다 논고랑에 깔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은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지게질을 했기에 풀 짐을 여러 번 부리는 등 고생이 많았다. 동네 장정들은 풍성한 가을추수를 바라고 봄 한 철, 모내기 직전까지 녹비를 마련하고자 풀을 깎았다. 모내기가 끝나 1개월쯤 되면 녹비의 효과인 풀발(풀 꼴)이 나타났다. 마을 앞 정자에서 쉬면서 바라보면 녹비를 고르게 잘 깔지 못한 논에는 짙은 청 녹색 풀발의 골이 선명했었다. 농가에서 소나 돼지 등 가축을 기르는 것도 목적을 알고 보면 돈보다도 농작에 필요한 퇴비를 만들려는 일이었고 부수입으로 취급했었다. 이제는 축산이 전업(專業)으로 변해 분비물처리와 그 환경정화에 많은 돈을 들여야 하니 축산업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나타나 격세지감이 든다. 한때 일본농촌(滋賀縣 長野郡)에서 여러 달 동안 피난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 농촌은 추수가 끝난 볏짚이 모두 퇴비가 되어 다시 농작에 쓰였다. 당시 우리 농가의 볏짚은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으로 올라갔었다. 한편 녹비와 퇴비 마련도 하지만 농촌 들녘 곳곳에 분뇨를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다. 농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인분을 저장 숙성시켜서 농작물에 시비(施肥)를 한다고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숙성정도를 간장 맛보듯 하고 알맞게 물에 풀어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산물(정어리, 고등어, 꽁치 등)의 기름을 짜고 난 부산물도 어비(魚肥)로 만들어 농작물비배관리에 쓰고 있었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들은 목숨을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를 어기고 욕심을 부려 균형이 깨지면 자연의 재앙이 오게 마련이다. 그간의 농작은 녹비나 퇴비보다 과도한 금비에 다수확을 꾀해 돌려준 것이 없었으니 환경이 파괴되고 농약잔류란 재앙을 받은 것이다. 친환경농업이란 이 균형을 되찾자는 것이다. 순 유기질(퇴비, 녹비, 농부산물, 인축배설물, 어비 등)거름만으로 농작을 한다면 환경이 되살아나 병충해 없는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무기질비료와 농약들이 사라진다는 농법이다. 녹비와 퇴비 등 유기질 거름은 땅의 힘을 되살리는 지름길이다. 풀꺾이와 퇴비 만들기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드니 3D산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힘이 들겠지만 협동하고 노력하여 새 농어촌 어메니티(Amenity)운동에 동참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친환경유기농이 일반화된다면 다 같이 차별 없는 농산품 대접을 받을 날이 다가올 게 아니겠는가? (2010. 3. 30.) * 녹비(綠肥).......초목 잎의 거름, 풀 거름(草肥). * 금비(金肥).......돈으로 산 비료, 즉 무기질비료, 화학비료. * 어비(魚肥).......정어리, 고등어, 꽁초, 등을 기름을 짜고 난 고기류를 거름으로 쓰다. * 자운영(紫雲英)......단기간 재배해서 녹비로 쓸 수 있는 농작 초비식물. * 어메니티(Amenity)운동.......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가지가지의 일, 즐겁고 쾌적한 농촌다운 건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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