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聽無聲/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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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41회 작성일 10-03-1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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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무성(聽無聲)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斗溪 김세명 우리 집에는 오래된 ‘聽無聲'이란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작촌 조병희 선생님이 90세 때에 나에게 써 주신 초서의 한문글씨다. 보면 볼수록 글씨가 매력적이다. 1990년대 중반쯤 날마다 데모 때무에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농민회와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전주 관통로 네거리는 시국 데모로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하신 경찰청장께서 전주의 어른을 찾아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셨다. 아동문학가 조규화 씨와 상의한 결과 작촌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당시 작촌 선생님은 선비정신이 투철하신 시대의 어른이셨다. 선생님 댁은 다가동 천변에서 안쪽 골목에 살고 계셨다. 정원에는 백년은 됨직한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고, 그만그만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작촌 선생님은 행랑채에서 지필묵과 더불어 즐기고 계셨다. 규화 형이 인사를 시켜 큰절을 올렸다. 청장님이 부임 하시어 인사차 찾아뵈려고 하신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시국의 시끄러움을 아시고 일필휘지하여 초서체로 ‘聽無聲'을 써 주셨다. 뜻을 물어 보니 소리가 나면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니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당시 두 장을 써 주셨는데 한 장은 청장에게 한 장은 나에게 주신 것이다. 황송하기도 하여 답례를 하려고 하자 글씨를 써주고 돈을 받는 건 선비가 할 짓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사양하셨다. 당시에 화랑가에서는 석전이나 강암 선생님 글씨는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다. 청장은 매우 흡족해 하셨다. '聽無聲' 이 세 글자는 우리 집의 가보가 되었다. 작촌 조병희 (1910-2002) 선생님은 충청남도 강경 까치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작촌 선생의 호의 연유는 태어난 마을과 연관이 있다. 외삼촌이 가람 이병기 선생이시고, "완산고을의 맥박"이란 저서를 내셨으며,제1회 전북의 어른상을 수상하셨다. 5남 2녀의 자녀가 있는데 셋째아들 조정형 씨는 무형문화재 6호 이강주 기능보유자다. 聽無聲은 조용한 소리 속에 진리가 들어있음을 일깨워 준다. "無聲을 들어라."는 장자의 말이다. 장자는 부귀영화에 초연했고, 명리와 성공을 뜬구름처럼 여겼다. 그는 유유자적의 생애를 살았다. 돈의 노예, 지위와 명예의 포로가 되어 물욕에 골몰하기 쉬운 것이 현대인이다. 그는 聽無聲이라고 했다. 무성을 들으라고 한 것이다.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有聲은 누구나 들을 줄 안다. 빗소리,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는 누구의 귀로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가 안 나는 그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무성은 심이(心耳)로 듣는다. 마음의 귀, 이성의 귀, 영혼의 귀를 가지고 깊은 소리, 심오한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것이 聽無聲이다. 우리는 맑은 영혼의 귀로 양심의 소리, 역사의 소리, 진리의 소리, 지혜의 소리, 민중의 소리, 우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소리 없는 소리가 깊은 소리다. 인도의 사상가 간디는 매주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하고, 그날은 아무와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부득이해서 얘기를 해야 할 경우에는 언제나 필담으로 하였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다. 거짓된 소리, 남을 욕하는 소리, 시시한 소리, 하나마나한 소리, 수다스러운 소리가 범람한다. 말의 인플레가 너무 심하다. 우리는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라고 노자는 말했다. 떠드는 사람은 깊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의 소리는 조용하고 양심의 소리는 나지막하다. 조용한 소리 속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을 믿고 따르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계속 몸에 해로운 일만 골라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게 비일비재다. 학원에 아이들 보내면 성적이 약간 오르는 것만 보인다.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실천할 권리를 빼앗기고 그 아이 내면이 지쳐서 죽어가고 병들어 파리해지는 것은 모른다. 말 못하는 짐승의 소리 없는 애원을 모르고, 나무들의 푸른 합창도,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의 경이로움도 우리에게는 감각밖의 일이 되었다. 聽無聲! 작촌 선생님의 정신이 나를 일깨워 주고 있다. 혹시 아내가 오늘 내게 원하는 것은 없는지 소리가 나기 전에 알아서 먼저 챙겨주니 서로 기쁘다. 無聲의 소리를 알고 실천하면 세상을 살기가 편하고 재미도 있는 것을……. 작촌 선생님의 편액 글씨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진리이자 소통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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