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한복의 멋/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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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한복의 멋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설 대목에 날마다 소리없이 비가 내린다. 대목장을 노린 시장 노점상인들은 심술궂게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겠다. 시장 길가에 대형 비치파라솔이 이어지니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는 의지간(倚支間)이 되었다. 젊은 엄마들은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장을 보며 시대적인 편리함을 누리고있다. 세월을 안고 살아온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재래시장이 더 애착이 가는가 보다. 새해 설날을 맞이할 준비 때문에 재래시장은 그야말로 장속이다. 제수용품 값이 널 뛰듯 배가 올랐다. 비싸도 좋은 물건을 골라서 사야한다. 너도 나도 대명절인 설을 맞이할 소망으로 성심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올 설에도 우리부부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예년에는 기차표 사기가 힘들었는데 이번 설에는 빈 좌석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역 귀성이라고는 하지만 의아스러웠다.KTX 가 고속으로 달리고, 익산역에서 출발하여 용산역까지 가는 기차도 새로 생겨 열차편이 수월해졌나 보다. 서울에서 여수행 하행열차는 더욱 한산했다. 과학의 힘을 빌어 능률적인 방법으로 배차를 하니 여객수송에 많은 도움이 된 모양이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새해에 대해 낯설다는 의미와 익숙하지 않다는 뜻을 동시에 갖는다. 또한 선날(開始)이라고도 하여 날이 선다는 뜻이다.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란 의미다. 둘째아들 현성이가 독일에서 생활한지 12년 만에 귀국하여 처음으로 설날을 함께 맞게 되었다. 창원공장에서 아들이 해야 할 일 때문에 지난달 20일에 귀국했었다. 큰아들 집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먼저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들의 세배도 받았다. 남편은 큰아들에게는 건강하라는 말을, 둘째아들에게는 올해부터 시작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잘 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남편의 덕담이었다. 현성이는 동양의 풍습인 설을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하여 감회가 새로웠으리라. 이 모든 예절은 조상님과 자손들이 한 연줄로 이어진 가족관계임을 상기시키는 조상숭배와 가족사랑이려니 싶다. 자녀와 손자 손녀들에게 답례로 주는 세뱃돈은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선조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유래가 대대손손 미덕으로 이어내려왔다. 독일에 있는 손자손녀에게 설날의 유래를 알려 주려고 세뱃돈을 챙겨 애비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유럽은 우리처럼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없고 대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축제기간으로 정하여 즐긴다고 한다. 올 설에는 교황님과 미국무장관 힐러리 여사도 우리 설을 축복해주었다. 설날의 개념이 지구촌에 널리 퍼져 동양인의 설날이 아닌 세계인의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날에는 곱게 차려 입은 한복이 제격이다. 한복을 입어야 할 설날 우리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 보기 드물다. TV 화면에 나오는 방송인들만 예쁜 한복차림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한복은 함부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며 소중히 입어야 기품이 있고 멋도 있다. 우리민족의 정서와 역사가 깃든 옷이다. 예의 바르게 입고 전통예절의 상징으로 입어야 한다. 복잡하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이유로,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움 때문에 우리 옷 입기를 꺼리고 있다. 한복을 입은 여인의 고운 맵시는 고고한 학과 같다. 한복의 곡선미와 선의 자연스러움은 세계적인 의상으로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색의 조화는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빛깔이다. 세계적인 우리 옷, 설날 명절만큼은 예쁜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는 전통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한다.
서양 옷은 아무렇게나 입고 제멋대로 걸치는 편리한 의상이다. 형식과 절차도 무시하고 이기적인 신세대들의 볼품 사나운 옷차림이어서 보는 이들의 시선이 아슬아슬하다. 제멋에 겨워 산다지만 예의만큼은 지키는 미덕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넘치도록 흔전만전한 시대이다. 입는 옷의 개념이나 도덕을 부모들은 일깨워 주어야 할 것 같다.
어릴 적 설날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미리미리 만든 설빔을 장롱 속에 넣어 놓았었다. 심심하면 새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서서 혼자 패션쇼를 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보았다. 차분하고 곱게 비쳤다. 명주비단을 연두색과 자주색 물을 들여 곱게 다듬어 자주색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고운 핫연두색 핫저고리였다. 그 때는 최고의 비단이 명주였다. 아버지께서 송방에서 떠오신 도톰하고 무늬가 예쁜 검정색 옷감으로 치마를 만드셨다.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섣달 그믐날밤엔 선잠을 잤었다. 설날에 새옷을 입고 자랑삼아 이 집 저 집 동네친구들을 따라 다니며 어른들께 세배를 하였다. 온 동네가 한집 같았다. 돈이 귀한 때라 세뱃돈을 받은 기억은 희미하다. 집집마다 떡국과 한과를 내놓아 배불리 먹었던 정겨운 그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10.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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