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 좋지만/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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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 좋지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우리 형제 오남매는 저마다 종교가 다르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인데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할아버지께서는 전통적인 유학자이셨으니 아버지께서도 유학적 사고방식이어서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건강문제로 공직에서 물러난 큰아들이 예수교장로교인 개신교를 찾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형은 호기심과 탐구심이 너무 강해 성경탐구에 충실했다할까? 얼마 안 되어 당시 기성교회에서는 이단이라 하는 예수교 장로교(P 장로)의 열렬한 신도로 변신하더니 전도사란 직책을 갖게 되었다. 전도사로서 전국 각처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개척교회를 세우느라 십여 년간 온갖 고생을 다했다. 교주가 세상을 떠난 뒤 교세가 쇠약해지더니 새로운 후계 교파인 ◯◯교회로 옮겼다. 역시 교역자로 발탁되어 전국 각처의 개척전도에 힘쓰셨다.
그간 동생으로서 예수교장로교 신앙 때부터 ◯◯교회에 이르는 동안 수 십 차례 신앙권고를 받았다. 아무리 형님이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권고에 응할 수 없었다. 형님말씀 대접으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으나 심적 변화는 없었다. 종교인들이 흔히 말해 “마귀가 아주 꽉 찼다.”는 혹평까지 받았으나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버지께서 고향에서 돌아가셔서 내가 장례를 주관해서 모시게 되었다. 물론 전통적인 유교식 장례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삼년상이니 탈상까지 모셨다. 그 뒤 기제는 장남인 형님께서 모시게 되었다. 주관하시는 형님께서 기독교신자이니 교회식으로 모시게 되어 동생으로서 그냥 형님을 따랐다. 나만 빼고 교회가 다르기는 하지만 4남매가 교회를 다니니 따를 수밖에. 그 뒤 어머님의 상을 당했을 때도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모셔 많은 교인들의 문상과 도움을 받았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뒤 막상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형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많은 조문은커녕 끝내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세상에 이런 종교도 있구나! 종교와 신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었다. 종교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로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에서는 소속 신자가 상을 당하면 위로하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생각해도 지금까지 수긍이 가지 않았다.
종교란 무엇인가? 무신론자들도 있다지만 유일신이신 하나님(창조주}을 믿거나 혹은 여러 신을 믿고 있어 종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상에는 너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종교가 많아 신앙생활을 어지럽히고 있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형님은 종교선택을 잘 못한 것 같다.
나는 아직 종교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 전통적인 유교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조상을 숭배하고 스스로를 수양하며 살아간다. 그간 절에도 가보고 여러 교회 목사님의 설교도 경청해보았다. 성경을 마련하고 심지어 연속통신성경강좌도 구해 읽었다. 그리고 형님과 주변으로부터 여러 차례 신앙권유도 받았지만 썩 마음에 와 닫지 않았다. 결코 인위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욱 형님과 같은 경우를 겪고 보니 더욱 진실한 종교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종교의 자유인 이 나라에서 한 평생 종교하나 선택 못하고 살아 왔으니 전통적 유교가 신앙이라며 자위해야 하려나 보다.
(201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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