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신구
페이지 정보

본문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2006. 06. 06. 현충일 오후 5시경, 갑자기 열이 나고 감기가 심해져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휴일이라 이리저리 헤메다가 겨우 ‘다 사랑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까짓 고뿔쯤이야 사노라면 달고 사는 거니까’ 하고 생각했더니 하필 휴일인 오늘 열이 몹시 심했다. 7-8명의 환자진료가 끝나고 순서가 되어 문진을 거쳐 간단한 진찰을 하더니 혈액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어쩐지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하고 졸음까지 왔다. 2시간 정도가 지나자 보호자를 찾더니 앞에 대기시킨 앰브란스를 타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위급하면 보호자를 찾고 응급차를 동원하겠는가? 그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마음을 가다듬고 병명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운전사는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간다고 했다. 은근히 불안하고 겁도 났다.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내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65세, 옛날 같으면 상노인이다. 예부터 아홉수가 위험하다고 했는데 아직 69세는 안되었으니……, 집에 연락하니 애들이 왔다. 내 차로 응급실에 입원한 뒤부터는 몸과 마음이 쇠진하여 그저 침대에 누워있다가, 휄체어를 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검사, 촬영, 진찰을 계속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밤엔 양손에 수혈바늘이 꽂혔는데 아프고 감각이 무뎌지자 아들들이 손을 맛사지해 주었다.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인 뒤 비몽사몽간에 눈을 떠보니 응급실 내 침대 주변에서 온 식구들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무엇이 어째서 무슨 병으로 그러는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누워 있으면서 최근 며칠동안의 일들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지난달 내 생애 처음 경사(혼사)를 치르고, 그 뒷처리와 교육컨설티너(교원 연수, 수업개선 지도) 위촉을 받아 활동하고, 중등학교에서 상담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준비자료작성 등으로 때로는 밤늦게까지 바쁘게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감기증상이 20여일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아 여기저기 서너군데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엊그제는 종중 시제(時祭)에 다녀오다가 졸음이 와서 서곡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온 적 밖에 없다. 내 몸을 내가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인 데, 무얼 탓하겠는가. 나는 10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고, 4,5년 전부터는 당도 있어 매월 진료를 받고 투약관리를 하는데 병원에 갈 때만 되면 며칠 전부터 음식도 주의하고, 한 시간 전쯤 건지산을 돌며 혈압과 당뇨를 줄이려고 꾀를 부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의사 선생님은 웃었다. 그래도 진료할 때 혈압과 당뇨가 정상이라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 어설픈 꾀에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 성싶다. 그 이튿날부터는 더 바쁘다. 본격적으로 혈액암 병동인 9층에 입원시켜 놓고 다양한 검사와 여러 차례의 촬영 그리고 의사들끼리 나를 뉘어놓고 무슨 의논을 하는지, 꼭 실험실에 온 것처럼 불안하고 궁금했다. 몸에 백혈구 수치가 낮아 입원을 했다고 한다. 나도 암환자가 된 것일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무슨 암환자야? 더구나 백혈병이라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릿속에 혼란이 오더니 힘이 쫙 풀렸다. 그리고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저 의사에게 맡기는 수밖에 별 묘안이 없잖은가, 마음이 무거워지더니 점점 아무 걱정도 잊고 체념상태가 되었다.
입원한지 20일, 주치의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젠 병이 잡혔단다. 병명[疑診]은 급성 신부전증(腎不全症), 이에 따라 면역력 결핍으로 감염 가능한 병은 ‘패혈증, 재생 불능성 빈혈, 골수암……. 등이라고 했다. 매우 위급한 증상이라 온 가족과 친지까지 놀라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은 예고도 없이 살금살금 왔다가 갑자기 떠난다며 떠난 뒤에야 그 이유를 밝혀 주는구나 싶었다. 주치의는 짐작컨대 독성약물이 내장을 중독시키고, 혈액순환과정에서 백혈구가 떨어졌단다.(정상은 8000-6000/㎣인데 내 상태는 최하 2700/㎣) 골수와 임파선 조직검사 결과 선천성이 아님을 알게 되고, 수혈을 계속하면서 순환과정을 정밀 검사하여, 약물로 중독된 장기를 세척하면서 치료에 임하였다고 하였다. ‘휴, 나도 모르게 갈 뻔했네, 그려.’ 내 입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1개월 뒤 퇴원할 때는 덕택에 비만체중이 68㎏으로 줄고 고혈압은 완전 정상(고110-저80)이어서 투약을 중지해도 좋다고 하였다. 살다 보면 몇 번은 병고로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중병으로 한 달간 입원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일까, 살기위해서 먹고, 살면서 부귀영화와 권세공명을 향하여 줄달음치는 것이 아닌가. 한편 생각하면 이 모든 행보가 부질없는 욕심이며 그 욕구를 충족한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어느 심리학자(웰리암 마스틴 2009.)의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는 조사 자료에 의하면 ‘막연한 미래의 그 무엇(?)을 바라며’ 가 90%이상이고 현세의 ‘대인관계에 삶의 의미를 부여’함은 6%미만이라니……, 사람이 나이 들면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이 인생행로라지만 빨리 달려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천천히 가겠다고 병실에 누워 있는 것도 결코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보통걸음으로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제 명까지 살다가 건강하게(고생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게 인생의 행복이라고 했다.
하루는 내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 인생이란 아침에 깨어났다가 저녁엔 잠의 늪으로 빠지는 탄생과 죽음의 술래잡기다. 그래도 아침은 기쁨이어야 하고 밤이면 나도 모르게 고이 잠들어야 하는가 보다. 하루에도 눈에 보이지 않고 눈치도 채지 못하는 수십 번의 생사의 갈림길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그저 즐겁기만 하길 바라며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을……,
병원에 있을 때 위암으로 입원하셨던 지인 한 분이 "인간의 평생 식사량(食量)은 먹는 횟수와 1회량이 다를 뿐 모든 이가 같다고 하는데, 과식하는 자는 그 횟수가 줄 것이며, 소식하는 자는 오래 오래 먹어야 하니 누가 오래 살 것인가?"라고 하셨다. 자신도 나이에 걸맞게 먹지 않아 위장병이 걸렸다며 껄껄 웃으셨다. 하기야 나도 약물과용 탓이라고 하지 않던가.
요즘도 몇 달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데 다른 데는 다 이상이 없는데 아직도 신부전증에 관련된 클리아틴 수치가 좀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과민하면 좋을 게 없으니 마음 편히 지내면서 의사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지 않던가?
인간의 삶은 삶 자체가 병상일지요 하루가 인생의 축소판이려니 싶다.
(2009. 07.30.)
- 이전글신앙도 좋지만/정장영 10.02.17
- 다음글배려/김길남 10.02.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